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질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권한을 남용하거나 부당한 지시를 내리는 것을 말한다. 부당한 업무 지시, 폭언·폭행·성폭력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국회에서 갑질 행위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보좌진들 사이에선 강선우 의원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올랐을 뿐이란 반응이 쏟아졌다. 강 의원이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후 보좌진에게 자택 쓰레기 분리수거, 화장실 비데 수리 등 업무 외 사적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보좌진 교체도 잦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 의원의 한 전직 보좌진은 재취업 방해 행위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강 의원의 사퇴 입장문에 보좌진에게 사과하는 문구는 없었다.
의원 갑질 문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강 의원의 갑질 행위를 비판한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2021년 한 당직자의 정강이를 차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4·7 재보궐선거 개표상황실에 자신의 자리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국회 직원들도 갑질 대상이 됐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2010년 통합민주당 의원 재직 시절 국회 경위를 폭행했다. 강 시장은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지난 2017년 5월 23일 김무성 전 의원은 공항에서 나올 때 수행원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캐리어를 건넸는데, 이는 ‘노 룩 패스’로 불리며 갑질 논란으로 이어졌다. 18대 국회 때 마사지를 좋아했던 한 의원이 자신의 보좌진에게 마사지 자격증을 따게 한 것도 갑질의 대표적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성폭력 문제도 발생했다. 박완주 전 민주당 의원은 보좌진 강제추행으로 2022년 제명됐다. 2024년 12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2015년 부산디지털대 부총장 재임 시절 비서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장 전 의원은 20대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다. 4월 1일 장 전 의원은 극단적 선택을 했고, 해당 사건은 ‘피의자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2023년 국회사무처와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간한 ‘제1회 국회인권실태조사연구’에 따르면 보좌진 22.1%가 직장 내 성희롱을, 32.1%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외모 평가, 술자리 신체 접촉 강요 등 성희롱 △공개적 모욕, 반복적인 부당 업무 지시 △고용 불안정, 승진 기회 미흡, 출산·육아 등 개인 사정에 대한 배려 부족 △개인정보 무단 공유 및 사생활 침해 △조직 내 소문 등을 갑질 사례로 꼽았다.
보좌진은 다른 국회 직원들보다 인권침해에 더 많이 노출된 직군으로 조사됐다. 특히 여성, 2030세대, 저연차 직원, 6급 이하 보좌진 등 상대적 약자들이 인권침해 경험률이 높았다. 인권침해 경험자 중 62.4%는 신고하지 않고 참고 넘어갔다고 응답했다. 국회 인권센터, 노동조합, 보좌진협의회, 외부 기관 등 공식 절차를 이용한 비율은 5% 미만이었다.
보좌진들은 갑질 행위로 인해 의원과 보좌진의 ‘동지적 관계’가 손상이 간다고 입을 모았다. 보좌진은 별정직 공무원이자 정당원 신분이다. 입법, 행정부·사법부 견제, 예산 관리 등의 업무를 보면서 당과 의원의 정치 활동을 지원한다. 선거철이 되면 의원과 당을 위해 밤낮없이 일한다. 일부 보좌진들은 동료이자 상사인 의원과 당의 정치적 목표를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일종의 동지의식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과도한 업무량이나 갑작스러운 지시도 어느 정도 양해할 수 있다고 했다.
한 민주당 보좌진은 “강선우 의원이 그렇게 된 이유는 (동지적 의식이) 없어서 그런 거다. 의원실에 (동지적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보좌진은 “강 의원은 민주당의 일원으로 정치 활동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보좌진에 대해 동지라는 의식이 없었다고 본다. 동지가 ‘갑질’이라고 느낄 정도의 태도로 일을 시키는 사람이 민주당에 적합한 사람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갑질을 일삼는 의원들을 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7월 24일 페이스북에 “S대 안 나왔다고 일년에 보좌관 수명을 이유 없이 자른 의원은 없었던가? 술 취해 보좌관에게 술주정하면서 행패부린 여성의원은 없었던가?”라고 되물으며 “그 관행이 새삼스럽게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이런 심성 나쁜 의원들은 이제 좀 정리 되었으면 한다”고 적었다.
#의원 재량권 축소 필요
한국정치학회는 2024년 발간한 ‘국회의원 보좌 직원 역량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 연구’에서 의원의 과도한 재량권을 ‘갑질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분석했다. ‘국회의원의 보좌 직원과 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보좌진 임면 권한은 의원에게 전속돼 있다. 면직 30일 전 통보하도록 규정(면직 예고제)돼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민주당 보좌진은 “의원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의원실 운영 방식도 의원이 정한다. 보통 의원실은 4급 보좌관 2명, 5급 선임 비서관 2명, 6~9급 비서관 각 1명, 인턴 비서관 1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의원은 정책, 지역구 관리, 수행 등의 업무를 자의적으로 분배한다. 국회의원의 보좌 직원과 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보좌진의 직무를 ‘의원 입법 활동 지원’으로만 규정했을 뿐이다.
보좌진 평가 시스템은 따로 없다. 인사 및 징계 체계도 없다. 의원의 자의적 평가에 보좌진의 운명이 좌우되는 구조다. 한국정치학회는 보고서에서 의원마다 기준이 달라 비효율이 발생하고, 전문성보다는 의원의 정치적 성향·충성도·사적 관계 등이 영향을 미치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이들은 근로기준법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의원과 보좌진 관계를 사용자-근로자로 명확히 해석할 수 없어서다. 보좌진은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이 적용된다. 1주 40시간 노동이 규정돼 있지만, 연장근로 상한 규정이 없다. 그래서 낮과 밤, 평일과 휴일을 가리지 않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도 별다른 구제를 받지 못한다. 보좌진들은 △워라밸 불균형 △과도한 추가 근무 요구 △휴식권 침해 등을 문제로 꼽았다.

미국은 한국처럼 의원이 자율적으로 고용한다. 그러나 명확한 법적 제한이 있다. 우선 하원 핸드북과 상원 지침에 따라 입법, 정무, 커뮤니케이션, 행정, 지역구 관리 등 직무가 엄격히 구분돼 있다. 모든 보좌 직원은 의회 고용 시스템에 등록된다. 보좌 직원을 임의로 해고하려면 행정 시스템상에 해고 사유를 명시해야 한다. 부당해고에 대해서는 ‘의회 윤리 위원회’를 통한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 한국처럼 의원 임의대로 보좌진을 해고할 수 없는 구조다.
보좌진이 갑질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창구 구성도 필요하다. 2018년 국회 성 비위 문제가 불거진 다음 국회 인권센터가 설립됐다. 인권센터는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인권침해, 차별 등을 다룬다. 그러나 의원은 조사 대상에서 배제됐다. 의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 국회 사무처 산하 기구인 센터의 직권 조사 등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였다. 예산도 작다. 인권센터 2025년 예산은 1700만 원으로 파악됐다. 인권위 기능도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1~2024년 인권위 접수 갑질 신고는 단 2건에 불과했다. 국회인권실태조사연구 이후 관련 보고서도 작성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영국의 ‘독립적 불만신고 및 고충처리 제도’를 참고할 만한 모범 사례로 꼽았다. 이 제도는 2017년 보좌 직원에 대한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도입됐다. 이 기관은 의회 내부 통제를 받지 않는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의원, 보좌진, 의회 직원 등이 적용 대상이다. 괴롭힘, 성희롱, 기타 부적절한 행위 등 포괄적인 문제를 다룬다.
전담 기관은 피해자 신원에 대한 엄격한 비밀 유지 의무를 가진다. 정식절차, 비공식 중재 등 피해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상시 직원은 10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이 접수되면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구조다. 예산은 수십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매년 연례 보고서를 내고 △접수된 불만 유형 △조사 진행 상황 및 결과 △이용 통계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 및 성과 등을 발표한다.
보좌진 권익 보호를 위한 단체 조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환주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지금 국회 인권센터가 유명무실하고 예산도 없고 사후 대처만 가능하다. 그런데 예방하려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문제 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러려면은 민보협에서 (강선우 때처럼) 행동에 나선 것처럼 평상시에도 그러한 보좌진 협의회든 이 사람들을 대표하는 조직이 대처할 수 있도록 (노동 집단화가) 많이 발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