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벽두의 잠재력을 높게 보는 것은 무엇보다 부계의 혈통에 기인한다. 부마가 미국 연도대표마까지 지낸 컬린(CULIN)이며, 조부마는 세계 최고의 씨수말 가운데 하나인 미스터프로스펙터의 자마 스마트스트라이크(SMART STRIKE)다. 미스터프로스펙터는 경주력도 대단했지만 그의 후대들이 뛰어난 성적을 올리면서 경마 족보의 한 축을 이룰 정도로 우뚝 섰다. 국내에서 과거 일세를 풍미했던 섭서디(상자기사 참고)가 그 직계 자마다.
스마트스트라이크는 그 아비마인 미스터프로스펙터보다 더 왕성한 후대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후대들의 상금으로 순위를 매기는 미국 리딩사이어에 두 차례나 올랐으며 최근(2011년)에도 리딩사이어와 2세마 리딩사이어 두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을 만큼 빼어난 활약을 하고 있다. 현역시절엔 경주에 많이 출전하지 않았지만 블랙타입경주 2승을 포함, 모두 8전 6승 2위1회를 기록했을 만큼 경주력도 우수했다.
이처럼 뛰어난 경주마의 직계 자마가 벽두의 부마 컬린이다. 컬린은 현역시절 가문의 명성을 능가할 만큼 큰 활약을 했다. 16전 11승 2위2회 3위2회를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9승(2위2회, 3위2회)이 블랙타입경주다. 블랙타입 9승 중에는 [G1]대회 6승이 포함돼 있다. 이런 성적을 바탕으로 컬린은 3세 때인 2007년엔 미국 ‘3세 수말 챔피언’에 오르며 연도대표마까지 뽑혔고, 4세 때인 2008년에도 ‘4세이상 수말 챔피언’에 오르며 연도대표마를 지냈다. 경마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최강의 경주마였던 것이다. 이처럼 벽두의 부계는 가히 ‘위대한 가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모계도 보통 가문은 아니다. 모마인 베이그 노션(VAGUE NOTION)은 현역시절 일반경주에서 3전 1승에 그쳤고 씨암말로 전역한 이후에도 뚜렷한 성적이 없지만, 외조부인 그랜드 라지(GRAND LODGE)는 영국 경마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명마다. 13전 4승 2위2회 3위3회의 성적을 거뒀다. 이 가운데 3승 2위2회 3위2회가 [G1]대회 3승을 포함한 블랙타입경주 성적이다. 씨수말로의 성적은 더 화려하다. 2000년 영국/아일랜드 리딩사이어 3위를 시작으로 호주, 프랑스, 뉴질랜드 등지에서 최근까지 줄곧 리딩사이어 10위권을 오르내릴 만큼 후손들이 뛰어난 활약을 하고 있다. 10여 년간 리딩사이어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말은 흔치 않다는 점에서 그의 혈통적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 최고의 혈통을 자랑하는 경주마 벽두. 사진제공=한국마사회 |
이 경주에서 벽두는 조인권 기수가 초반에 강하게 밀어주자 다른 말들보다 머리를 먼저 내밀었다. 그리고 조 기수가 좋은 자리를 선점했다고 판단해 조금 늦추자 순응하며 힘 안배에 들어갔다. 이 틈을 타 다른 마필들이 대거 벽두를 앞질러 나가면서 벽두는 중간그룹으로 밀렸다. 하지만 거리 차이는 크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 3~4코너를 선회한 벽두는 결승선 직선주로에 도달하자 힘을 내 앞서가는 마필들을 모조리 따라잡기 시작했고 이내 선두에 있는 말까지 사정권에 뒀다. 그러나 그 순간 박시천 기수가 기승한 네버렛미다운이라는 말이 안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진로가 막혔고, 이후 외곽으로 말을 빼 맹렬히 추입했다. 결과는 1¼마신 차이의 우승.
현재까지 드러난 벽두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로 보인다. 기수의 지시에 잘 따른다는 점, 지지 않으려는 근성이 대단하다는 점, 모래를 맞아도 꿋꿋하게 뛰어줘 선추입이 자유롭다는 점 등이다. 단점이라면 아직은 순간 폭발력이 명마로 보기엔 많이 부족하다는 것.
경마 전문가 이병주 씨는 “아직 힘이 덜 찬 마필이라 정확한 평가는 어렵지만 1군까지는 무난히 진출할 마필로 보인다”며 “다만 초반 순발력과 출발구간 이후 선두권을 따라잡는 대시 능력은 조금 더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병주 씨는 또 “소속조인 51조가 데뷔 초기엔 무리하지 않고 기본기 훈련을 충실하게 하면서 차근차근 말을 만들어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이 마필도 마방에선 힘이 찰 때까지 기다릴 가능성이 높다. 현재는 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기본실력으로 뛰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는 의견을 보였다.
김시용 프리랜서
멈출 줄 몰랐던 ‘폭주기관차’
그러나 섭서디에게도 적임기수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섭서디와 비교적 호흡이 잘 맞았던 기수는 박수홍 전 기수였다. 이주용 문세영 신형철 등이 섭서디에게 끌려다녔다면 박수홍 전 기수는 어느 정도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2005년 3월 일반경주에서 섭서디에 처음 기승해 우승을 거둔 이후 그해 마주협회장배 우승을 거쳐 연말 그랑프리까지 제패했다. 지축을 울리는 엄청난 파워, 상대를 단숨에 제압하는 스피드, 그리고 한번 내달리면 멈출 줄 모르는 폭주기관차 같은 기질로 수많은 경마팬들을 매료시켰던 명마 섭서디는 현재 승용마로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김시용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