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중국음식을 먹고 나면 후식으로 쯔마치우(芝麻球)가 나온다. 찹쌀경단을 튀겨서 참깨, 흑임자에 굴려서 만든다. 서양 음식을 먹은 뒤에도 파이나 케익류를 후식으로 먹을 수 있다. 한식에는 그런 달콤한 후식이 없을까?
매작과가 있다. 매작과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과자다. 밀가루에 참기름, 꿀을 넣고 기름에 지져서 만드는 후식(後食)이다. 옛날에는 제사, 혼례, 연등회 등에 많이 쓰였고 주로 명절에 만들어 먹었다. 요즘에는 손님접대용 다과상이나 어린이들 간식으로도 쓰인다. 추운 날씨가 계속되는 겨울 날 가족이 전부 모여 있을 때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별식이기도 하다.
매작과는 기름에 튀겨 고소하고 바삭바삭하다. 생강과 계피 맛이 어우러져 풍미 또한 좋다. 꿀, 조청 등을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 잘 상하지도 않는다. 밀가루에 여러 가지 천연재료를 섞어 다양한 색상과 모양의 매작과를 응용하여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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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작과를 만드는 법은 이렇다. 밀가루에 소금과 생강즙을 넣고 반죽한다. 반죽을 얇게 민다. 그 다음 직사각형으로 썰어(길이 5㎝, 너비 2㎝) 가운데를 중심으로 길게 세 번 칼집을 넣는다. 그 다음이 매작과의 모양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세로의 한쪽 머리를 한가운데 째진 구멍에 우그려 넣어 뽑아서 리본처럼 모양을 낸다. 마지막 공정은 기름에 튀겨 즙청액(꿀 또는 설탕시럽)에 담갔다가 잣가루를 뿌리면 된다.
‘매작과 모양 썰기’ 기법은 조리 기법 중 하나로 다른 요리에도 응용되고 있다. 어묵, 우무(곤약) 등 부드러운 것을 1㎝ 두께로 자르고 중앙에 칼자리를 내어 칼로 자른 부분으로 한쪽 끝을 뒤집어 모양 좋게 만들어 먹는다.
매작과는 이름부터 아름답다. 우리 민족의 시적(詩的) 정서를 풍부하게 드러낸다. 매화 매(梅), 참새 작(雀)을 써서 매작과(梅雀菓)라고 부르는데, 과자의 모양이 ‘마치 매화나무에 참새가 앉은 모습과 같다’는 뜻을 갖고 있다. 매작과는 이외에도 매엽과, 타래과라고도 불린다. 경북에서 뽕잎차수과라고도 한다.
매엽과는 매화나무 잎 모양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 1765년 영조의 71회 탄신을 축하하려고 경희궁 경현당(景賢堂)에서 행해졌던 잔치를 기록한 책 <수작의궤>에는 소소매엽과(小小梅葉菓)라는 과자가 소개되고 있다. 매엽과를 아주 작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조선왕조 후기의 연회 때 궁중에서 만들어 먹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차수과와 타래과라는 이름도 재미있다. 차수과(叉手菓)의 차수는 ‘두 손을 어긋매껴 마주 잡는다’는 뜻이다. 과자의 모양이 손을 마주 잡았을 때의 형상과 닮았다고 해서 이렇게 붙였다. 1901년 조선 후기 궁중에서, 왕·왕비·왕대비 등이 참석한 잔치 내용을 기록한 <진찬의궤(進饌儀軌)> <진연의궤(進宴儀軌)> 등에는 밀가루 4말, 참기름 1말, 꿀 1말, 지치 1근, 홍취유 2되, 설면자(雪綿子: 풀솜) 3돈 등 차수과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와 분량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진찬은 진연(進宴)보다 규모가 작고 의식이 간단한 잔치를 말한다. 1971년 <여성동아> 12월호 별책부록에 기록된 제조법을 보자. 밀가루를 반죽하여 얇게 밀어서 국수모양으로 가늘게 썰어 약 6㎝ 길이로 손가락 넷에 실을 감듯 감아 빼서 가운데를 약간 매는 것처럼 묶어 기름에 튀겨낸다고 되어 있다.
▲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타래과는 반죽을 가늘게 채 썰어 실타래처럼 돌돌 말아 튀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생활 속에서 자주 사용했던 실타래 모양을 응용했다.
매작과의 여러 변형들을 보고 있으려면 선조들의 뛰어난 미적 감각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장식품 같다는 생각도 든다. 너무 예뻐서 먹기가 아까울 정도다. 최근에는 국화꽃이나 장미꽃 모양으로 만든 매작과도 나온다.
색감도 경탄할 만하다. 밀가루를 반죽할 때 백련초 가루, 녹차 가루, 치자 물 등을 넣어 다양한 색을 만들어냈다. 요즘에는 당근즙, 흑임자가루, 포도즙을 이용하기도 한다.
두 겹으로 색을 낼 수도 있다. 예컨대 색이 다른 천연재료를 각각 넣고 반죽한 뒤, 색이 다른 두 장을 맞붙이고, 다시 밀어서 예쁜 색감을 낼 수 있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세계와 경쟁할 만한 색과 모양을 과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3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 여고생들은 가정 시간에 매작과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중년 여성들은 매작과 만드는 법을 기억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억 속에서만 가물가물할 뿐 일상에서는 사라지는 음식이 되고 있다. 디자인이나 색감이나 우리의 시적 상상력을 듬뿍 담은 매작과의 부활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