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농구 NBA 무대에 신흥 강자가 출현했다. 어쩌면 전성기는 이제 막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6월 23일,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이야기다. 서부 컨퍼런스 1번 시드로 파이널에 진출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는 ‘인디애나 페이서스’(동부 컨퍼런스 4번 시드)와 4승 3패의 접전 끝에 승리를 거머쥐었다. 팀 역사상 두 번째 파이널 진출이자 첫 번째 우승이었다. 이로써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는 17년 된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MVP 선수를 세 명이나 배출하는 등 역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됐다. 왕조를 구축한 핵심 인물은 샘 프레스티 단장(47)이었다. 창단 멤버이자 현 NBA 단장 가운데 최고로 꼽히고 있는 프레스티는 어떻게 언더도그에 불과했던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을까.

2021-22 시즌이 끝난 후 프레스티 단장은 이렇게 말했다. 오클라호마주의 표어이기도 한 이 라틴어 문장은 ‘느린 노동(노력)이 모든 것을 정복한다’라는 말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프레스티의 이 발언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이유는 당시 오클라호마시티가 24승 58패라는 형편없는 성적으로 하위(서부 컨퍼런스 14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불과 3년이 지난 현재, 상황은 백팔십도 달라졌다. 이 표어는 이번 시즌 NBA 정상에 오른 오클라호마시티에 딱 들어맞는 말이 됐다. 언더도그이자 비주류 팀으로 분류됐던 오클라호마시티의 이번 시즌 성적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68승 14패의 높은 승률(0.829)로 30개 팀을 압도했으며, 매 경기마다 평균 12.9점 차로 쾌승을 거뒀다. 이는 NBA 역대 최고 기록이자 1972년 LA 레이커스의 12.3점 차 기록을 깬 것이기도 했다.
이에 오클라호마시티의 우승을 바라보는 NBA의 다른 팀들은 경이로움을 넘어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다. 이번 우승이 단순한 우연이자 돌풍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무엇보다도 오클라호마시티는 ‘젊은 팀’이다. 샤이 길저스-알렉산더(27)를 비롯한 제일런 윌리엄스(24), 쳇 홈그렌(23) 등 주축 선수들 모두가 20대다. 선수단의 평균 나이는 25.6세며, 이는 앞으로 이 팀이 오랫동안 상위권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다가 핵심 선수 전원이 내년 시즌에도 계약이 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요, 장기 계약으로 묶여 있는 상태다.
리그 MVP이자 득점왕, 그리고 파이널 MVP이기도 한 알렉산더는 “우리는 아직 더 성장할 여지가 많다. 그게 바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아직 전성기에 도달하지도 않았다”면서 “이 팀의 미래가 기대된다. 이번 우승은 확실히 좋은 출발점이다”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런 자신감은 결코 근거 없는 게 아니다.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릭 칼라일 감독 역시 “이 팀에는 훌륭한 선수들이 정말 많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뉴욕타임스’는 오클라호마시티를 가리켜 ‘젊고, 악착같고, 거칠고, 정교하고, 공격적이며, 열정 넘치고, 재능이 넘치는 팀’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NBA 대다수의 팀들이 몇 명의 핵심적인 선수들에게 의존하고 있는데, 오클라호마시티는 이와 정반대다. 대부분의 출전 선수들이 고른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그야말로 ‘평등한 팀’이다. 때문에 한두 명의 슈퍼스타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기복 많은 스타 선수들 때문에 팀이 흔들릴 여지도 적다. 실제 이번 시즌 오클라호마시티는 매 경기마다 보통 11명의 선수를 기용했다. 올해 플레이오프 첫 경기 1쿼터에서만 무려 10명의 선수가 뛰었으며, 경기가 끝날 무렵에는 총 13명이 출전했다.
오클라호마시티의 가드인 애런 위긴스(26)는 “처음 연습 경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와, 여기 있는 12명 전부 당장 경기에 투입해도 되겠다’라고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뛰었던 팀들은 보통 8명 정도가 실질 전력이었는데, 여긴 12명도 모자라 15명이 선발급이다. 말도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젊은 선수들 간의 견고한 팀워크와 겸손한 태도 역시 팀의 전성기를 예상케 하고 있다. 알렉산더, 윌리엄스, 홈그렌 등 주축 멤버 3인은 서로 함께 뛰는 것을 진심으로 즐긴다. 누가 더 주목받는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선수들만 겸손한 게 아니다. 팀을 이끄는 운영진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 모든 시스템의 설계자인 프레스티 단장은 결코 앞에 나서지 않기로 유명한 인물이며, 이런 점에서는 구단주인 클레이 베넷 역시 마찬가지다. AP통신은 마크 데이그널트 감독(40)에 대해 “폭풍 속에서도 고요하며, 썬더라는 버스를 완벽하게 운전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번 우승을 통해 주목받고 있는 것은 프레스티 단장 특유의 리더십과 스몰마켓 팀 운영 철학이다. 일관되게 ‘유기적 성장’을 강조해온 그는 매 드래프트 때마다 완벽한 선택을 하면서 팀 리빌딩에 기여해 왔다(2순위 쳇 홈그렌, 12순위 제일런 윌리엄스, 10순위 캐이슨 월리스). 특히 폴 조지를 트레이드한 대가로 받은 알렉산더는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다. 게다가 아직도 엄청난 수의 드래프트 픽과 유리한 계약 조건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있을 트레이드에서도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고 있다.
조급하지 않고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인 프레스티 단장은 선수들에게 “제대로 준비가 되기도 전에 스스로를 과대평가해선 안 된다”라고 강조해왔다. 이런 신중한 성격 때문에 언론 인터뷰 역시 거의 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작가이자 오클라호마 팀에 매료돼 ‘붐타운’이라는 책까지 집필한 샘 앤더슨은 프레스티 단장과 그의 철학과 관련해 이런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2012년, 썬더의 연습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건 농구공의 대칭성이었다. 코트 주위에는 선반이 둘러서 있었고, 모든 선반에는 농구공이 가득 차 있었다. 농구공들은 모두 로고가 정면을 향하도록 정렬되어 있었다. 그 완벽한 일직선 배열은 곧 나에게 프레스티가 이 조직을 어떻게 운영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가 됐다. 즉, 세심한 디테일에 대한 철저한 관리, 그리고 완벽한 질서였다. 한번은 프레스티가 직접 비뚤어진 농구공 각도를 조정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진짜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큰 그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분위기를 만들긴 한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정해진 방식대로 돌아간다. 우리가 매일 이 공간에 들어와서 주어진 환경 안에서 무엇을 예측할 수 없다면, 우리 자신에게 어떻게 일관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게 바로 프레스티의 방식이다”라고 했다.
이와 관련, 앤더슨은 “2025년의 오클라호마시티는 어쩌면 ‘프레스티 시스템’의 궁극적 산물일지도 모른다. 선수들은 마치 정렬된 농구공의 인간화 버전 같다. 마치 한 편의 우화처럼 말이다. 수년간의 노력 끝에 농구공들은 경기장에서 정확하게 이타적이면서도 뛰어난 선수들로 정렬된다”라고 설명했다.
데이그널트 감독 역시 이런 세심함이 경기 결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그는 “한 경기에서는 보통 공격 100번, 수비 100번의 포지션을 갖게 된다. 그리고 각 포지션에는 수많은 작은 요소들이 있다. 그 모든 작은 순간들, 기본 요소들 하나하나가 쌓여서 결국 승패를 결정짓는다. 이를테면 팔을 벌리고 수비를 하는 것과 팔을 내리고 수비를 하는 것, 그 한 번은 별로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승패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100번 다 그렇게 한다면 경기 전체에는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팀 전체가 경기를 그렇게 보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런 사고방식으로 무장한 환경 안에서 이 모든 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부연했다.
이런 점에서 팀을 하나의 유기체처럼 만드는 데이그널트 감독의 지도력도 주목받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가리켜 “데이그널트는 마치 프레스티의 팀을 이끌기 위해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사람처럼 보인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데이그널트는 “우리 팀은 철저하게 평등주의를 바탕으로 이뤄져 있다. 나는 프레스티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다.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다. 선수들 역시 감독을 위해서가 아니라, 감독과 함께 뛰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동등한 동료 집단이다. 트레이너, 셰프, 홍보팀, 보안팀 등 모두가 그렇다”라면서 “나는 이걸 ‘중앙에서 이끄는 리더십’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모두가 바퀴의 바큇살과 같은 존재들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런 잘 맞는 바큇살을 찾기 위해 프레스티 단장은 팀이 계속해서 패배를 거듭하고 있는 와중에도 천천히 리빌딩을 이어나갔다. 그럴 때일수록 더 신중했다. 어떤 성격의 선수들을 영입할지 세심하게 고민하면서 골랐다. 프레스티 단장이 원했던 선수들은 ‘배고프고, 이타적이며, 결과보다 과정에 집착하는 스타일’이었다.

프레스티 단장은 이런 선수들을 모아서 꾸준히 출전 시간을 부여했고, 결과적으로는 NBA에 꼭 맞는 선수로 성장시켰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마치 체육 수업에서 가장 마지막에 뽑히던 아이들로 슈퍼팀을 만든 셈”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데이그널트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모두 정신적으로 같은 부족 출신인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선수들은 NBA에서 살아남을 확률도 낮았던 데다 로테이션 멤버로 자리 잡을 확률은 더더욱 낮았다. 그런데 지금 이 좋은 팀에서, 이렇게 많은 선수들이 로테이션에 포함된다는 건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다”라면서 “덕분에 힘든 시기조차 우리에게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우린 지고 있었지만, 우울하진 않았다. 우린 전진하고 있었고, 비전이 있었다”라며 자랑스러워했다.
프레스티 단장은 여전히 엄청난 드래프트 픽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팀은 필요할 경우를 대비한 재정적 여유도 갖추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제는 방어할 챔피언 타이틀도 생겼다. 2022년, 프레스티 단장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겐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 우린 열심히 버티고, 노력해야 한다. 그게 바로 오클라호마주의 정신이고, 이 지역 공동체의 역사이며, 바로 이 농구팀이 가진 정신이다.”
이런 점에서 오클라호마시티의 여정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프로팀 하나 없던 시골마을서 잭팟 터져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창단 연도를 두고는 사실 의견이 분분하다.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1967년이 원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고지를 포함해 팀명, 로고 등 모든 게 바뀐 2008년이 창단 원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애틀 슈퍼소닉스’는 2001년,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회장이 구단을 인수하면서 새로운 재도약을 모색했었다. 1979년 파이널 우승을 마지막으로 암흑기를 거치고 있었던 만큼 고향팀에 대한 슐츠 회장의 애정은 남달랐다. 어떻게든 팀을 강팀으로 끌어올리고 싶었고, 분위기 또한 쇄신해보고 싶었다. 이에 2006년에는 40년 된 홈구장인 ‘키 아레나’를 보수할 계획을 세웠고, 이를 위해 시애틀 시당국에 2억 5000만 달러(약 3400억 원)의 보수비를 요구했다.
하지만 시애틀 측은 이를 거절했다. 지역사회 역시 막대한 세금을 투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꺼려했다. 더욱이 저조한 성적 탓에 농구장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를 환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결국 슐츠는 구단 인수 5년 만에 오클라호마시티 출신의 지역 사업가인 클레이 베넷에게 구단을 매각했다. 베넷 역시 팀을 리빌딩하기 위해 애를 썼다. 시애틀 측에 5억 달러(약 6500억 원)를 들여 경기장을 신축하겠다며 지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만일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에는 연고지를 옮겨버리겠다며 으름장까지 놓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시애틀 측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오클라호마시티에 본사를 둔 ‘도체스터 캐피털 코퍼레이션’의 회장인 베넷은 팀의 연고지 이전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마침 운 좋게 오클라호마주에서도 프로팀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다만 시애틀 측과 맺은 ‘키 아레나’ 사용권 계약 기간이 2년 더 남아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결국 양 측은 합의 끝에 구단 측이 위약금으로 4500만 달러(약 600억 원)를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연고지 이전에 동의했다. 다만 기존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로고, 색상 등 모든 권한은 시애틀의 소유로 남았다. 이에 따라 당시 연고지를 이전한다는 것은 사실상 신생팀을 창단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인구수 400만 명에 불과한 오클라호마주는 시골에 속한다. 지금까지 이곳을 연고로 한 프로스포츠 팀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수요가 적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프로팀들이 연고지로 삼기에 꺼리던 곳이었다. 베넷의 도전이 무모하게 비쳤던 것도 이런 까닭에서였다.
하지만 이는 오클라호마주 시민들의 진짜 속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였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스 호네츠(현 뉴올리언스 펠리컨스)’가 임시로 오클라호마를 연고지 삼아 2년 동안 활동했던 기간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이 기간 동안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연 70만 명 이상에 달했다. 프로스포츠에 목말라 있던 오클라호마주 시민들은 프로팀 유치에 긍정적이 됐고, 마침 연고지 이전을 염두에 두고 있던 베넷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오클라호마시티로 연고지를 옮긴 베넷은 공모를 통해 팀명을 ‘썬더’로 짓고 신생팀 창단을 선언했다. 신생팀을 향한 지역민들의 애정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오클라호마주 역사상 최초의 메이저 스포츠팀인 만큼 자부심도 남달랐다. 홈경기가 있는 날은 연일 매진 행렬을 이뤘고, TV 시청률 역시 8%대를 기록하면서 다른 팀을 압도했다.
팀에 대한 이런 애정은 전성기를 맞이한 지금 더욱 드높아졌다. 미국 내에서 비주류로 속했던 시골 마을인 오클라호마주의 역사와 NBA에서 언더도그로 분류됐던 팀의 역사가 만나 동질감을 이뤘기 때문이다. 이에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는 오클라호마 주민들에게는 단순한 농구 팀이 아니라 도시의 자부심이자 희망, 그리고 상징이 됐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