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고 김성수 오양수산 회장의 영결식. 맏사위 박상길 부산고검장이 영정을 들고 있다. 오른쪽은 오열하는 미망인 최옥전 씨(아래)와 침통한 얼굴의 장남 김명환 부회장(가운데) 등 유가족.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4일 각 언론에 실린 고 김성수 오양수산 회장의 부음 기사다. 하지만 5일로 예정됐던 발인은 7일장을 넘겨 10일에야 이루어졌다. 부자간의 경영권 분쟁, 부자간·모자간의 법정 공방, 창업주의 사망과 경쟁사로 지분·경영권 매각…. 결국 맏상주는 부친의 발인을 막아섰다. ‘골육상쟁’으로 비화한 ‘오양수산 사태’를 따라가 봤다.
고 김성수 회장과 장남 김명환 부회장의 극심한 갈등. 부자지간의 이런 갈등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작년 7월 말 김 부회장은 모친 최옥전 씨를 상대로 40억여 원대 산업금융채권 반환 소송을 냈다. 올 초 재판 과정에서 김 회장은 개인사적 소회를 담은 ‘사실 확인서’를, 김 부회장은 ‘해명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여기에서 갈등의 뿌리를 엿볼 수 있다. <중앙일보>가 두 문서를 입수, 보도한 바에 따르면 고 김 회장은 장남의 경영능력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었고 장남 김명환 부회장은 누이·매제들이 모친을 부추겨 부친 재산을 빼돌리려 한다는 의심을 품은 것으로 보인다.
고 김 회장은 ‘사실확인서’에서 “회사를 장남에 물려주려고 오양수산에 입사시켰으나 일에는 관심이 없고, 회사 돈과 개인 돈을 구분하지 못하는 등 문제가 많아 90년대 말 외환위기 무렵에 셋째 사위를 대표로 앉혔다. … 나도 인간인지라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싶었지만 창업주 자식이라는 이유로 회사를 맡길 수는 없었다. … 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마자 나를 정신장애인으로 등록하는 등 능력 없는 식물인간으로 몰고 갔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 부회장은 ‘해명서’에서 “경영권과 재산을 노리는 사위의 꾐에 어머니가 넘어가 나는 아버님 문안조차 가지 못할 정도로 따돌림을 받았다. … 가족들이 아버지 명의로 돼있던 부동산을 나만 빼놓고 사위·딸·외손자·외손녀 명의로 돌려놓았는가 하면, 미국의 합작회사를 몰래 팔려고 했던 일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갈등이 외부로 표출된 것은 2003년 정기주주총회 때부터다.
2000년 11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중이던 김성수 회장은 최대주주(지분 35.2%)로서 대리인을 통해 장남 김명환 부회장의 이사 재선임을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김 회장의 대리인은 주총장에서 의결권행사를 하지 못했다. 물리적 충돌이 있었던 것. ‘사실확인서’에 나와 있듯 김성수 회장이 앉혔던 셋째 사위 문영식 당시 사장도 대표이사에서 밀려났다. 이에 김 회장은 회사를 상대로 주총 결의 무효소송을 냈다. 김 회장은 1심·2심에서 승소를 했고 대법원의 판결을 남겨두고 있다.
이런 부자간의 반목은 김 회장 부부·차남·세 딸 대 장남 김명환 부회장 간 대립구도를 만들게 된다. 2004년 11월(부동산 등기부상) 김 회장 부부는 거처도 종로구 소격동 자택(최옥전 씨 소유)에서 차남 김철환 법문사 민중서림 대표 소유 삼청동 집으로 옮긴다.
지난해 5월에는 김성수 회장의 지분 중 30%를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에 각각 15%씩 신탁했다. 하루아침에 오양수산 대주주가 은행으로 바뀐 것이다. 김 회장 측은 당시 “김 부회장으로부터 경영현안을 보고받지 못해 금융권을 통해서라도 보고받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6월) 소격동 자택과 대지도 하나은행에 신탁한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대주주 간의 분쟁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던 임직원들까지 거리로 나서는 계기가 됐다. 오양수산 임직원들은 대주주 변경에 따라 미국법인의 어업권이 상실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위에 나섰다.
오양수산 노조와 임직원으로 구성된 시위대가 ‘오양수산 청산음모 절대 불용’ ‘김명환 대표이사 절대 옹호’ 등 피켓을 들고 간 곳은 엉뚱하게도 대전고검 앞. 당시 대전고검의 수장은 박상길 검사장(현 부산고검장). 대검 중수부장을 지내며 세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박 검사장은 김성수 회장의 맏사위다. 시위대는 김성수 회장 자택과 사위들의 사무실을 돌았다. 김 부회장을 뺀 가족들이 오양수산에 대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본 것이다.
시위대가 사위들을 의심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박 검사장 말고도 김 회장의 네 사위들 면면이 화려한 것. 둘째 사위는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21회 사법시험에 합격,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까지 지낸 한강현 변호사. 셋째 사위는 서울대를 나와 대우경제연구소에 있다가 오양수산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사장(2000~2003년)을 역임하고 현재 빌딩관리업체를 운영 중인 문영식 대표. 넷째 사위는 성형외과 병원 원장이다.
게다가 김 회장과 장남 김 부회장을 뺀 다른 가족들은 조류독감 파동으로 수산주가 폭등하던 2004년 2월 보유주식을 전량 매도하면서 상당한 시세차익을 챙겨 대주주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임직원들의 공세와 동시에 장남 김 부회장도 공격에 나섰다. 작년 7월 말 모친 최옥전 씨를 상대로 40억여 원 가치의 산업금융채권 56장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낸 것. 2000년과 2001년 김 부회장이 매입한 채권을 모친이 가져간 뒤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게 김 부회장의 주장이었다.
지난해 6월 주주총회도 소송으로 얼룩졌다. 부친 김성수 회장이 또 소송을 제기했다. 2003년의 소송과 비슷한 내용이다. 김 회장은 당시 소장에서 “의결권을 대리행사하기 위해 주주총회에 대리인을 참석시켜 이사선임 등 상정 안건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정식표결을 요청했다. 그러나 회사 측 주주로 행세하는 청년들이 물리력을 행사하며 대리인의 요청을 묵살하고 의안 가결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절차상의 문제도 지적했다. “원고(김성수 회장)가 전체 주식의 35.2%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이고 피고(김명환 부회장)는 6.95%에 불과한데도 피고회사가 모집한 의결권 위임 주식 수가 약 40%에 이른다고 주장하며 안건에 대한 출석 주주 과반수의 동의 여부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
계속되는 분쟁은 결국 김성수 회장 소유의 지분 35.2%를 경쟁사인 사조산업에서 넘기는 초유의 사건으로 비화한다. 지분 매각 과정의 진실은 김성수 회장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김성수 회장은 사망했고 김명환 부회장과 다른 유가족들은 극한 대립을 하고 있다. 따라서 김명환 부회장 측의 의혹 제기와 인수자인 사조산업 측의 해명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먼저 사조산업 측이 말하는 인수 경위. 지난 2월 사조산업은 모 증권사 M&A팀으로부터 오양수산 인수를 제안받는다. 사조 측은 “관심 있다”는 사인을 보냈고 김성수 회장 측 대리인과 직접 접촉에 들어가 매각을 마무리한다. 이로써 사조산업은 자회사인 사조CS를 통해 김 회장 타계 하루 전인 6월 1일 지분 35.2%를 127억 원에 인수하고, 이와 별도로 장내에서 석 달간 11.2%를 더 매입해 총 46.4%의 지분을 취득했다는 사실을 공시했다.
이에 대해 김 부회장 측은 고 김성수 회장이 의식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열흘 정도 중환자실에 있다 사망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판단 능력이 없는 상태였다는 주장이다. 김 부회장은 지난 8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고 김성수 회장은 2000년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그 여파로 2001년 정신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이래 의사능력의 제한적 상태가 상당기간 간헐적으로 지속됐다”고 덧붙였다. 이런 이유로 김 부회장 측은 현재 모친 등에게 ‘계약 파기’를 종용하며 ‘계약 무효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
반면 사조 측은 고 김성수 회장이 중환자실로 들어가기 전인 5월 중순 가격협상까지 끝내고 1일 법정 대리인을 통해 계약을 마무리했다고 밝힌다. 사조 관계자는 “적법한 절차를 밟았으므로 무효소송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사조 측은 고 김 회장이 생전에 작성한 ‘매각 관련 친필 문서’도 확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첨예한 대립 와중에 지난 9일 오양수산 정기주주총회가 있었다. 김 부회장 측과 새로 대주주가 된 사조 측의 한판 대결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 오양수산 측은 기자들의 출입을 막은 채 주총을 진행했다. 정기주총 안건 중 이사 선임의 건에서 사조 측과 고 김성수 회장 소유 주식 신탁을 맡고 있는 신한·하나은행의 반대로 표결에 들어갔지만 김 부회장 측의 승리로 싱겁게 끝났다.
의장 자격으로 주총을 진행한 김 부회장은 주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다른 유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수없이 많다. 어떻게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회사를 팔아넘길 수 있느냐.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개탄하면서 “앞으로 진실하게, 똑바로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분을 인수한 사조 측과는 “만날 일 없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에 대해 사조 측은 “아직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여러 경로로 입장을 타진해 보겠다. 하지만 최후엔 실력행사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김 부회장의 입장이 단호한 만큼 조만간 양측의 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