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신세계가 못했기 때문에 그 자리를 현대백화점이 차지했을 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리고 신세계가 오랜 기간 변화 없이 안주하면서, 최소한 주식시장에서만큼은 당분간 현대백화점이 독주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잘 안 될 줄 알았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유동성이 폭발하면서 백화점업이 초호황을 맞이했던 2021년 6월 기준으로 신세계의 시총은 3조 원이 훌쩍 넘었다. 당시 현대백화점은 1조 원대 후반에서 2조 원대 초반을 오르내렸다.
당시나 지금이나 매출로 봐도 시총으로 봐도 1위는 롯데쇼핑이다. 당시 롯데쇼핑 시가총액은 3조 원 중반대였다. 그러나 롯데쇼핑은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롯데슈퍼, 심지어 롯데시네마까지 함께 있는 조직이다.
백화점만 따로 떼어놓고 봐도 점포가 많아서 총매출로는 압도적 1위 기업이다. 그럼에도 롯데쇼핑의 시총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은 프리미엄 이미지가 덜해 이익률이 높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즉 백화점업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럭셔리 이미지는 그동안에는 신세계가 갖고 있었다가, 지금은 현대백화점이 가져가는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현대백화점은 3분기 예상 실적이 9월 말 기준으로 매출 1조 624억 원, 영업이익 830억 원이다. 신세계(1122억 원), 롯데쇼핑(1631억 원)보다 훨씬 적지만, 그럼에도 주목받은 것은 이익의 질이 좋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 자회사인 가구·인테리어업체 지누스의 실적이 예상보다 좋지 않아 영업이익은 기대치를 밑돌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본업이 튼튼해 전체적으로는 만족할 만한 실적을 낼 것이라는 것이 증권사 연구원들의 분석이다.
교보증권은 외국인 고객이 주로 찾는다는 점이 현대백화점의 강점이라고 지목했다. 특히 ‘더현대 서울’이 외국인 관광객들의 성지 역할을 하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주목할 만한 지표도 있는데, 이는 더현대 서울의 외국인 매출 비중 중 패션이 46%, 럭셔리가 32%라는 점이다. 럭셔리 상품군의 단가가 훨씬 높은 데도 패션 매출 비중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외국인 고객이 방문한다는 뜻이다. 최근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늘고 있는 만큼, 더현대 서울 매출은 꾸준히 우상향할 가능성이 있다.
더현대 서울이 고속버스터미널과 붙어 있는 신세계 강남점, 명동에 위치해 있는 신세계 본점을 뛰어넘는 쇼핑의 성지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만하다는 것이다.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는 패션과 럭셔리 매출 비중을 따로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럭셔리 매출이 훨씬 클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처음 더현대 서울이 출범할 때부터 이 같은 상황이 예견됐다고 지적한다. 더현대 서울은 2021년 문을 열었는데, 현대백화점이 2015년 판교점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열여섯 번째 점포였다. 2016년부터 5년간 준비했으나 신세계, 롯데백화점 등은 여의도라는 입지 특성상 더현대 서울이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깎아내렸다.
당시 유통업계 한 고위 임원은 “현대백화점 목동점과 디큐브시티점, 신촌점 고객과 겹칠 것”이라며 “여의도는 카니발리제이션(자기시장 잠식)이 나타날 지역이라 백화점이 적합하지 않은 입지인데, 현대백화점이 실수한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로 더현대 서울 성공 전까지는 여의도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팽배했다. 직장인들이 주도하는 상권이라 주말에는 공동화돼 백화점 입지로는 부족하다는 견해가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더현대 서울은 최단기간 내 매출 1조 원을 돌파한 백화점 점포에 등극했고, 오히려 더현대 서울로 인해 인근의 IFC몰까지 고객이 늘어나는 현상이 빚어졌다.
더현대 서울은 또 10km 이상 떨어진 원거리 고객 매출 비중이 절반이 넘는 독특한 기록도 가지고 있는데, 시장 전문가들은 더현대 서울이 빨아들인 고객군이 기존에 신세계 고객이었던 소비 여력이 큰 강남권 고객일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세계 안팎에서는 신세계도 더현대 서울 못지않은 랜드마크 점포를 개발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계속되는 리뉴얼 속 면세점 사업 딜레마
신세계는 오랜 기간 프리미엄 백화점 이미지를 독식했다. 명품은 신세계에서 구매해야 한다는 인식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이 덕에 신세계 강남점은 2021년부터는 전 세계 1위 매출 점포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게 됐다. 2023년에는 글로벌 백화점 중 처음으로 매출 3조 원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전적으로 럭셔리 매출 덕분이다.
신세계 강남점 이전에 세계 1, 2위 매출 기록을 세운 곳은 도쿄 이세탄 신주쿠점과 오사카 한큐백화점 우메다점이었다. 신세계 내부에서는 신세계만의 브랜드 이미지는 전혀 훼손되지 않았으며, 부동산 호황이 또 한 번 도약의 기회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부동산 열기가 뜨거워지면 강남권 재건축, 재개발 기대감이 다시 불붙고 그 과정에서 럭셔리 매출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20~2021년 일부 재건축 조합에서 조합원 증정용으로 명품 가방을 한꺼번에 사들여 업계에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여기에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은 1991~1995년생이 결혼 적령기에 들어서고 있다는 점, 이로 인해 출산 및 아동용품 판매 증진이 예상된다는 점도 신세계가 기대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강남권 고객 중에는 신세계가 최근 지나치게 평효율(평당 판매율)을 강조한다면서 아쉬워하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신세계는 신세계 강남점을 필두로 다수 점포가 내부 리뉴얼을 통해 기존에는 고객이 쉬는 공간, 혹은 이동 통로였던 곳을 개발 후 임대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매출 자체는 늘겠지만, 고객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전문가들이 꼽는 신세계의 개선해야 할 점은 면세점 사업 축소다. 신세계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꾸준히 하향 조정되고 있는데, 주요 원인이 백화점 리뉴얼에 따른 감가상각비 증가에다 면세점의 부진이다. 그리고 면세점 실적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중국인 관광객이 기대만큼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임대료가 고스란히 지급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에 면세점들은 인천국제공항 측에 임대료를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인천공항공사는 당초 계약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명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신세계는 아직 의사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지만, 호텔신라 사례를 보면 신세계 또한 인천공항에서의 철수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신세계가 DF2 지역에 대해 영업철수를 결정할 경우 상당 금액의 적자 개선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신세계의 시장 점유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어 프리미엄 백화점 이미지를 빼앗기고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