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은 지난 2년 동안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며 수조 원을 확보, 이를 재무구조 개선과 AI(인공지능)·반도체 등 미래 먹거리 사업에 투자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유심 해킹 사태로 SK텔레콤이 수천억 원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신규 사업 투자로 현금을 많이 소진한 상황에서 충격적 악재를 만나 재무 건전성이 추락할 위기다. SK그룹의 리밸런싱 작업에도 변수가 생긴 것이다. 이달 말 나올 정부의 유심 해킹 사태 민관 합동조사 결과에 따라 SK텔레콤이 ‘위약금 면제’ 결단을 하면 재정 손실 규모가 더욱 커져 그룹의 리밸런싱 전체 기간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SK그룹은 올해도 자산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 중이다. 지난 3월 31일 자회사 SK스페셜티 지분 85%를 한앤컴퍼니에 약 2조 7000억 원에 넘겼다. SK텔레콤은 지난 4월 25일 보유 중이던 카카오 주식 전량(1082만 주, 2.44%)을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해 약 3952억 원을 확보했다. 지난 5월 13일에는 SK C&C가 보유한 판교 데이터센터를 SK브로드밴드에 약 5000억 원에 매각하는 안건이 의결되기도 했으며, 같은 달 22일 SK그룹이 보유하던 베트남 제약회사 이멕스팜(IMP) 지분 약 65%(3000억 원 규모)를 중국 리브존제약 그룹(Livzon Pharmaceutical Group Inc.)에 넘긴다는 소식이 발표되기도 했다.
영업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기업에는 안정적 현금 창출 능력이 있는 기업들을 흡수·합병시켜 기초 체력 강화에 나섰다. SK그룹은 분기마다 수천억 원 적자를 내는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부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온에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엔텀을 합병시킨 데 이어 SK온의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에 SK E&S를 합병시켰다.
합병된 회사들은 안정적 수익으로 모회사에 수천억 원의 배당을 안겨준 기업들이다. 원유 수입과 석유제품 수출을 담당하는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2023년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에 배당금으로만 8000억 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SK E&S도 모회사였던 SK(주)에 2023년 약 3486억 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한 바 있다.
지난 2년간 SK그룹의 리밸런싱으로 계열사 수는 감소하고 현금 유동성은 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SK그룹 계열사는 지난해 219개에서 올해 198개로 줄었다. 8개 계열회사가 신규 설립됐고, 29개 회사가 청산·지분 매각·흡수 합병 등 사유로 사라졌다. SK그룹 지주회사인 SK(주)의 연결기준 현금‧현금성 자산은 2023년 22조 6836억 원에서 지난해 24조 6470억 원, 올해 1분기 25조 8430억 원으로 늘었다.
재무구조 개선 후 남은 자금은 SK그룹이 미래 먹거리로 선정한 AI와 반도체 분야 투자에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 SK그룹은 2026년까지 80조 원을 확보해 AI와 반도체 등 미래 성장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계획한 바 있다. SK그룹은 AI·반도체 투자를 통해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필두로 한 AI 반도체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꼽히는 AI 데이터센터 △개인형 AI 비서(PAA)를 포함한 AI 서비스 등 AI 밸류체인을 더욱 정교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무료 유심 교체로 인한 SK텔레콤의 손실액은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임봉호 MNO(이동통신) 사업부장은 지난 5일 서울 중구 삼화타워에서 열린 SK텔레콤 일일 브리핑에서 “유심 실물 가격이 개당 7700원인데 대략 2000만 명이 교체한다면 약 1500억 원의 비용이 든다”며 “그 외에 유심 교체 관련 유통망 업무 처리 비용으로 300억~400억 원이 추가로 들 수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현재 AI 사업 투자에 1조 원 이상 쓴 상태여서 유심 교체 비용으로 발생하는 지출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다. SK텔레콤은 SK브로드밴드가 운영 중인 AI 데이터센터 사업에 5년간 3조 4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하고, SK브로드밴드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기 위해 지분 매입 비용으로 지난 5월까지 약 1조 1500억 원을 사용했다. 이를 위해 SK텔레콤은 보유 중이던 카카오 지분을 팔았다. 박선우 한국기업평가 선임연구원은 “SK브로드밴드 지분 인수로 재무 완충력이 축소, 보유 자본이 감소해 부채 비율 등 재무안정성 지표가 다소 저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SK텔레콤의 재무 여건상 수조 원에 달하는 손실액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 1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별도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조 3395억 원이다. 유동 자산으로 범위를 넓혀도 5조 7290억 원이다. 결국 비핵심 자산을 추가로 매각하거나 회사채 발행 등 자금 차입을 통해 손실을 메워야 해 SK그룹 리밸런싱 작업 기간이 장기화할 수 있다.
증권가에서도 SK텔레콤의 위약금 면제 여부를 최대 변수로 판단하고 있다. 지난 5월 13일 김아람 신한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SK텔레콤 기업분석 리포트에서 “두 번의 과기부 청문회에서 위약금 면제 요구가 거세진 것이 가장 큰 리스크”라며 “불확실성을 감안해 목표 주가를 5만 7000원(기존 6만 7000원)으로 하향한다”고 밝혔다. 김정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위약금 면제 여부가 여전히 리스크로 남아 있다”며 “이달(6월) 말 최종 민관합동 조사 결과를 전후로 변동성 확대에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정부가 이달 말로 예정된 민관 합동조사단 조사 결과에 따라 SK텔레콤의 위약금 면제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힌 터라 SK그룹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희섭 SK텔레콤 언론홍보(PR)센터장은 지난 5일 브리핑에서 “사고 원인 조사 등이 마무리되면 위약금 면제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