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흡 후보자는 TK 출신인 데다 보수주의 성향을 띠고 있어 청문회에서 야권의 공세가 예상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1951년생인 이동흡 후보자는 사법부 내에서 TK 출신으로선 최고 맏형이다. 본래 경북 청도 출신이나 대외적 기록상에는 대구 출생으로 기재돼 있으며 대구초교, 능인중, 경북고를 거쳐 서울대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년 만에 제15회 사법시험을 통과한 이 후보자는 1978년 부산지방법원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해 주요요직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법관으로서는 정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셈이다.
그가 가진 경력도 화려하다. 부산지방법원에서 판사로 재직할 당시 이 후보자는 민·형사법뿐만 아니라 공정거래, 지적재산권, 조세 분야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한 곳에 빠져들면 ‘끝장’을 보는 성격답게 이 후보자는 해당 분야에서 인정을 받으며 일찍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85년엔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해외연수도 다녀왔다. 미국 조지타운 법대로 유학을 떠난 이 후보자는 이곳에서 미국헌법에 대해 연구했는데 이때의 경험은 향후 헌법재판소와의 긴 인연에 초석이 됐다. 이곳에서도 끝장을 보는 그의 성격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단순히 ‘견학’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2년 남짓한 시간 만에 조지타운 로스쿨 대학원에서 비교법학 석사까지 따낸 것이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 후보자는 서울고등법원에서 판사로 재직한 뒤 1989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마침내 1992년 3대 헌법연구부장으로 헌법재판소와의 인연을 맺었다. 열혈 학구파였던 이 후보자에게 헌법연구부장의 자리는 적격이었으나 그리 오래 머물진 못했다. 1년 만에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임명돼 떠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후보자와 헌법재판소의 인연은 쉽게 끊이지 않았다. 수원지법으로 자리만 옮겨갔을 뿐 이내 헌법재판소로 파견됐으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판사이자 헌법연구자로서의 인생이 시작됐다. 이후 이 후보자는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를 거쳐,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장, 수원지방법원장을 거치며 업무적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법원에 재직하면서 판사 중에서는 위헌법률심판을 헌재에 가장 많이 제청한 법관으로 손꼽혔으며 그 중 2건에 대해서는 실제 위헌결정을 받기도 했다. 또한 수원지방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는 이혼상담 및 숙려기간제도를 시험 실시해 4%대에 머물던 이혼신청 취하율을 30%로 높인 공도 세웠다.
이 후보자의 활약은 비단 법원 내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1993년부터 사법연구원에서 예비 법조인들을 상대로 헌법소송을 강의하며 후배 양성에도 힘썼으며 사법제도발전위원회 위원으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줬다. 틈틈이 자기계발도 잊지 않았는데 바쁜 생활 속에서도 중국어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향후 해외로 활동 범위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됐다.
다만 이 같은 그의 열정에 후배 판사들은 이 후보자의 휘하에 배속되는 것을 기피하기도 했다. 법원 은어로 ‘벙커판사’였던 셈이다. 벙커판사란 골프장의 벙커처럼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부장판사를 말하는데 이 후보자도 일을 너무 깐깐하게 챙기는 탓에 후배 판사들이 힘들어했다고 한다.
이처럼 법관으로 승승장구하던 이 후보자는 마침내 2006년 당시 한나라당의 추천 몫으로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지명돼 지난해 9월까지 헌법재판관을 지냈다. 여기서도 그는 ‘앉아있는’ 재판관이 되지 않았다. 2008년부터 3년 동안 아시아 국가들의 헌법재판기관 회의체인 ‘아시아 헌법재판소연합’ 창립 준비위원장으로 해외로 활동무대를 넓혀 나갔다. 이 후보자는 영어, 일어, 중국어, 독일어 등 외국어에 능통해 해외에서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었다고 한다.
▲ 해외로 활동무대 확대 2010년 열린 아시아 국가의 헌법재판기관 회의체인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 창설준비위원회 최종회의. 이동흡 재판관(맨 왼쪽)이 창준위원장을 맡았다. 연합뉴스 |
하지만 이 후보자가 모두에게 인정받는 법관은 아니었다. 그에겐 늘 꼬리표 하나가 따라다녔는데 ‘보수주의 재판관’이 그것이다. 이 후보자는 스스로도 “보수적 가치관은 헌법재판관의 덕목”이라며 자신의 성향을 숨기지 않았다. 더욱이 대표적인 보수 성향 법조인인 미국 제16대 연방대법원장 윌리엄 렌퀴스트로를 존경하는 인물로 꼽기도 했다. 실제 이 후보자는 헌법재판관을 역임하면서 웬만한 사건에 대해선 합헌 의견을 냈는데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한 쪽으로 치우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적인 사건 몇 가지만 봐도 이 후보자의 이러한 성향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2010년 12월 일명 ‘미네르바 사건’과 관련한 전기통신사업법 위헌 판결에서 7명의 헌법재판관이 위헌 의견을 제시했으나 이 후보는 “정당한 입법목적 달성을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며 합헌을 주장했다. 2009년 9월 야간 옥외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조항에 대해서도 결과적으론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으나 이 후보는 합헌 의견을 내놨다.
이밖에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 매체를 활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서도 합헌 의견을, 일명 ‘BBK 특검법’이라 불리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명박의 주가조작 등 범죄혐의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 중 참고인 동행명령제 관련 조항을 제외한 나머지에 합헌 결정을 내릴 때 이 후보자는 위헌 의견을 냈다. 이 때문에 이 후보자는 헌법재판관으로서 중심을 잃고 친정부적이자 보수주의 성향만을 고집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사건에 대해서도 이 후보자는 굽히지 않았다. 2011년 친일재산 환수는 민족정기 복원과 3·1 운동 정신을 담은 헌법 이념에 비춰 헌법에 부합한다는 헌재 결정이 내려졌을 때 그는 일부 위헌이라는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또한 위안부와 원폭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 문제에 대해 정부가 한일협정상 분쟁해결 절차조차 밟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에도 이 후보자는 “정부는 그럴 의무가 없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물론 이 후보자가 꼭 보수적 성향의 판결만을 내린 것은 아니다. 지난 2005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고 신효순·심미선 양의 가족이 검찰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청구소송 항소심에서 대부분의 미군 수사기록을 공개하라고 판결 내린 바 있다. 또한 2008년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이 주어지는 데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도 대다수의 재판관이 위헌결정을 내렸으나 이 후보자는 합헌 의견을 개진했다.
그러나 이러한 몇 개의 판결이 이 후보자에 대한 보수주의 성향을 가려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다. 게다가 보수주의 성향을 차치하더라도 이 후보자에 대한 법조계의 시선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지난 3일 청와대의 발표 직후 서초 법조타운은 크게 술렁였다.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이 후보자에 대한 평가가 이어졌는데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관계자는 “능력과 열정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 후보자가 그토록 열성인 것은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개인 입신양명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법조계에서도 모두가 ‘예스’라고 말할 때 혼자 ‘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이 후보자는 자신의 논리에 억지로 맞추려고만 하는 것이 문제다”고 말했다.
실제 이 후보자는 동료나 선후배들과 때때로 부딪치기도 했다. 2005년 수원지방법원장을 역임했을 땐 형사 재판에서도 민사 재판처럼 유죄를 받은 피고인에게 재판 비용을 부담시키자고 주장해 형사부 판사들과 각을 세운 바 있다. 헌재에서도 개인적인 일에 헌재연구관들을 동원해 반발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이유들로 법조계에서도 청와대의 헌법재판장 지명에 난색을 표하고 있으며 정치권에서도 ‘잘못된 인사’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민주통합당은 지명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브리핑을 통해 “이동흡 후보자는 헌법재판관으로 근무하면서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하는 판결을 많이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정신을 훼손하는 보수편향이라 말하기조차 민망한 정체불명의 인사”라며 지명철회를 요구했다. 또한 이 후보자 지명 이전에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의 조율이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번 인사는 실질적으로 박근혜 당선인의 인사다. 헌법 정신을 무시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장은 안중에도 없는 박 당선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라고 혹평했다.
이처럼 정계 안팎에서 반발이 강하게 일고 있으나 청와대는 조만간 국회에 이 후보자에 대한 헌법재판관 겸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제출하고 일련의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청문회라는 큰 난관이 버티고 있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모르는 상황. 과연 헌법재판관 출신 최초의 헌법재판소장이 탄생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박근혜 짐 덜어주기
“장관급 이상의 고위직 인사는 더 이상 없다”고 밝힌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를 불과 50여 일 남기고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을 신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지명한 이유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본래 차기 대통령 당선인이 확정된 후에는 현 정부가 장관급 인사를 단행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이에 청와대는 “오는 21일 이강국 현 헌재소장의 임기가 끝난다. 헌법재판소가 매우 중요한 기관인 만큼 공백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이 대통령이 지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인선을 박근혜 정부로 넘기게 되면 최소 한 달 이상의 공백기가 이어질 것이고 게다가 야당의 반발이 있을 시 그 기간이 한정 없이 길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자칫 박근혜 정부의 첫 기관장 인선부터 구설수에 오를 위험도 있기에 현 정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해결하고 간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지명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의 협의가 오갔다는 청와대의 발펴는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싣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법원 최고 자리 놓고 기싸움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함께 5부 요인으로 불릴 만큼 상당한 권력을 가진 자리로 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이번 헌법재판소장 지명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5기 헌재’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더욱 관심을 끌었다.
일단은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의 지명으로 인해 5기 헌재는 보수적 색채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9월 이진성, 김창종, 안창오, 강일원 등이 새로이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면서 5기 헌재는 서울대 법대 출신과 공안 분야 전공 검사의 비율이 높아졌다. 9명의 재판관 중 6명이 서울대 법대 출신이며 민변 회장을 지낸 송두환 재판관과 유일한 여성인 이정미 재판관을 제외하면 모두 고위 법관이나 공안 전공 검찰 고위직 출신이라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또 다른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바로 대법원과의 법원 최고자리를 놓고 벌이고 있는 신경전이 심화될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과거 이 후보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권력 행사의 대표적인 사례가 재판”이라며 “법원이 정신 바짝 차리고 법을 바로 해석할 수 있도록 헌재가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할 만큼 헌재의 독립성을 주장하던 인물이다.
실제로 최근 GS칼텍스 세금부과, 법원조직법 적용 등 헌재와 대법원의 견해가 대립되는 사례가 몇 건 발생했다. 특히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으며 ‘재판소원’ 논란을 촉발시켰던 GS칼텍스 사건은 이 후보자가 주심이었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이 근거 없는 기우는 아닌 것이다. 또한 이 후보자는 헌법재판관을 퇴임하면서 “대법원 확정 판결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재판소원 도입 여부는 세계적인 이슈로, 대법원이 한정위헌 등을 거부한다면 재판소원을 도입하는 게 맞다”고 밝혀 앞으로 대법원과의 한바탕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