▲ 다코타 패닝은 커다란 꽃봉오리 모양의 향수를 다리 사이에 꽂고 앉은 광고를 찍어 논란이 됐다. |
요즘 패션업계와 모델업계에는 그야말로 ‘소녀 붐’이 일고 있다. 나이 어린 10대 소녀들이 앞 다퉈 유명 브랜드의 모델로 발탁되고 있는가 하면, 심지어 패션쇼 무대 위에 올라 어른 못지않은 성숙미를 뽐내는 경우도 있다. 어린 게 뭐가 대수냐 하겠지만 문제는 이들이 데뷔하는 나이에 있다. 아무리 10대라고 하지만 어려도 너무 어린 ‘프리틴(preteen)’, 즉 아직 사춘기도 지나지 않은 10~12세에 데뷔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10대 초반에 모델로 활동하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아동을 성 상품화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노동법에 저촉되는 행위이자 ‘아동 노동 착취’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더불어 지난 9월 미성년 모델들의 고용 실상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걸 모델(Gril Model)>이 화제를 불러일으키자 이런 비난은 더욱 거세지고 있는 상태. 결국 이런 비난을 의식한 미 패션디자이너협회는 지난해부터 무대에 오르는 모델들의 나이를 16세 이상으로 제한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패션업계는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미성년 모델을 고용하고 있으며, 당분간 이런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올해 초 모델의 꿈을 품고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도쿄로 건너갔던 나디야의 나이는 이제 겨우 열세 살이다. 한창 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멀리 도쿄까지 날아간 이유는 단 하나,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처음 모델 스카우트인 애슐리 아르보우가 시골 마을을 찾아와 나디야를 점찍었을 때만 해도 모든 것은 핑크빛처럼 보였다. 무엇보다도 2개월 안에 8000달러(약 860만 원)를 벌게 해주겠다는 계약서의 내용은 나디야와 가족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도쿄에 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악몽은 시작되었다. 도쿄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과 다를 바 없었다. 일단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부터가 고역이었다. 말이 안 통하니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또한 처음 약속과 달리 아무리 일을 해도 돈은 쉽게 모이지 않았다. 먹는 것도 부실했다. 행여 살이 찔까 감시하는 에이전트의 눈 때문에 마음 놓고 먹을 수도 없었다.
▲ 다큐 <걸모델> |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데이비드 레드몬과 애슐리 새빈 감독은 일본을 찾아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녀 모델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다큐는 어린 신인들을 발굴하기 위해 러시아를 찾는 모델 스카우트들의 세계도 거침없이 폭로한다. 문제는 이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소녀들에게서 폭리를 취하거나 혹은 학대를 일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어나 일본어를 못하는 모델들이 적정 모델료를 지불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예 일을 하고도 돈을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하며, 무엇보다도 계약서부터가 영어와 일본어로만 작성이 돼 있어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나디야 역시 ‘2개월에 8000달러를 지불하겠다’는 내용만 전달받았을 뿐 ‘여기에서 생활비를 공제한다’는 계약서의 내용은 미리 통보받지 못해 돈을 벌기는커녕 결국 빚만 잔뜩 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일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며칠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빈둥대는 날도 많았다. 결국 나디야는 어느 날 갑자기 일방적으로 계약 파기를 통보받았고, 그 길로 빈손으로 러시아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르보우는 특수한 경우라고 주장하면서 “대부분의 모델들은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다. 일본에서는 빚을 지고 실패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모델들에게 순종과 예절을 가르치기 위해서 엽기적인 방법으로 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가령 소녀들을 병원 해부실의 시체 안치소에 데리고 가서 또래 소녀들의 시체를 보여주는 방법이 그것이었다. 보통 마약에 중독돼 사망한 소녀들의 시체였으며, 에이전트 관계자는 “우리가 아니었으면 너희들도 이런 신세가 됐을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렇게 할 경우 소녀들이 고분고분해지는 것은 물론이었다. 심지어 시체를 해부하는 모습을 관람하게 할 경우 그 효과는 배가됐다.
에이전트는 소녀들에게 나이를 속이라는 지시도 서슴지 않았다. 너무 어릴 경우 캐스팅을 꺼리는 패션업체들이 많기 때문에 한두 살 정도 많게 속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까닭에 나디야 역시 첫 번째 캐스팅에서 15세라고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렇게 고생을 해도 모두가 모델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한 소녀들 가운데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몸을 파는 매춘부가 되는 경우도 있다. 아르보우는 “대부분의 시골 소녀들은 고향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면서 “이런 소녀들은 운동선수도 될 수 있고, 체조선수도 될 수 있고, 발레리나도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매춘부가 될 수도 있다. 아름다운 몸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것은 매한가지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이런 맥락에서 소녀들이 매춘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며, 어쩌면 모델이 되는 것보다 쉬운 일일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오히려 “우리가 소녀들을 구해주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에이전트도 있다.
이에 대해 다큐 영화에 출연한 캐나다 출신의 모델인 레이첼 블레이스(26)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현재 모델들의 권리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그녀는 “어린 소녀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어린 모델들의 근로 조건이 열악하다고 말하는 그녀는 “어린 소녀들을 잡지에 나오게 하는 것부터가 어린이 노동이다. 소녀들은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하고, 때로는 대가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특히 소녀들의 반라를 촬영하는 것에 대해서 심한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는 그녀는 “반라인 채로 선정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미성년들의 사진을 소지하는 것은 불법이면서 왜 패션지에 나온 비슷한 사진을 소지하는 것은 패션이라는 포장을 두르고 용인하는가?”라고 묻는다. 다시 말해 이런 사진 역시 엄연히 아동 포르노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녀는 패션 및 모델업계가 먼저 자각을 하고 모델들의 나이를 제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다큐멘터리 <걸모델>에 등장하는 러시아 13세 소녀 나디야. |
그렇다면 패션업계가 미성년 모델을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디자이너들이 패션쇼 무대에 선보이는 샘플 의상들이 지난 10년간 극적으로 작아졌다는 데 있다. 보다 맵시 있는 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이로 인해 고통받는 것은 결국 모델들이다. 점점 작아지는 옷에 맞춰 몸을 만들다 보니 점점 더 깡말라지고 그러다 보니 결국 어린 모델들이 더 각광받게 됐다.
이로 인해 요즘 패션업계에는 이상한 현상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아직 사춘기도 채 지나지 않은 10대 소녀들이 어른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 어른들에게 옷을 파는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블레이스는 “소녀들이 어른 흉내를 내거나 특히 섹시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은 보기 거북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요즘 패션업계는 그야말로 10대 소녀 모델이 대세다. 가령 다코타 패닝(18)의 동생인 엘르 패닝(14)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옷을 입히고 싶은 소녀’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이런 까닭에 벌써부터 레드카펫에 유명 브랜드 의상을 걸치고 등장하고 있다.
이런 경쟁에 유명 명품 브랜드도 가세하면서 논란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상태. 샤넬, 프라다, 발렌티노, 마크 제이콥스 등도 차례로 소녀 모델들을 고용하고 있는가 하면, 이런 트렌드는 점차 많은 브랜드로 확산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역 스타들의 파워가 무시하지 못할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역 스타들이 레드카펫 위에 입고 나오는 의상은 또래의 10대 소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곧 매출로 이어지곤 한다. 실제 미국 내 10대의 구매력은 매년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8~12세 아동의 연간 소비액은 2009년 91억 달러(약 9조 7500억 원)에서 2010년 107억 달러(약 11조 4000억 원)로 증가했다.
이에 대해 한 패션 관계자는 “물론 모든 소녀들이 비싼 옷을 입지는 못한다. 하지만 ‘영감’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 영향은 막대하다. 모두들 젊은 세대들로부터 ‘영감’을 얻으려고 한다. 이런 소녀들의 영향력과 파워는 막대하다. 오랫동안 이 점은 간과되어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앤절리나, 진짜 고딩 시절 맞아?
■ 헤일리 스테인펠드(15)
이제 겨우 15세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성숙미가 물씬 풍기는 아역 배우로 이미 여러 차례 레드카펫 위의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될 만큼 화제가 된 바 있다. 특히 지난해 ‘미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 입고 나온 몸에 달라붙는 머메이드 스타일의 드레스는 나이에 비해 훨씬 섹시해 보이는 이미지로 시선을 끌었다. 또한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크림색 드레스를 선보여 <스타일닷컴> 사이트에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편 스테인펠드는 14세였던 지난해 ‘미우미우’ 브랜드의 광고 모델로 발탁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 티렌느 루브리 블롱도 |
긴 금발 머리와 푸른 눈이 브리짓 바르도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요즘 가장 각광 받는 소녀 모델이다. 프랑스 출신으로 4세 때부터 모델로 활동했으며, 당시 ‘장 폴 고티에’의 패션쇼 무대에 올라 갈채(?)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10세의 나이로 프랑스판 <보그> 패션 화보를 찍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문제는 사진이 너무 선정적이라는 데 있었다. 짙은 화장에 빨강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하이힐을 신은 채 관능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었던 것. 이 사진은 곧 찬반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며, 한편에서는 ‘아동 포르노다’ ‘전혀 세련되지 않았다’고 비난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부모의 동의하에 촬영한 것이다’ ‘오히려 아동을 성 상품화하는 사회를 비꼰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 다코타 패닝(17)
우리에게는 <아이엠샘>으로 잘 알려진 아역 배우인 패닝은 올해 초 ‘마크 제이콥스’ 향수 광고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커다란 꽃봉오리 모양의 향수병을 다리 사이에 꽂고 앉은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패닝의 모습은 다분히 도발적이었으며, 향수 이름인 ‘오, 롤라(Oh, Lola)’는 ‘롤리타’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아동을 성 상품화한다는 이유로 영국에서는 광고 금지 명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 브룩 실즈(15)
1980년 ‘캘빈 클라인’ 청바지 광고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당시 실즈가 광고한 이 청바지는 10대 소녀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판매량이 급증했다.
하지만 문제는 당시 쉴즈의 나이가 15세에 불과했다는 데 있었다. 쉴즈의 관능적인 자세 때문에 이 광고는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 브리트니 스피어스(18)
18세 때 촬영한 <롤링스톤스> 음악 잡지 표지 사진으로 선정성 논란에 휘말렸다. 검정색 브래지어를 드러낸 채 한 손에는 텔레토비 인형을 안고 있는 모습이 너무 섹시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특히 스피어스의 10대 팬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염려했던 학부모들 사이에서 커다란 반감을 샀다.
▲ 16세 때의 앤절리나 졸리. |
16세 때 비키니를 입은 채 도발적인 자세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화보 사진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됐다. 당시 베벌리힐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여고생이었다는 점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관능적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 캘빈 클라인 광고
1995년 반라의 10대 남녀 모델들을 앞세운 광고로 비난을 샀다. 이 가운데 몇몇 모델은 15세에 불과했다는 소문도 있었으며, 결국 미 법무부로부터 아동 포르노법에 저촉됐는지 여부를 조사받기까지 했다.
▲ 영국에서 금지된 아메리칸 어패럴 광고. |
광고에 미성년 모델을 고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의류 브랜드답게 2009년 23세의 여성 모델이 마치 윗옷을 벗는 듯한 사진 광고를 게재해 논란을 촉발했다. 문제는 모델이 16세 미만 소녀처럼 앳돼 보였다는 데 있었으며, 결국 영국광고표준위원회는 이 광고를 금지했다.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