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서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출마했다”고 공언한 이정희 후보도 있다. 정당과 이념의 다름에서 기인한 공박이지만 싸움은 남녀 간보다 여여 간이 치열한 법이다. 이 후보는 박 후보에 대한 공격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과시했다.
국제정치에서 여성 파워는 제법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동남아 서남아 국가들에서 여성 대통령 총리는 다반사다. 태국에선 여성 총리가 현직이다. 남미와 유럽의 스칸디나비아 3국도 여성 대통령이나 총리가 흔하다. 독일에선 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가, 영국에선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유명하다.
여성의 정치적 파워가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지역이 유교의 가부장제 전통이 강한 동북아시아다. 특히 한국을 둘러싼 미·일·중·러 4대 강국이 그렇다. 미국에서 여성 대통령은 이제 겨우 기지개 단계다. 차기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출마하면 당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치고 있을 뿐이다. 일본에서 여성 총리는 아직 꿈도 못 꾸는 일이다. 중국도 매 한가지다. 모택동(毛澤東) 주석 사후 그의 처 강청(江靑)이 권력을 찬탈하려다 실패한 적이 있었을 뿐이다. 남자 대통령과 총리가 자리를 번갈아 차지한 러시아에서 여성 대통령을 기대하는 것도 요원해 보인다.
이들 나라 중에서 한국의 대선에 가장 관심이 큰 나라는 일본인 것 같다. 서울 주재 일본 신문의 한 특파원은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면 가장 큰 쇼크를 먹을 나라가 일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 속엔 16일의 일본 총선이 대물림 정치와 과거 회귀로 나타날 것에 대한 실망감도 묻어난다.
일본의 20년에 걸친 장기 경제침체는 변화에의 대응이 느린 때문이다. 한국은 IT시대를 리드하는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여성 대통령까지 탄생한다면 리더십의 변화를 선택한 한국 정치의 역동성으로 평가될 것이다.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 가운데 “살림은 여자가 잘한다”는 인식이 있다. 그것은 거칠고 허세적이고 부패한 것으로 인식되는 남성의 리더십에 대한 반감이자, 알뜰하고 깨끗한 여성적 리더십에 대한 갈구다.
하지만 그런 인식은 사실과 다른 것일 수 있다. 대통령의 성패(成敗)는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개인이 아무리 청렴결백해도 주변이 혼탁하면 헛일이다. 투표 전에 여야 후보자의 공약과 주변을 꼼꼼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
한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