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준 위원장의 귀환은 ‘신선도 떨어지는 회전문 인사’라는 뒷말도 나왔지만 능력 자체에 의문부호를 다는 이들은 많지 않다.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김용준 인수위원장의 인선 발표가 있던 날, 새누리당의 한 출입기자는 “같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한 김성주 회장의 ‘화려한 언변과 행동’을 생각해보라. 반면 김 위원장은 대선 기간 중 언론에 직접 나섰던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그 대신 선대위 회의 때마다 박 당선인 옆을 지키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는 역할을 했고 그런 조용한 헌신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월 11일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정몽준 전 대표, 황우여 대표와 함께 박근혜 대선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에 임명돼 두 달여간 박 당선인을 도왔다. 하지만 캠프 내에서 그의 역할은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다. 되도록이면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고 기자간담회가 있으면 자신의 발언은 미루고 김성주·정몽준 공동선대위원장 등에게 마이크를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뒤늦게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된 이인제 전 선진통일당 대표와 비교해도 그가 대선 동안 어떤 메시지를 만들어왔는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공동선대위원장 영입 당시 유일하게 박근혜 당선인이 ‘삼고초려’한 인물이다. 이전까지는 박근혜 당선인과의 친분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김 위원장 스스로도 캠프 해단식에서 “평생 정치에는 전혀 관여할 일이 없었고, 또 관여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한 일이 없었다”라고 밝혔다. 그런 그였기에 인수위 위원장으로 컴백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김 위원장이 새누리당 선대위를 거쳐 인수위로 금세 귀환한 저력을, ‘침묵의 금도를 지켰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김용준 위원장은 1994년 헌법재판소장에 임명될 당시 “직무와 관련 없는 모든 인터뷰는 퇴임 이후로 미룬다”는 원칙을 세웠을 정도로 신중한 성품을 지녔다. 선거 기간 중 쏟아진 인터뷰 요청도 대부분 사양한 채 조용히 선대위를 조력하는 일에 매진했다. 이 같은 원칙은 박근혜 당선인과도 상당 부분 겹친다.
▲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12월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법무법인 넥서스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김 위원장에 관해 “김성주 회장과 호남계 영입 인사들이 ‘튀는 언사’로 선거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역할이었다면 김 위원장은 캠프 안에서 조용히 무게중심을 잡는 역할을 했다”라고 평가했다. 윤창중 수석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인선 배경으로 “김 위원장은 당선인의 법치와 사회 안전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뒷받침하고 대통령직 인수위를 통해 새 정부가 원활하게 출범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해줄 인물”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신중함만큼이나 끈기와 집념도 남다르다. 어릴 때부터 장애를 갖고 살았던 것이 영향을 미쳤다. 김 위원장은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할 뻔하기도 했다. 당시 한 중학교 교장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진학을 할 수 있게 된 김 위원장은 그 후 누구보다 학업에 매진했고 그 결과 서울법대 3학년 때인 만 19세에 사법고시를 패스했다. 3년 뒤에는 ‘최연소 판사’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김 소장은 대법관 시절 <우먼센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어린 마음에 낙담할 때가 많았다. 나는 왜 친구들처럼 뛰지 못할까. 그러나 철이 들면서 그나마 걸을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김 위원장은 할 말은 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그가 고문변호사로 있던 법무법인 율촌의 한 변호사는 “언론에 잘 안 나와서 그렇지, 김 위원장은 무척 쾌활하고 적극적이며 호방한 성격”이라고 전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 때마다 거침없는 언변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한다.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초반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이 과연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구현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 뒤 최근의 반값등록금 논란에 관해서도 “그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서 얻은 쪼가리 지식이 전부인 줄 아는 일부 젊은이들에게 따끔하게 실력을 키우라고 왜 얘기 못 하나, (중략) 노력도 안 하는 대학생들에게 국민이 세금으로 등록금을 대신 내줘야 하나(2012년 <조선일보> 인터뷰)”라며 쓴 소리를 날렸다.
2010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수도이전 법안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면 그 위헌 결정을 피해가기 위해 만든 세종시 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위헌 결정을 했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며 ‘세종시 수호자’인 박 당선인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
김 위원장이 인수위원장직을 수락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을 꼼꼼히 읽어본 것이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늘 ‘최연소 판사’ ‘장애인 출신 판사’ ‘소신 판사’라는 타이틀이 뒤따른다. 그래선지 김용준 위원장 대한 법조계 안팎의 시선은 마냥 곱지 않다. 그가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됐을 때 “청와대 의전 서열 4순위에 해당하는 전직 헌법재판소장이 특정 정당의 캠프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은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박은지 진보신당 대변인은 이에 대해 “법조인에게 주어진 평생 마지막 직책이어야 할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인물이 다음 정권 5년의 밑그림을 그려야 할 인수위원장으로 임명된 것은 스스로 사법부의 권위를 짓밟는 노욕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 인선을 ‘재신임’이 아닌 ‘재활용’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종편사 기자는 “인수위원장과 부위원장 모두 법조계 인사가 발탁된 것은 처음이다. 이는 두 가지 허점을 노출하고 있는데 새로운 인물을 기용하기에 친박계 인력풀이 그다지 풍족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법치국가를 강조하면서 사법권과 엄격한 분리 원칙을 내세우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라고 전했다.
새누리당 한 보좌관은 “막판에 인수위원장을 결정할 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기보다 이미 한 차례 검증이 끝난 김 위원장으로 의견이 쏠리지 않았겠느냐”라며 “인수위가 끝나고 자리를 탐하지 않을 만한 인물 중에서 김 위원장만한 인물을 찾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친박계 인사가 맡으면 그에게 권력이 쏠릴 수 있어 이를 견제하는 동시에 안정적 국정 운영에 대한 박 당선인의 의지가 보인 선택이었다”라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박정희와 인연 ‘맹탕이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는 김 위원장이 지난 10월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발탁될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조명했다. 김 위원장이 판사 시절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를 강하게 반대한 송요찬 전 육군 참모총장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시켜 ‘소신 판사’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는 김 위원장의 영입을 “박근혜 당선인이 과거와 화해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63년 당시 자료를 확인한 결과 송요찬 전 육참총장은 ‘살인 및 살인교사죄’ 때문에 구속됐던 것으로 나왔다. 대다수 유력 일간지에서 “김용준 위원장은 1963년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를 반대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된 송요찬 전 육군참모총장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했다”는 것과 다른 내용이었다. 송 전 육참총장이 <동아일보>에 박정희 대선출마 반대 기고문을 발표한 것은 1963년 8월 8일이었는데 사흘 뒤 그는 6·25 전란 당시 부하인 조용구 중령을 살해했고, 4·19 때 발포명령을 했다는 ‘다른 혐의’로 구속됐던 것이다.
송요찬 사건 당시 김 위원장은 판사 3년차로 석방 판결을 주도적으로 이끌 위치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서울형사지방법원에 김택현 부장판사는 송요찬 씨의 과거의 경력과 사회적인 지위로 봐서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석방명령을 내렸다”라고 기록했다. 93년 8월 18일 <동아방송>에서도 “지난 10일 ‘살인과 살인 교사죄’로 구속되었던 전 내각수반 송요찬 씨의 구속사건은 그 저의가 의심된다고 국내외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더니 서울형사지방법원의 석방 명령에 의해서 밤 9시 45분에 마포 교도소에서 석방됐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김용준 위원장의 이름이나 역할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참고로 당시 구속된 송요찬 씨는 자신이 구속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신을 비난하자 보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경향신문>은 “박 의장의 출마를 반대하는 공개장을 <동아일보>에 내놓은 지 사흘 만에 구속된 송요찬 씨는 국내외 큰 파문을 일으켰으며, 미국은 민정이양을 앞두고 일어난 이 사건에 전에 없는 관심을 보였다”라고 전했다.
법무법인 율촌의 한 변호사는 “전쟁 도중 일어난 일이기에 공소시효가 만료됐고 이미 불기소된 사건을 13년 뒤에 제기한 것으로 구속 자체가 법리적으로 엉터리였던 셈”이라며 “김 위원장에게 붙은 소신 판사라는 별명은 대법관으로 있으면서 동성동본 금혼, 과외 금지 등에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생긴 것으로 안다. 언론에서 김 위원장과 박근혜 당선인의 인연을 찾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와전된 게 아닐까 싶다”라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김용준 “에이”, 박칼린 “와우”, 이종식 “허걱”
▲ 윤창중 수석대변인이 12월 27일 인수위원회 인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
12월 27일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 1차 인선 발표는 대선이 끝난 정치권의 가장 핫한 이벤트였다. 1시간 전부터 기자회견장을 꽉 채운 각 언론사 기자들은 대선 직후부터 쏟아진 하마평 명단을 살펴보며 ‘깜짝 인선’에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인선 명단에 대한 평가는 ‘맹탕이었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이날 인선된 김용준 위원장과 진영 부위원장,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김상민 청년특별위원장은 새누리당 대선캠프 인사들을 그대로 활용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 출입기자는 “놀랄 인물이 없다는 것이 가장 놀랍다”라고 소곤거렸다.
인수위 분과와 별도로 설치된 국민대통합위원회 역시 새누리당 선대위 내 국민대통합위원들이 그대로 중용됐다. 새롭게 등장한 인물이라면 윤봉길 의사 친손녀인 윤주경 매헌기념사업회 이사 정도다. 공교롭게도 윤창중 수석대변인의 “윤봉길 의사가 나의 문중 할아버지다”라는 발언과 윤주경 위원의 영입 시기가 맞물리면서 ‘여론 수습용’으로 영입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 중 화제를 모은 것은 청년특별위원회 위원들이었다. KBS 예능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 출연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박칼린 킥 뮤지컬 스튜디오 감독이 거론되자 일순 회견장이 술렁였다. 그 다음 발표된 하지원 위원은 동명의 영화배우를 연상시키며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지만 곧 사회단체인 에코맘코리아 대표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누그러졌다. 하지원 대표는 박 당선인의 슬로건인 ‘여성대통령’ 이미지를 강화하고 구체화하는 데 힘을 보탤 것으로 알려진다.
출입기자들 사이 단연 화제는 채널A 현직 기자에서 인수위 위원으로 깜짝 변신한 이종식 위원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누리당 출입 기자였던 이 위원의 이름이 공개되자 평소 친분이 있는 듯한 몇몇 기자들은 “종식이가 왜 거기(인선 명단) 들어있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인수위에 들어가기 직전 채널A에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 이 위원은 청년특위 위원장을 맡은 김상민 의원과 봉사 활동을 함께 하며 친분을 쌓아 온 것으로 알려진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