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는 홍콩 경제사에서 첫 번째 전환점으로 간주되는 중요한 시기다. 이 시기 홍콩은 제조업의 발전을 밑거름 삼아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하며 한국, 대만,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주목받았다. 상하이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고 부동산 활황이 이어졌으며, 특히 영화 산업이 크게 발전하며 국제도시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매우 불안정했고, 고도성장으로 인해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등 부작용도 안고 있었다.
웨버는 홍콩이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급격히 성장하며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으로 부풀어 있던 이 시기를 셰익스피어의 격정적인 두 연인의 사랑이야기의 새로운 배경으로 선택했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얀 팻 토가 드라마터그로 참여한 각색에 따르면 로미오는 홍콩 유력 가문의 아들이고, 줄리엣은 상하이 출신 재벌로 삼합회와 관련된 가문의 딸이다. 두 주인공 외에 다른 인물들은 당대 홍콩이라는 배경에 맞게 이름과 설정을 조금씩 바꾸었다. 티볼트는 삼합회 수장 타이포라는 새로운 설정과 이름을 얻었고, 마요의 동명 발레에서처럼 줄리엣의 어머니 캐퓰릿 부인과 불륜 관계에 있다.

맨디 탐의 의상과 릭키 챈의 무대디자인은 이 작품을 1960년대 홍콩에서 벌어진 사랑의 비극으로 믿게끔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번쩍거리는 네온사인 아래 활기차고 시끌벅적한 홍콩 거리에서는 인기 간식인 페이케이람을 볼 수 있고, 캐퓰릿 가문의 무도회가 열리는 장소는 홍콩의 명물이었던 고급 선상 레스토랑이다. 이외에도 무협영화 제작붐이 일어나고 있던 당대 영화계를 복원한 듯한 영화 촬영 현장, 한탕을 꿈꾸며 마작방에 모여 도박을 하는 사람들, 공원에서 웨딩 사진을 찍는 신랑 신부들, 여성들이 입은 아름다운 치파오 의상에 이르기까지, 원작대로 흘러가는 이야기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장면마다 빼곡하게 들어찬 당대 홍콩의 세밀한 재현이다. 무엇보다 대립하는 두 가문 남성들의 패싸움에서 펼쳐지는 쿵푸와 봉술을 결합한 군무는 오직 이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유니크한 장면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연극은 물론 오페라와 발레로, 또 공연예술을 넘어 영화로도 쉼 없이 리메이크되며 오늘날까지 창작자들의 영감의 보고가 되고 있다. 프로코피예프가 작곡한 강력한 음악의 권위 아래 안무가의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발레의 경우에도 라브롭스키로 시작해 크랑코, 맥밀런, 베자르, 노이마이어, 누레예프, 그리고로비치, 프렐조카주, 마요, 매튜 본 등 내로라하는 안무가들이 원작자와 작곡가의 이름 사이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 거장들이 남긴 빛나는 작품 목록에서 웨버는 가장 마지막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면서도 절대 밀려나지 않을 유니크한 영역을 확보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적으로 성공한 뒤 “한국에선 왜 ‘케데헌’을 못 만드나”라는 질문이 돌림노래처럼 뒤따르고 있다. 독창성과 모험심을 용인하지 않는 한국의 제작 환경에서 원인을 찾는 진단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웨버의 ‘로미오+줄리엣’은 고유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모범 답안이 되고 있다.
윤단우는 주로 사람과 사랑과 삶에 관한 생각의 편린들에 대한 글을 쓰며, 댄서가 반짝이는 무대와 숨찬 마감이 기다리는 데스크를 오간다. 쓴 책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 ‘기울어진 무대 위 여성들’, ‘여성, 신체, 공간, 폭력’ 등이 있으며, 여성주의 공연 뉴스레터 ‘허시어터’를 발행하고 있다.
윤단우 공연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