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창중 수석대변인이 12월 27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1차 인선안을 발표하기 위해 인선 명단이 든 봉투를 개봉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요즘 여의도 정가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을 두고 많은 말이 떠돈다. 깜깜이, 안갯속, 철통보안, 밀봉식 등등의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이를 두고 잘했다, 잘못했다, 지켜보자, 실망이다 등의 반응이 나온다. ‘아무도 몰랐고 그래서 놀랐다’로 귀결한다. 하지만 야당에서조차 “고심의 흔적이 보인다”고 했으니 아직 악평까지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혹자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며 최근 인선을 두고 ‘박정희 정권 시즌2’라는 말까지 한다. ‘복고(復古) 인사’를 이야기한 한 정치권 인사의 평이다.
“박 당선인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선을 찔끔찔끔하는 이유는 그만큼 인재풀의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일 것이다. 15년간의 의정 경험, 2004-2005년경부터 거대 야당과 집권 여당의 실질적인 수장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인사가 줄을 섰겠는가. 하지만 비서실장과 인수위원장 인선을 그 어떤 언론도 예측하지 못한 것은 그만큼 ‘극소수’만 인선에 참여했다는 것 아닐까. 이것은 옛 중정(중앙정보부)의 인사 스타일이었다. 안기부식이랄까….”
박근혜 당선인을 그동안 취재해 온 일명 ‘친박 기자’들은 박 당선인이 언론을 최대한 꺼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인터뷰는 되도록 피한다. 그래서 박 당선인의 의중은 직접 취재할 수 없고, 그 주변 인사를 최대한 활용해 보도한다. 누가 박 당선인과 가까운가는 그 주변 인사의 말에 대해 박 당선인이 바로 잡느냐 잡지 않느냐를 두고 판단할 정도다.
박 당선인은 “시민검증”의 역할을 대리하는 언론이 자신의 결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는 것을 싫어한다. 자존심 상한다는 이유라고 한다. 최근 몇 차례 인선을 두고-박 당선인에게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당선에 기여한-보수 언론이 모두 비판조로 돌아선 것도 ‘섭섭함의 발로’라는 분석이다. 윤창중 수석대변인이 스스로 봉투를 밀봉해 기자들 앞에서 뜯고 발표한 것을 두고도 “충성심이 과도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박 당선인이나 그 주변인이 모두 언론을 그만큼 무시하고 있다는 뜻도 품고 있다. 박 당선인의 인재풀이 “홍수가 났지만 마실 물이 없다”는 평가로 요약되는 이유다.
혹자는 김용준 인수위원회 위원장의 역할을 “인선 결과가 밀봉돼 발표된 그날부로 끝난 것 아니냐”는 악평을 내놨다. 박 당선인이 천명한 ‘대통합’과 이를 위한 ‘대탕평’이 전혀 녹아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 출신 첫 헌법재판소장으로 장애인으로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상징성이 있지만 대통합과는 별개다. 그런 상징성을 녹여내려면 차라리 약자를 위한 인수위 산하 특별위원회 설치로 해결하는 것이 실질적 효과가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 위원장의 대중성에 물음표가 붙으면서 ‘느닷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위원장 역시 위원장 선임 이후 활동에 대해 “너무 큰 욕심을 가지고 일을 벌이는 게 아니라 대통령직이 원활하게 인수되도록 권한을 최소화하겠다. 앞으로 새누리당이 지향하는 소중한 가치, 법치와 원칙, 헌법 가치를 잘 구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혹자는 이를 두고 “헌재소장 취임 인사 같다”는 평가를 했다.
분명한 것은 박 당선인과 언론이 지금은 ‘허니문’ 기간에 있다는 것이다. 취임 전에 재를 뿌리지 않겠다는 언론의 배려가 있기 때문에 박 당선인의 행보가 자유롭다. 하지만 이 달콤한 시간 뒤에는 혹독한 검증이 시작된다. 인수위 청년특별위원회 인선을 두고 ‘젊은이의 천국’(김상민 국회의원, 정현호 윤상규 박칼린 하지원 오신환 이종식)이라는 비판도 있다. 일자리 문제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한 번은 봐주자”는 언론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슬쩍 넘어간 것이다.
박 당선인 스스로 ‘대탕평’을 당선 뒤 첫 일성으로 내세웠지만 스스로 ‘균형의 함정’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동서남북 출신을 골고루 기용하겠다는 의지가 혹시 ‘기계적 균형’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어느 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정작 써야 할 사람은 못 쓰고, 쓰지 말아야 할 사람을 기용하는 자충수를 둘 수도 있다. “획일적인 균형과 합리적인 균형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으로 인선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박은숙 기자 |
언론이 인수위원장을 두고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나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거론한 이유는 박 당선인에게 가장 힘이 실린 당선 초기, 집권 초기에 개혁적이고 실험적인 변화를 꾀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경제민주화 전도사’로서 보수진영의 좌표 변화를 이뤄냈고, 안 위원장은 야권보다 한수 빠른 쇄신 카드로 진정성을 담보했다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위기 때마다 고개를 쳐든 이 두 위원장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박 당선인이 “인수위를 완전히 장악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지역구 관계자의 관전평이다.
“인수위 인선을 위해 박 당선인이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고 장고에 들어갔을 때에는 모두가 ‘전문성’이 제1덕목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전문성, 국정운영 능력, 애국심, 청렴성이 인선의 4원칙이라는 말이 회자하자 모두가 그 잣대로 인수위 1차 인선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그 누구도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했다. 김 위원장도,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도 어떤 전문성이 있는가. 둘 다 율사 출신이다.”
여의도 정가에서 “말 잘 듣는 인사만 골라 배치했다”는 평가가 수면 아래에서 전파되는 이유다. 김종인 안대희 위원장 외에도 김광두 박상증 송호근 김원길 진념 강봉균 등 하마평에 오른 인사들이 많지만 끌고 가기에는 녹록지 않다, 힘에 부칠 것이란 평가가 많았다고 한다. 대신 김용준 위원장은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공동선대위원장이었지만 언론과 접촉을 하지 않았고, 언론에 오르내리지도 않았다. 진영 부위원장 인선을 두고도 친박계지만 나이브(뭔가 어설프고 소극적인)한 사람 중 하나라는 평이 있다.
박 당선인을 잘 아는 인사들 사이에서는 그의 인사 스타일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 필요한 사람인지는 직접(혹은 최측근 인사를 통해) 면밀히 검증하고, 그 검증 과정은 철저히 비밀에 부치며, 한번 믿은 사람은 오래 쓰며, 한번 배신한 사람은 다시 가져다 쓰지 않으면서 구설에 오를 수 있는 인물에게는 큰 역할을 맡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자에게 역할을 맡겨 직접 보고를 받는 수직적 분할통치를 유지하면서, 최측근이나 2인자, 좌장에게 힘이 쏠려 권력을 키우는 권력 하방형 리더십은 철저히 차단한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가 역대 정권과 다른 점은 진 빚이 없고 갚을 일도 없다는 데 있다. 당선을 도왔던 주변 인사들이 ‘당선 지분’을 대놓고 요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간의 모든 선거가 ‘박근혜 원맨쇼’로 마쳤다는 데 있다. 오히려 박 당선인 주변 인사는 도움은커녕 사고만 쳤다(홍사덕, 김재원, 현기환 등). 인수위 인선과 첫 조각을 두고 새누리당 안팎이 조용한 이유다. 섭섭해도 말을 할 수가 없는 분위기이고, 누군가 섭섭하다고 했다간 바로 눈 밖에 나는 기류가 팽배한 것이다.
새누리당과 박 당선인이 대선 정국에서 정치 쇄신 카드의 하나로 내놓은 ‘국회의원 겸직 금지’를 놓고도 의원들 사이에서 지금에 와서야 논란이 불붙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무위원과 국회의원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몸집을 키울 수 있었는데 왜 19대 국회에서는 기회를 제약해 불이익을 주냐는 불만이다. 새누리당은 의원이 총리나 장관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을 추진했고 새 정부에 입각하려면 의원직을 내놔야 한다고 약속했다. 개정안 통과 여부와는 별개로 겸직 금지 원칙을 박 당선인이 활용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국민행복추진위에서 활약한 많은 비례대표 의원은 일찌감치 국무위원급으로 등용할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비례대표는 차기 순으로 위임하면 되고 국무위원이 된 인물은 재선거나 보궐선거를 통해 지역구 의원으로 재등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렸었다는 것이다. 대신 정치적 꿈을 위해 청와대 입성이 꼭 필요한 지역구 의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조금씩 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누구 하나 입에 올리지 못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묵언패’를 목에 건 분위기에서 혹 잘못 튀었다가는 눈 밖에 날 수 있는 살벌한 분위기란 것이다. 역대 정부 취임 전과 달리 당선을 두고 이는 논공행상이나 공치사로 하세월하는 인사가 여의도 주변에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선우완 언론인
‘죽 쒀서 개 주는 것 아니냐’
하지만 지난 4·11총선거에서 공천을 받은 ‘박근혜의 새 사람들’이 출현했고, 이들이 대선정국에서 ‘암약’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주요 거점에서 힘을 발휘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박 당선인이 인수위 인선에서나 첫 조각에서 여의도 출신이나 이미 알려진 인사들을 최대한 배제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어 ‘박근혜의 새 사람들’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
신박계 출몰 이전의 친박계가 박 당선인의 치마폭에서 정치생명을 연장한 무기력한 샌님이라면, 박 당선인을 여의도 밖에서 도왔던 신박계는 철저하게 ‘전문성’으로 무장한 실력파라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친박계가 허당파와 실속파로 나뉘어 경쟁할 것이란 재미있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박 당선인 스스로도 이번 대선정국에서 자신의 병풍 역할을 한 기존 친박 진영이 얼마나 무기력했는지 실감했고, 그런 와중에 누가 자기 잇속만 차렸는지 대부분 간파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친박계 중에는 최경환, 유정복, 이학재 의원 등이 그나마 실세로서 역할을 할 것이며, 신박계 실속파에는 최외출 전 기획조정특보(영남대 대외협력부총장),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인 강석훈 안종범 의원, 국정원 출신인 김회선 의원, 안대희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 위원장 등이 거론된다. 이들 모두 박 당선인이 추구하는 비전과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고, 전문성을 갖춘 실현 가능한 정책과 공약을 만들면서 앞으로의 박 당선인 국정운영에 손발 노릇을 할 것이란 이야기다.
이를 바라보는 힘없는 친박계는 일단 관망하자는 분위기지만 “죽 쒀서 개 주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조금씩 내놓고 있다. 하지만 범 친박계로 분류됐던 진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의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면서 ‘나도 쓸 사람으로 뽑힐 가능성이 있다’며 조금 고무된 분위기도 감지된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