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서’ 서봉수 9단(왼쪽)과 ‘소서’ 서능욱 9단이 제3회 대주배 결승국을 두고 있다. |
소서(小徐) 서능욱 9단이 1월 9일 왕십리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3회 대주배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결승에서 대서(大徐) 서봉수 9단을 제치고 우승했다. 대회 2연패다. 서능욱 9단은 지난해 2회 때에는 조훈현 9단을 꺾고 우승, 1972년 입단 이후 78년 실로 40년 만에, 또 제4기 최강자전 준우승부터 91년 제31기 최고위전 준우승까지 통산 13회 준우승 만에 생애 첫 타이틀의 감격을 누렸었다.
‘TM마린’(대표 김대욱)이 후원하는 대주배는 만 50세 이상만 참가하는 시니어 기전. 제한시간은 예선과 본선1회전(16강전)은 각자 1시간에 1분 초읽기 3회, 본선2회전부터는 각자 15분에 40초 초읽기 3회. 보통은 올라갈수록 시간을 많이 주는데, 여기는 반대다. 8강부터 바둑TV가 방영하기 때문이다. 좀 이상하지만 주최 측이 알아서 할 일. 예산은 6800만 원, 우승 1000만 원, 준우승 300만 원. 큰 기전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주최자와 참가자들이 쏟는 정성과 느끼는 의미는 큰 기전에 못지않다. 크면 좋겠지만, 커야만 좋은 것도 아니다.
서봉수 9단은 1회 때 조훈현 9단과 결승에서 만나 준우승했고 이번에 다시 기회를 잡은 듯했으나 또 실패했다. 시니어에서는 무조건 조훈현 9단이 1등, 서봉수 9단이 2등, 다음은 ‘몰라’인 줄로 대부분 사람들은 알고 있을 텐데, 세 번을 치른 대주배의 결과는 젊었을 적 서열이 나이 들어서도 계속 그대로 가는 것은 아닐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서능욱 9단의 2연패에 주변의 친한 지인들은 “고목생화”라느니 “뒤늦게 철들었다”느니 농담을 퍼부으면서도 “이게 꼭 의외인 것은 아니다”라고, 정색을 하고 말한다. 예전에도 3인자였거나 3인자 그룹의 한 사람이었으며 실력이 조훈현 서봉수와 별 차이가 없었으나 다만 워낙 속기파여서 상대적으로 실수가 좀 많았고 승부 근성에서 조-서에 밀렸을 뿐이라는 것.
그렇다. 1958년생, 14세 입단의 서능욱 9단도 소시적부터 천재 계보로 분류되던 기재였다. 그런 경우가 또 한 사람 있으니 10여 년 전에 불가사의하게 은퇴한 김희중 9단(63)이다. 1980년대가 조-서 일색으로 물들여질 때 사람들은 김희중과 서능욱, 두 사람을 쳐다보며 안타까워했었다. 서능욱 9단의 이력 중에서는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대왕전 4연속 준우승이다. 대왕전은 대구 매일신문이 1983년 출범시킨 기전. 서 9단은 창설 첫해부터 86년 제4기까지 내리 타이틀 결정전에 진출해 4년 연속 조훈현 9단을 만나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고 말았다. 첫해는 결승5번기 이듬해부터는 도전5번기였는데, 매년 두 판 정도는 대구 매일신문 사옥에서 두었다. 어느 때였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아무튼 그 4년 중 한 해 대구 대국에 서능욱 9단과 동행한 적이 있었다.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필자가 물었다.
“조-서가 세죠?”
그는 피식 웃었던 것 같다.
“글쎄요… 잘 두기는 잘 두는 것 같은데… 못 이길 바둑은 아닐걸요.” 그러더니 특유의 파안대소를 날리며 덧붙였다.
“에이, 별 바둑들도 아닌데.”
그 자신감에서 김희중과 서능욱은 같은 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 조훈현에게 가끔 일격을 가한 사람도 서봉수를 빼고는 아닌 게 아니라 두 사람 정도였다. 예전엔 도전기 같은 게 벌어지면 공개해설회가 따랐다. 강당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대형 자석바둑판에 자석 바둑알을 놓아가면서 해설하는 것.
“모처럼 대구까지 왔는데, 공개해설도 있는데, 팬들이 지루하지 않게 우리 좀 빨리 두는 게 어떠냐, 그래서 그러자고 했죠. 그런데 두다가 내가 실수를 했어요. 실수를 하니까 거기서 딱 장고에 들어가더니 끝내던데요. 하하하.” 그게 벌써 30년 전 일이다. 서능욱은 변함없이 속기인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지금은 속기가 각광 받는 시대가 되었다. 대주배도 속기다. 나는 가만히 그 자리에 그냥 그렇게 서 있었건만, 세상이 알아서 변해 주었으니 이런 게 다 운이다.
서 9단은 또 인터넷 바둑의 열렬한 애호가. 타이젬을 휘젓고 다니는 ‘joonki’라는 아이디가 바로 서 9단이다. 현재 2만 6000판 정도를 두어 1만 6000판쯤을 이겼다. 요즘도 매일 하루에 스무 판 이상을 둔다. 그런 엄청난 양의, 게다가 즐거운 스파링도 도움이 안 되었을 리 없다. 내년 후년을 기대해 본다. 대왕 4연속 준우승의 묵은 빚을 대주 4연패로 갚아 버릴 것인지.
이광구 객원기자
대주배 4강전 서능욱 9단-흑 안관욱 8단-백
소개하는 기보는 1월 2일의 4강전, 2013년 공식 대국 1호, 안관욱 8단(52)과의 일전이다. 안 8단은 인물과 인품에서 평판이 아주 좋은 기사. 시니어 중에서는 성적도 꾸준히 내고 있다.
<1도> 포석이 한창이다. 우상귀 백1을 잠시 외면하고 서 9단은 흑2~6으로 좌상쪽을 틀어막는다. 대모양작전이다. 죄변 흑진은 백A의 침입이 늘 신경 쓰이는 곳인데 그것도 방비하고 있다. 백7은 시급한 삭감. 흑10은 기본적인 성동격서, 백11, 13 때 흑B를 생략하고 중앙을 덮어간 흑14가 호방하다. 이런 게 서 9단의 매력.
<2도> 백1~11로 정비하는 것을 보고 일단 우상귀 흑12로 돌아온다. 우하귀 백13 이하는 이런 정도. 그러자 다시 흑20으로 공격의 전열을 갖추며 흑A를 위협하는데… <3도> 백1이 안 8단답지 않은 큰 실수였다. 백3, 이 자리까지 맞으면 모양이 걷잡을 수 없어 지키는데, 흑4 이하가 멋진 사전 공작. 이 패는 백이 견딜 수 없어 결국 팻감을 주고받으며 몇 차례 패싸움을 하다가 <4도> 백5까지 일단락. 그러나 그 순간 흑6이 작렬했고 흑8로 백 넉 점을 끊어 잡았다. 검토실은 여기서 “흑이 질 수 없는 바둑이 되었다”고 말했다.
<5도> 백1로 이으면 흑2가 기다리고 있다. 흑6까지 백 전체가 궤멸한다. 백은 <3도> 백3으로는 좀 분하더라도 <6도> 백1로 지켜야 했다는 검토실의 지적이다. 물론 <2도> 흑20, <7도> 흑1 때 백2로 받았으면 이제부터 먼 길을 가는 바둑이었다는 것. <7도>는 백A가 있어 백 대마가 그렇게 심하게 몰릴 모습은 아니니까. 그런데 실전은 그걸 스스로 없앴다.
흑의 좌상귀 공작이 용의주도했다는 것은 그게 없이 <5도>처럼 흑이 백을 공격하는 그림이 <8도>인데 이건 흑이 무리라는 것. 백1로 흑의 눈 모양을 없애고 3-5로 흑이 좌우를 연결하지 못하게 한 후 7로 끊고 흑8 때 백9로 다시 배후를 끊으면 거꾸로 흑이 잡힌다. 백5에 흑6 생략하면 백A로 끊고 죄어 여기서 거의 선수 한 집이 생기므로 역시 흑은 공격은 어렵다.
침착하기로 유명한 안 8단이 어떻게 이런 실수를 했는지, 이런 게 사실은 속기의 병폐다. 아마추어는 속기가 본령이겠지만, 프로의 속기대회, 너무 많다. 줄여야 한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