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이틀째인 5월 13일 TK 공략에 나서면서 당초 예상을 깬 행보를 보였다. 민주당 대선후보들은 호남선을 타고 초반 바람몰이를 하면서 충청 중원을 거쳐 수도권으로 북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후보는 선거 때마다 득표율이 가장 저조했던 험지 TK부터 집중 공략에 나서면서 변칙적인 경부선 전략을 꺼냈다.
이 후보는 13일 보수진영 상징적 인물인 박정희 전 대통령 고향 경북 구미역 광장 유세를 시작으로 대구와 포항, 울산을 돌며 집중 유세를 벌였다. TK 방문은 공식 선거운동 전인 지난 5월 9일 ‘경청투어’를 통해 경북 경주를 방문한 데 이어 사흘 만의 재방문이었다.
경북 안동이 고향인 이 후보는 구미역 유세에서 “경북 안동서 태어나 자랐는데 왜 저는 이 동네에서 20% 지지를 못 받을까. 왜 이재명에 대해서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소리 안 해줍니까”라고 호소했다. TK에서 표를 받을 만한 이유가 차고 넘치는데 무작정 홀대를 당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이 후보의 이날 유세 현장 곳곳에는 ‘재매이가 남이가’라는 팻말이 목격됐다.
이 후보는 구미에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가 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젊은 시절 박 전 대통령을 사법살인하고, 고문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서도 “한편으로 이 나라 산업화를 이끈 공도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치적도 언급하면서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층에 다가서는 모습이었다.
같은 날 오후 대구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로 자리를 옮긴 이 후보는 지지자들을 향해 “여기 모인 여러분을 보니 옛날 대구 같지 않고 대구가 ‘디비진’ 것 같다”며 “용기백배해서 반드시 이기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무슨 전생에 연이 있다고 죽으나 사나 한 가지 색으로 (투표하고) 그래야 하나”라며 “신상(새로운 상품)도 써보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고향 사람 홀대론이라는 감정적 호소를 앞세우면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 업적을 강조했다. 여기에 ‘이재명 신상’을 거론하면서 이성적 접근도 놓치지 않았다. 고향 사람 한번 봐 달라는 읍소를 하면서도 알고 보면 인물 상품도 최고라는 양면적 호소를 한 것이었다.
선거 초반 화력을 TK에 집중한 것은 “이번만큼은 TK에서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에다 “여기서 이기면 확실한 당선”이라는 승리 전략적 차원이 결합된 것으로 읽힌다. TK의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이 된 박근혜 윤석열 대통령 실패 사례로 인해 큰 상실감을 갖고 있는 TK 정서를 감안, 고향 사람이 이를 달래주겠다는 명분을 앞세운 이른바 ‘빈집 접수’ 작전이다.
실제로 이재명 후보가 민주당 역사상 첫 TK 출신 대선후보로 배출되자 선거 때마다 민주당에 대해 빗장을 걸었던 TK민심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매일신문이 대구·경북 시도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지지율이 30%를 넘기며 지난 대선과 비교해 약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신문이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5월 12~13일 대구와 경북에 거주하는 만18세 이상 남·녀 11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 3.0%포인트·응답률 8.0%·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결과에서 이 같은 수치가 집계됐다.
이번 조사에서 이 후보 지지율은 30.9%로 지난 대선에 비해 10%포인트(p) 가까이 올랐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53.1%로 과반을 넘겼고,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는 7.0%의 지지를 받았다. 민주당은 험지인 TK에서 그동안 10~20%대라는 저조한 득표에 그쳤던 만큼 이번에 30%대 득표율을 달성할 경우,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이 후보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패한 지난 20대 대선(전국 47.83% 득표)에서 대구 21.60%, 경북 23.80%를 각각 득표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19대 대선(전국 41.08% 득표)에서 대구 21.76%, 경북 21.73%를 각각 얻었다.
민주당 선대위 고위 관계자는 “이 후보가 윤 전 대통령과 맞붙은 지난 20대 대선에서 고향인 안동에서 득표율 29%를 얻었는데 그때 TK에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사법 리스크를 벗어난 이 후보가 근거 없는 악마 프레임에서도 탈출한 만큼 이번에는 고향 사람 밀어주기가 가능할 것으로 보여 TK 전역에 걸쳐 30%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럴 경우 국정 동력도 막강한 수준으로 확보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민의힘은 이 후보 TK 방문이 이뤄진 바로 그날을 전후해 텃밭 사수 전략을 내걸고 맞불 작전으로 맞섰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공식 선거 운동 첫날인 5월 12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유세를 마치고 1박을 한 뒤 13일에도 대구 신암선열공원을 방문하고 대구시당에서 열린 대구·경북 선대위 출정식에 참석해 세몰이에 나섰다.
김 후보는 이 후보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TK 지역민들의 지지를 받는 박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박정희 마케팅’ 전략을 폈다. 김 후보는 “박 전 대통령 묘소 가서 무덤에 침을 뱉던 제가 당신의 무덤에 꽃을 바친다”면서 “대구·경북이 배출한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구) 달성군에 계시는데 박수로 응원해 달라”고도 했다.
이날 복수의 대구 국회의원들은 “서문시장에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왔다”면서 김 후보에 대한 TK의 변함없는 지지를 강조하면서도 “이재명 후보의 대구 동성로 유세에도 적잖게 왔던데…”라는 말을 꺼내놨다. 이 후보의 TK 공세에 대한 불안감을 숨기지 않은 셈이다.
이 후보가 TK 울타리를 넘나드는 것에 대해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이 후보의 ‘고향 앞세우기 전략’이 먹힌 것도 맞지만 현재의 국민의힘 상황, 김문수 후보 개인적 이력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대선후보 단일화 시도 과정에서 싸우면서 갈등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노출된 데다 김 후보의 TK 인지도가 역대 TK 출신 대선후보들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평가다.
김 후보는 경북 영천 출신으로 TK 명문 경북고를 졸업한 정통 TK 출신이다. 하지만 TK에서 정치를 하지 않은 까닭에 낯설어하는 지역민들이 적잖다. 김 후보는 15대부터 17대까지 신한국당·한나라당 등 보수정당을 거치며 고향이 아닌 경기 부천 소사에서 내리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에 당선된 데 이어 2010년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뒤늦게 고향으로 진입, 2016년 20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서 출마했지만 김부겸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충격적 패배를 당했다. 서울 등 ‘험지’에 출마해달라는 당의 요구를 거부하고 선거에 나섰다가 민주당에 보수 텃밭을 내어주면서 당내에서 큰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김 후보에 대한 TK의 낯선 정서가 거꾸로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진입을 허용하는 빌미를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구에서 태어나고 대구 달성에서 오랫동안 국회의원을 한 박근혜 전 대통령, 포항 출신으로 포항에서 다선 의원을 지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친형으로 뒀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한 TK 의원은 “김 후보는 열심히 뛰면서 TK 출신이라는 이미지가 이제 각인되고 있는데 당 내부가 분열을 겪었던 터라 TK 표심이 과거처럼 하나로 결합을 못하고 있다”며 “이를 민주당이 파고들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후보의 울타리 뛰어넘기를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이 후보의 고향 정서 불 지피기를 차단하는 데 온힘을 쏟는 중이다.
대구시장 출신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대구 달서구병)은 5월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를 겨냥해 “염치없다”고 맹폭했다. 권 의원은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경기지사였던 이 후보가 극심한 병상 부족에 시달렸던 대구의 지원 요청을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TK가 어려울 때는 쳐다보지도 않고 도움을 거절했던 사람이 이제 와서 표를 달라고 한다”며 “너무 염치없는 언행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권 의원은 “코로나19 환자들은 폭증하는데 치료할 병상은 부족했고 급기야 대구에서는 집에서 입원을 대기하던 환자가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시는 안타까운 일도 일어났다”며 “너무나 고맙게도 달빛동맹의 도시인 광주를 비롯해서 서울·경북·경남 등 전국에서 도움을 주셨는데 TK의 고통을 외면하고 병상 지원을 거부했던 사람도 있었다.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후보”라고 때렸다.
이어 “(이 후보가) 고향인 TK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는 것이 없다”며 “TK 사람들은 이재명 후보에게 ‘재명이는 남보다 못하다’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선거 막판으로 가면 보수 결집이 일어나 백중세 판세가 나오면 TK에서도 결국 이재명 바람이 차단될 것”이라며 “이러한 판세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이재명 공격수로 역할을 할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와의 조기 단일화가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