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의 이용찬은 2010년 9월 음주운전으로 그해 열린 광저우 아시아경기 명단에 빠져 결과적으로 병역면제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
# 합의금으로 연봉 절반 훅~
12월 2일 새벽. 부산 부산진 경찰서에서 20대 남성이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이 남성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경찰의 질문에 답변했다. 담당 경찰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알 만한 사람이 음주운전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일반인도 아니고 유명 야구선수라면 더 조심했어야 한다”고 훈계했다.
“죄송합니다”며 고개를 떨군 이 남성의 이름은 고원준이었다. 이날 새벽 4시 50분 고원준은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자신의 아우디 승용차를 타고 출발하려던 중 뒤에서 오던 SM5 승용차를 보지 못하고 접촉사고를 일으켰다. 두 승용차의 범퍼가 다소 찌그러졌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 문제는 고원준이 음주상태였다는 것이다. 부산진 경찰서 관계자는 “두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대화를 나누던 중 피해자인 여성 운전자가 고원준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난다고 판단, 출동한 경찰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려 음주 측정을 하게 됐다”며 “측정 결과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혈중 알코올 농도 0.086%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부산 지역의 야구 관심도가 높고, 웬만한 롯데 선수는 얼굴이 다 알려졌기 때문에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건도 크게 확대될 수 있다”며 “음주운전 사고 시 일반인보다 몇 배는 곤혹스런 입장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야구선수라면 부산에선 절대 음주운전을 해선 안 된다”는 게 이 관계자의 조언이었다.
과거 롯데 선수 가운데 모 선수는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켰다가 한 해 연봉의 반을 날린 적도 있다. 만취 상태로 운전대를 잡고 불법 유턴을 하려다 직진하던 차를 들이받은 것이었다. 사고 당시 피해 운전자는 차량 파손이 경미하자 “조심하시지 그랬느냐. 지금 바쁘니 보험으로 해결하자”며 자릴 뜨려 했다. 문제는 피해 운전자가 명함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걸 모 선수가 사인 요구로 착각한 것이었다.
모 선수는 “야구 좋아하시나 봐요”라며 피해 운전자의 명함 뒤에 자신의 이름을 사인했다. 피해 운전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뭐하시는 분이에요?”라고 물었고, 모 선수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저 모르세요. 롯데 자이언츠 000입니다”라고 대답했다.
▲ 고원준 |
# 선수와 팀을 죽이는 일
올 시즌 음주운전 사고는 고원준이 2호다. 1호는 KIA 손영민이었다. 손영민은 9월 21일 새벽 광주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피해 차량 뒷좌석에 타고 있던 여성이 다쳤다. 당시 손영민의 혈중알코올 농도는 0.129%로 만취상태였다. 그즈음 복잡한 가정사로 야구팬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손영민은 음주운전 사고까지 겹치며 임의탈퇴선수가 되고 말았다.
음주운전으로 아예 선수생명을 끝낸 선수들도 있다. 두산 김명제와 롯데 정수근이다. 김명제는 2009년 12월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음주운전을 하다가 차량이 다리 아래로 떨어져 크게 다쳤다. 김명제는 대수술 끝에 생명은 건졌지만, 하반신 마비증세로 오랫동안 재활에 매달려야 했다. 현재는 야구선수론 복귀가 어려우나, 정상적인 생활은 가능하다는 소식이다.
정수근은 ‘야구계의 주폭’이란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달고 다녔다. 2004년 만취상태로 폭력과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됐고, 2008년 7월엔 만취 폭력으로 야구장 대신 경찰서에서 발견됐다. 2009년 8월에도 음주 폭력사건으로 입건된 정수근은 결국 롯데에서 퇴출당했다.
지금도 많은 야구인은 “타고난 재능만 따지면 역대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1번 타자인데, 자기관리에 실패해 야구계를 떠난 천재”로 정수근을 기억하고 있다. 정수근은 은퇴 이후인 2010년 6월에도 음주운전 사고를 내며 야구인들의 뇌리에서 완전히 사라진 인물이 됐다.
음주운전이 개인적 일로 끝나면 그나마 낫다. 팀에까지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게 문제다. 대표적인 선수 가운데 두산 이용찬이 있다. 2010년 9월 이용찬은 음주운전 사고로 불구속 입건됐다. 음주운전에 접촉사고, 여기에 차를 들이받고 사라졌다는 혐의까지 더해져 이용찬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결국 이용찬은 그해 포스트 시즌에서 뛰지 못했고, 마무리 투수를 잃은 두산은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 패했다. 이용찬은 그해 열린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명단에서도 빠지며 병역면제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한 번의 실수로 팀과 선수 모두 다시 찾아오기 힘든 기회를 놓친 셈이었다.
▲ 정수근 |
자신과 팀에 큰 손해를 안기는 걸 뻔히 알면서도 선수들이 음주운전을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 선수는 “팬들의 눈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우리나라 야구팬들은 야구선수를 스님이나 신부님으로 안다. 절대 술을 입에 대서는 안 될 사람들로 본다. 경기 끝나고 선수들과 맥주 한 잔 마셨다 치자. 다음날 성적이 나쁘면 언제 찍었는지 사진이 올라오고 ‘술 좀 그만 마셔라’는 비난 글이 쇄도한다. 어느 선수는 술을 입에도 대지 못하는데 회식자리에 몇 번 오고, 그걸 팬들이 사진 찍어 야구사이트에 올린 바람에 ‘술꾼’으로 낙인 찍혔다. 대리운전자가 야구팬이라면 더 긴장할 수밖에 없다. 선수들이 ‘가능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차를 몰고 귀가하자’고 생각하는 측면엔 이런 말 못할 사정도 있다.”
다른 선수는 술자리 위치를 꼽았다. “야구선수 대부분은 집과 가까운 곳에서 술을 마신다. 내일 경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집과 가까워서 괜찮아. 무슨 일 있겠어’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운전대를 잡는 것 같다.”
모 구단 코치는 “선배 야구인들이 후배 선수들에게 그릇된 음주관을 가르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1990년대만 해도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 은근슬쩍 넘어가기도 했다. 단속경찰이 선수 팬이면 ‘내일 경기 하셔야 하니까 이번엔 그만 넘어가겠다. 조심하시라’고 눈감아주곤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음주운전은 해도 괜찮아’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박힌 것 같다. 후배 선수가 음주운전에 걸렸을 때 코칭스태프가 관대한 것도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너흰 운이 없구나’하는 안이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대통령이 음주운전하다 걸려도 봐주지 않는 세상이다. 선배 야구인들이 ‘음주운전은 절대 안 돼’하고 강하게 나와야 후배 선수들도 경각심을 가질 수 있다.”
# 불안한 프런트
12월에 접어들며 선수들은 ‘비활동 기간’을 만끽하고 있다. 12월부터 다음해 1월 중순까지 선수들은 자유의 몸이다. 어떻게 생활하든 구단은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 이 기간 선수들은 지인들과 만나며 1년간 쌓아둔 스트레스를 풀고, 회포를 푼다.
그러나 역으로 구단 프런트에게 ‘비활동 기간’은 ‘최대 활동 기간’이다. 모 구단 관계자는 “야구선수들이 일으키는 사건 사고의 절반 이상이 비시즌 기간에 몰려 있다”며 “새벽에 선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직감적으로 ‘사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구단들은 각종 사고를 막으려고 선수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준 상태지만, 언제 어디서 돌출행동이 나올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매’ 때리기 전 ‘예방주사’를
야구선수들의 음주사고가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구단들의 노력이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야구계 일부에선 “지나치게 관대한 처벌이 선수들의 음주운전을 조장한다”고 성토한다.
고원준의 경우 롯데는 구단 차원에서 벌금 200만 원, 부산지역 야구 유망주에 장학금 500만 원 기부, 봉사활동 40시간의 징계를 부과했다. KBO 역시 제재금 500만 원, 유소년 야구 봉사활동 56시간을 부과하며, 롯데 구단에 ‘선수단 관리를 철저히 해줄 것’을 당부했다.
벌금, 장학금, 제재금을 합치면 1200만 원이나 된다. 여기다 봉사시간만 합쳐도 100시간 가까이다. 징계치곤 매우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야구인들은 “벌금보단 경기출전 정지 등 보다 실질적인 제재방식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 구단에서도 선수들의 음주운전 방지를 위해 더 노력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모 야구인은 “KBO와 구단의 솜방망이 처벌로 롯데 박기혁의 경우 음주운전이 3번이나 적발됐다”며 “초기에 강력하게 대응했다면 2번의 음주운전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목소릴 높였다.
물론 강력한 처벌이 사고방지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KBO 관계자는 “그러려면 사회적으로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며 “현행 법상 음주운전이 대부분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기 때문에 KBO에서 해당 선수를 강력하게 처벌했을 때 ‘당신들이 법원이냐’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조심스러워했다.
MBC 허구연 해설위원은 징계도 징계지만, 예방에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허 위원은 “징계는 결과론일 뿐, 음주운전을 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KBO와 구단들이 수시로 선수들에게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음주사고를 냈을 경우 어떤 불이익이 찾아올지 강력하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동]
▲ 그래픽=송유진 기자 eujin0117@ilyo.co.kr |
미국은 ‘관대’ 일본은 ‘매장’
미 메이저리그(MLB)도 선수들의 음주운전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MLB 사무국은 “한 해 평균 15명 이상의 선수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된다”며 “꾸준한 계도에도 선수들의 음주운전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음주운전은 사회적 범죄다. 청소년들의 우상인 메이저리거가 음주단속에 걸리면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는다. 지난해 5월 한국인 메이저리거 추신수가 음주운전 단속에 걸렸을 때 클리블랜드 지역지는 ‘빅리거의 자격이 없다’며 성토한 바 있다.
하지만, 그런 미국야구계도 음주운전과 관련 별다른 처벌은 없다. 추신수의 경우 음주운전에 적발되고도 곧바로 원정경기에 출전했다.
메이저리그에선 마약과 금지약물에 대한 제재안만 있을 뿐 음주문제는 빠져 있다. 시즌 중 라커룸에 맥주가 비치돼 있고, 맥주를 마신 선수가 타석에 서기도 하는 곳이 메이저리그다.
반면 일본 프로야구는 처벌이 강력하다. 벌금, 봉사활동은 양호한 편이다. 일본은 아예 해당선수를 매장한다. 이 과정에서 일본야구기구(NPB)는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구단이 앞장선다.
2006년 오릭스 버팔로스 투수 마에카와 가스히코는 음주상태로 차를 몰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20차 여성을 치고 도망갔다. 다행히 해당 여성은 단순 타박상에 그쳤다. 하지만, 오릭스는 곧바로 마에카와를 방출시켰다. 당시 28살이던 마에카와는 불펜 중심투수였다. 시속 150km 강속구를 던지는 좌완 투수임을 고려하면 오릭스의 방출은 다른 팀엔 기회가 될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일본 어느 구단도 마에카와를 영입하지 않았다.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 선수는 NPB리그에서 뛸 수 없다’는 묵언의 공감대 때문이었다. 결국 마에카와는 아까운 실력에도 다시는 NPB리그 마운드를 밟지 못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