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
대우일렉 인수 마무리는 소재, 부품, 완제품의 수직계열화 완성을 의미한다. 동부는 이미 시스템 반도체 회사 동부하이텍을 비롯해 LED(발광다이오드) 패키징과 응용제품을 생산하는 동부LED, LED 조명의 동부라이텍, 정밀소재 기업인 동부CNI 등 전자소재와 부품 회사를 갖고 있다. 소재와 부품에 강점을 가진 동부가 완제품 경쟁력을 가진 대우일렉을 맞아 도약을 꿈꿀 수 있는 이유다.
외환위기 이전의 대우전자 시절 삼성, LG와 함께 국내 가전시장을 삼등분하기까지 했던 대우일렉은 모그룹 해체와 워크아웃, 구조조정 등을 거치며 사세가 대폭 약화된 게 사실. 하지만 세탁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 백색가전 분야에서는 개발도상국 중심의 해외 시장에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2일 신년사를 통해 “저성장시대를 맞아 모든 투자와 지출은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판단하되 본업의 경쟁력과 직결된 투자를 축소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며 “환경 변화가 클 때일수록 기회가 많을 수 있으므로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불경기를 효과적으로 헤쳐 나가기 위해 관계사 간 시너지 발휘에도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당부했다. 좋지 않은 재무 상황에서도 대우일렉 인수를 계기로 계열사 간 시너지를 통해 경쟁력 강화를 꾀하자는 게 김 회장의 복안으로 비친다.
동부는 사업 영역 다변화 측면에서 중장기적으로 대우일렉을 통해 영상진단 등 전자의료기기 사업 진출까지 계획하고 있다. 전자의료기기 산업은 의료기기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한 분야로 고령화 시대를 맞아 주목받고 있는 미래유망 산업 중 하나다. 삼성이 지난 2010년 발표한 5대 신수종 사업 중 한 자리를 당당히 꿰차고 있는 게 의료기기 사업이기도 하다.
동부로봇은 로봇청소기까지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로봇청소기는 미래 신산업인 로봇 산업 중 가장 빠른 대중화를 보인 분야로 요즘 결혼하는 신혼부부의 필수 혼수품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상품이다. 삼성과 LG 제품이 국내 시장을 양분하다시피 하고 있지만 국내외 틈새시장을 노려 승부수를 던져볼 수 있을 것이란 게 동부 내부의 조심스런 관측이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다양한 반도체 칩을 만드는 동부하이텍, 산업용 로봇 제작의 동부로봇, 세탁기와 냉장고용 냉연강판을 생산하는 동부제철의 기술력을 접목해 제품력 향상과 비용 절감에 나설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대우일렉과 물류·건설업을 영위하는 동부의 기존 계열사들 간 상생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분석이다. 대우일렉의 탄탄한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계열사들의 해외 사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동부 측으로서는 인수로 인한 시너지 효과다.
동부는 동부CNI와 동부메탈이 이달 초 각각 3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나설 예정이다. 기존 만기 회사채를 상환할 목적이다. 하지만 양사의 신용등급이 낮은 데다 시장 상황도 좋지 않아 흥행에 먹구름이 낄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 관측이다. 재계 관계자는 “동부의 공격적 투자를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로 이어지는 미래 투자라는 측면만 봐서는 곤란하다”며 “재무적 상황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노력도 동시에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동부 측은 “단순한 수치만 볼 게 아니라 갚을 능력을 봐 달라”며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등 재무적인 부분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투자금 용처 입장차… “빛 보기 힘들다” 발빼
동부그룹은 지난해 8월 태양광 관련 업체 네오세미테크를 인수하려다 포기한 바 있다. 초기 투자금 40억 원까지 날렸다. 동부가 공급과잉으로 야기된 태양광 시장의 불황에 시장 진출 시기를 조율하기 위해 인수를 포기했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하지만 인수 포기의 직접적인 이유가 동부와 네오세미테크 양사간 투자금 용처에 대한 입장차였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공장 설비투자에 돈이 쓰이길 바란 우리와 달리 법정관리중인 네오세미테크는 인건비 등 운영비로 사용하려고 했다”며 “이로 인해 결국 40억 원을 포기하고 인수를 없었던 일로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부는 지난 2011년 기업회생절차가 진행 중인 네오세미테크를 싼 가격에 인수해 미래 신산업인 태양광 산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고, 시스템반도체 회사인 동부하이텍과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했다. 이를 위해 동부는 동부메탈을 통해 네오세미테크 채권단과 이 회사에서 분할돼 설립되는 사업 자회사에 일단 100억 원을 대여한 뒤 2년 후인 올해까지 지분 취득 문제를 매듭짓기로 투자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동부솔라라는 신설 법인까지 출범시키고 40억 원의 초기 투자금까지 투입했지만, 추가적인 손해를 막기 위해 발을 뺐던 것이다.
태양광 사업 ‘일단 정지’를 택한 동부는 현재 태양광보다는 화력발전 사업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일요신문> 1075호 보도). 태양광의 경우 그룹에 최소 인원의 사업준비팀을 남겨놓고 시장이 다시 열릴 것을 대비해 시장 조사 등 기초 준비만 하고 있는 정도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