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카오가 조직·비용 효율화에 나서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공시대상기업집단의 세부 내용을 보면 카카오의 계열사 수는 2023년 5월 147개, 2024년 5월 128개, 올해 5월 115개로 감소 추세다. 카카오가 기업 지배구조 효율화에 나선 것은 미래 먹거리로 선정한 AI 사업 육성을 위해서다.
신종환 카카오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올 1분기 컨퍼런스 콜에서 “카카오톡과 AI를 미래 성장을 위한 핵심 축으로 정의하고 해당 사업에 집중하는 중장기 전략은 변함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룹의 핵심 사업과 연관성이 다소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사업 부문에 대해서는 효율화를 추진 중”이라며 “그룹 구조를 재편하면서 핵심 사업에 투자를 집중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는 대규모 AI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우선 경기 남양주시에 6000억 원 규모의 2번째 자체 데이터센터를 착공할 예정이다. 카카오는 5월 22일 B2B(기업 간 거래) 솔루션 IT서비스 자회사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도 했다. 출자 규모는 2570억 원이다.
카카오는 AI 사업을 위한 비용이 늘자 비주력 자산의 매각으로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카카오의 자회사이자 투자전문회사 카카오인베스트먼트는 7월 11일 4297억 원 규모의 SK스퀘어 주식 248만 6612주를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로 처분했다고 공시했다. 카카오인베스트먼트 측은 AI 투자 등 미래 투자재원 확보를 위해 지분을 매각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계열사 매각 작업이 잇따라 중단되면서 현금화 작업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카카오는 그동안 진행했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매각 절차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지난 8월 11일 발표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2023년 초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와 싱가포르투자청(GIC)으로부터 약 1조 2000억 원 투자를 받으면서 11조 원의 가치로 평가를 받았던 바 있다.
다른 계열사 매각 작업도 지지부진이다. 카카오게임즈의 골프 사업 자회사 카카오VX도 지난해부터 매각이 추진됐지만 올 5월 관련 작업이 중단됐다. 우선협상대상자였던 뮤렉스파트너스는 기업가치를 2100억 원으로 보고 카카오VX 인수를 추진했지만 자금 조달 난항에 무산됐다. 잠재 매물로 거론되던 카카오헬스케어, 카카오모빌리티 등도 매각이 불발된 상태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카카오가 졸속 매각 우려와 더불어 기업 거버넌스와 관련해서 많은 지적을 받아왔기 때문에 자회사 정리가 수월하지 않은 모양새”라며 “향후 현금성 자산과 수익 여유분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AI 투자규모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계열사 매각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는 사이 카카오의 AI 경쟁력에도 이상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카카오는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소버린 AI)에 참여했다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소위 ‘국가대표 AI’로 부르는 해당 사업에 총 15개 팀이 참여했는데, 지난 8일 발표된 5개 정예팀 명단에 카카오는 없었다. 카카오는 ‘K-AI 기업’, ‘K-AI 모델’ 등 국가대표 AI 타이틀뿐만 아니라 사업 지원금도 놓치게 됐다. 정부는 5개 컨소시엄에 2027년까지 5300억 원가량을 지원할 예정이었다.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AI 기술력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IT업계 관계자는 “정예팀 중에서 네이버, LG, 업스테이지까지 3개사가 유력한 후보였는데, 특히 업스테이지는 일론 머스크가 칭찬할 정도로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췄다고 평가를 받았다”며 “나머지 두 자리는 카카오, SK텔레콤, KT, NC가 경쟁하는 구도였는데, 카카오가 기술력이 다소 떨어졌기 때문에 아쉽게도 선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자체 언어모델과 더불어 오픈AI의 모델도 함께 활용해 AI 에이전트 서비스인 카나나(Kanana)를 지난 5월 베타 서비스로 출시했지만, 후발주자로 머물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카나나의 7월 월간활성화이용자수는 2만 4903명으로 출시 직후인 5월(6만 9631명) 대비 약 64% 감소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영업활동을 통해 유입된 자금 등을 AI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정부의 소버린 AI 방향성과 카카오의 전략은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기 때문에 국내 AI 생태계 활성화와 기술 주권 확보에 기여하고자 하며, 카카오톡·카카오맵에 접목된 ‘AI 메이트 쇼핑’, ‘AI 메이트 로컬’ 등을 통해 이용자의 편의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AI 사업을 두고 국내 기업 간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AI 사업을 두고 카카오와 경쟁하는 업체들도 투자재원 확보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SK그룹은 2026년까지 AI, 반도체 등 투자자금 80조 원 확보를 위해 175개가 넘는 계열사를 효율화하고 있다. 저수익 계열사 등 비핵심 자산 매각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는 KT는 안정적 수익원으로 평가받고 있는 부동산 매각도 추진해 1조 원에 달하는 추가 자금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
문형남 숙명여자대학교 글로벌융합대학 학장은 “구글, 넷플릭스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우리나라보다 더 빠른 시점부터 AI 퍼스트 전략을 선보이고 있으며, AI 투자규모도 훨씬 월등하다”며 “AI에 대한 선택·집중 전략을 강하게 추진하는 정도에 따라 기업 간 기술력 격차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