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브돌 동호회 회원들이 저마다 크리스마스 파티에 가지고 온 러브돌. |
요즘 외모가 뛰어난 20대 초반 여성은 이른바 ‘리얼돌녀’라며 화제가 되곤 한다. 인형처럼 예쁘단 뜻인데, 이 리얼돌(real doll)이란 말은 미국의 한 성인용품업체의 섹스용품에서 유래한 것이다. 리얼돌, 섹스돌, 러브돌 등은 인체와 비슷한 크기로 만든 여성형체의 남성용 인형을 일컫는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실리콘, 라텍스로 만들어진 정교한 러브돌이 등장하면서 마니아층이 점점 늘고 있다. 성업 중인 제조업체만 해도 무려 20여 개에 달하는데 미소녀, 서양미녀부터 흡사 애니메이션 여주인공과 비슷한 얼굴을 한 인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러브돌이 나오고 있다. <주간포스트>를 중심으로 독특하고 기이한 러브돌의 세계를 살펴봤다.
죽늘어선 갖가지 표정의 얼굴 모형, 머리가 없는 실리콘 재질의 몸통…. 마치 SF영화나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풍경이지만 실은 러브돌을 만들어내는 현장의 모습이다. 러브돌 제작공장에 가면 항상 30가지 이상의 다른 표정과 골격을 가진 얼굴 모형을 볼 수 있다. 몸도 그렇다. 허리가 쏙 들어가고 가슴이 큰 모형이 있는가 하면 가슴이 작고 밋밋한 몸매를 가진 아담한 모형도 있다.
러브돌은 대개 주문을 받아 제작되며 모양은 가지각색이다. 체형, 키, 피부색, 눈동자 색깔부터 화장 정도, 가슴 사이즈, 헤어스타일 등 취향에 따라 골라 주문서를 작성한 뒤 3주에서 한 달을 기다리면 내 것이 된다. 최근에 가장 인기가 높은 미소녀 러브돌의 가격은 무려 74만 엔(약 900만 원). 제일 싼 것도 54만 엔(약 660만 원)선이다. 중고품조차도 10만 엔(약 120만 원)은 너끈히 넘는다.
완성에 긴 시간이 걸리고 가격이 비싼 이유는 다름 아닌 수작업으로 공정이 진행되기 때문. 손재주를 발휘해야 하는 이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조형사’라 부르는데, 특히 실리콘으로 된 몸통을 만드는 작업이 어렵다. 지나치게 딱딱하거나 부드럽지 않게 적당한 정도로 몸통이 만들어져야 한다. 몸통과 얼굴을 잇는 작업도 힘들다. 인간처럼 목이 얼굴을 받쳐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연결 시 세밀한 작업이 요구된다. 각 업체들은 기술이 좋은 조형사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 오리엔트 공업사의 러브돌 제작 과정. |
어느 업체든 러브돌 제조 중 중점을 두는 포인트는 인간과 조금이라도 더 비슷하게, 그야말로 ‘리얼’하게 보여야 하는 점이다. 러브돌을 찾는 소비자들이 사실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는 인형을 선호하는 추세기 때문. 그래서 제조현장에서는 갖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진짜 머리카락을 심거나 눈 위아래로 인조 속눈썹을 한 올 한 올 붙이기도 한다. 인공관절을 넣어 목을 좌우로 돌리거나 손가락을 구부릴 수 있게끔 하고 반투명 흰색 실리콘 치아를 넣기도 한다. 이런 노하우를 살려 일본의 대표적 러브돌업체 오리엔트공업사에서는 치과대 실습용 인형도 납품하고 있을 정도다. 실리콘의 스킨과 구강점막을 가진 인형이다.
리얼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중요한 요소는 바로 무게. 러브돌의 중량은 약 30~40㎏로 실제 사람에 비해 몸무게가 적게 나간다. 이 정도 무게도 인형이기 때문에 성행위 시 사용하면 굉장히 무겁고 부담스럽다. 따라서 피부 바깥은 실리콘으로 하되 몸통 속에 비교적 가벼운 폴리우레탄수지나 강화플라스틱을 넣어 20㎏ 정도까지 중량을 줄이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해서 만들어진 인형과 섹스를 하다니 참 유별나고 괴상하단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저명한 러브돌 마니아 다카쓰키 야스(47)는 “실제 여성과 하는 것보다 러브돌과 하는 게 낫다”고 말한다. 그는 요사이 각광을 받는 실리콘 러브돌이 나오기 전인 30여 년 전부터 러브돌을 수집해왔는데 가지고 있는 것만 100개가 넘는다. 그는 동호회 사이트를 운영하며 러브돌 수집 취미를 가진 이들과 만나서 일 년에 한 번씩 파티를 연다. 비공개 파티에 20명가량 모이는데 모두들 자기의 러브돌을 하나둘씩 가지고 와서 옆에 앉혀 놓고 식사를 한다. 외출이나 산보를 할 때는 아무래도 남들의 시선이 있으므로 휠체어에 태우고 다닌다고.
원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적 대상이 되는 인형은 늘 존재해왔다. 고대 중국에는 대나무로 만든 사람 형상의 인형이 있었는데 주로 안고 자는데 쓰였다. 근세 에도시대 일본에도 헝겊조각으로 만든 섹스용 인형이 있었는데 부유층을 위해 특수제작된 고급품에 속했다. 14세기 영국에는 ‘네덜란드 부인(dutch wife)’이란 인형이 있었다. 교역을 자주 하던 네덜란드의 선원들이 장기간의 항해에 대비해 성생활에 쓰던 베개에서 유래된 것으로 요즘도 영어권에서 ‘네덜란드 부인’라 하면 러브돌을 가리킨다. 일본에서 얼굴이 있는 현대식 러브돌이 처음 나온 건 1950년대 말이다. 당시 일본에서 첫 탐험대가 남극으로 가면서 비닐로 돼 펌프로 공기를 주입하는 식의 초창기 러브돌을 가지고 갔는데 너무 조악해 사용한 대원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실리콘이 널리 쓰이게 되는 1990년대부터 현재와 같은 형태의 러브돌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 오리엔트 공업사 러브돌. |
물론 러브돌을 샀다고 해서 모든 이가 성행위를 선호하는 건 아니다. 호기심에 러브돌을 구입해 섹스를 해봤더니 “무표정에 무응답이라 성행위 중 갑자기 열기가 식어버렸다”거나 “체온이 느껴지지 않아 안으니 차가웠다”고 불평하는 구입 후기를 남긴 고객도 있다. 이런 불만을 없애고자 업체 측에서는 눈알로 아크릴 수지로 된 구슬을 넣어 움직일 수 있게 하거나 겨울에 성행위 전 미리 러브돌의 몸을 덥힐 수 있는 전용 전기담요 등을 내놓고 있다. 반면 여름에 성행위를 하려면 땀으로 인해 끈적거리므로 러브돌에 파우더를 발라놓는 게 필수다.
성행위는 전혀 하지 않고 단순히 외로워서 안고 자려고 러브돌을 구입하는 이도 있다. 그런가하면 옷을 갈아입히고 머리를 손질해주며 인조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식의 치장하는 재미를 중시하는 이들도 있다. 입히는 옷은 게임, 만화의 주인공이 입는 코스프레복에서부터 평상복까지 마음대로다.
<주간포스트>에 따르면 러브돌의 구입자는 대부분 재력이 있는 40~60대 남성이다. 젊은 남성은 매우 드물며 가격이 비싸 구입대신 대여를 한다. 렌털 업체에서 1시간당 1만 엔(약 13만 원)대로 빌려주는데 성행위에 필요한 홀은 스스로 별도로 준비해두어야 한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