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단말기 기술을 보유했다는 에이디칩스 인수설을 흘려 주식시장을 흥분케 만들었다. 지난 6월 20일 공시를 통해 ‘에이디칩스 유상증자(약 357억, 25% 지분) 참여로 1대 주주가 됐으며 전환사채(약 257억 원, 1년 후 전환 가능) 인수 계약을 체결해 전환 시 총 지분 35%를 확보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날부터 증시에서 에이디칩스 주식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공시 하루 전인 6월 19일 주가 1만 6900원을 기록한 에이디칩스는 공시 당일인 6월 20일부터 4일 연속 상한가를 치면서 6월 25일 한때 2만 6850원을 기록한다. 그런데 이튿날인 6월 26일 에이디칩스는 주가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해 7월 24일 7010원에 이를 정도가 됐다. 불과 한 달 만에 4분의 1 수준으로 추락한 것이다.
업계 인사들은 에이디칩스 주가 폭락과 SK텔레콤의 번복 공시와의 관련성에 주목한다. 에이디칩스 주가가 하향곡선을 긋기 시작한 6월 26일부터 6일 후인 7월 2일 SK텔레콤은 ‘에이디칩스 유상증자 참여 및 전환사채 인수 건에 대한 당사 이사회 결과 부결’이란 내용의 공시를 띄웠다.
유상증자 공시 이후 주가가 치솟다가 번복 공시 이후 하한가로 돌아섰다면 쉽게 납득되겠지만 번복 공시 6일 전부터 에이디칩스 주가가 주저앉기 시작한 것은 석연치 않아 보인다. 일각에선 사전정보유출이나 내부자거래 의혹이 불거지기도 한다. SK텔레콤 이사회가 이번 결정을 부결시킬 것이란 정보가 미리 흘러 다녔을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증권선물거래소는 이번 공시와 관련 SK텔레콤에 대해 주의조치를 내렸다. 이번과 같은 주의조치를 1년에 2회 이상 받게 되면 불성실 공시법인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이번 조치로 SK텔레콤이 벌점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신뢰도에 영향을 준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 SK텔레콤은 6월 20일자 공시 단서조항에 ‘계약 해지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단서조항 유무를 떠나 SK텔레콤 측이 이 같은 공시 번복으로 거래소 등 관련기관의 제재조치와 신뢰도 하락을 예측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기 어렵다. SK텔레콤은 번복 공시일인 7월 2일 이후 5일간, 거래소의 주의조치가 있었던 8월 1일 이후 일주일간 주가 하락이 이어졌다.
SK텔레콤의 에이디칩스 인수 계획은 단말기 호환 기술 확보 차원에서 적극 추진돼 온 것으로 알려진다. 재계 인사들에 따르면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이 주도한 이번 에이디칩스 건이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의 강력한 반대에 의해 무산됐다고 한다. SK텔레콤의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적다는 까닭에서였다. 이사회 부결과 번복 공시 이후 업계 인사들 사이에선 ‘SK텔레콤 고위 인사가 최태원 회장으로부터 강한 질책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SK텔레콤의 비틀거리는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SK커뮤니케이션즈는 지난 6월 29일 공시를 통해 ‘오는 11월 1일부로 엠파스가 SK커뮤니케이션즈를 흡수합병한다’고 밝혔다. 엠파스의 최대주주는 SK커뮤니케이션즈(24.43%)다. 인수 주체는 엠파스지만 엠파스와 SK커뮤니케이션즈의 지분 관계를 볼 때 SK커뮤니케이션즈가 엠파스를 통해 우회상장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SK커뮤니케이션즈의 최대주주는 SK텔레콤(85.9%)이다. 엠파스의 SK커뮤니케이션즈 인수합병을 계기로 엠파스의 주가가 오르면 이 이익 중 상당부분이 SK텔레콤에 돌아가는 셈이다.
그런데 정작 엠파스의 주가가 최대치로 오른 것은 공시보다 8~9일 전의 일이다. 1만 5000원 대에 있던 주가가 6월 중순께부터 급등하더니 6월 21일엔 종가 2만 1250원을 찍고 다음날인 6월 22일 장중 한때 올해 최고가인 2만 3250원을 기록했다. 이후 엠파스 주가는 소폭 하락하면서 정작 공시가 난 6월 29일엔 1만 9000원을 기록하고 이후 한 달 동안 2만 원을 넘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증시에선 엠파스 인수합병 정보에 대한 사전유출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게 됐다.
이와 관련한 SK텔레콤의 행보도 논란거리다. SK텔레콤 김신배 사장은 지난 6월 초 제주도에서 열린 기업 설명회에서 ‘당장 엠파스와 SK커뮤니케이션즈의 합병 추진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사장이 인수합병 가능성을 극구 부인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공시를 통해 인수합병이 공식화됐으니 고위임원의 공식 언급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될 법하다.
최근 SK텔레콤이 미국 3위 이동통신서비스 업체인 스프린트넥스텔을 인수할 것이란 내용이 일부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그런데 보도 직후인 지난 7월 10일 공시를 통해 SK텔레콤은 ‘미국 이동통신사 인수 추진설은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이후 업계 인사들 사이에선 ‘M&A 협상 초기라서 협상자들이 말을 아낀다’ ‘SK텔레콤이 적은 지분 확보로 경영권을 확보하려다 협상이 불투명해졌다’는 식의 미확인 소문들이 난립하게 됐다.
업계에서는 4조 원이 넘는 현금동원력을 확보한 SK텔레콤이 어떤 식으로든 인수합병을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찾으려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최근 2~3년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끊임없는 인수작업을 벌였지만 이는 소총부대 규모의 국지전으로 평가받는다. 4조 원 이상의 현금유동성을 활용할 대규모 전투는 아직 벌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SK텔레콤은 성장답보 타개와 신수종 사업 확보 사이에서 투자자들에게 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SK텔레콤이 헛발질 끝에 제대로 ‘한방’을 보여줄지 주목받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