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주 회장(사진)의 미래에셋이 대박행진으로 ‘상한가’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막강한 영향력으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증권가 일각에선 우려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
요즘 주식시장의 최대화두는 단연 미래에셋이다. 미래에셋이 손대는 주식마다 대박이 터지면서 ‘개미’들 사이에서는 ‘미래에셋 따라하기’가 투자의 정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개미들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 미래에셋 자신의 몸값 또한 연일 치솟아 대우, 우리투자증권 등을 멀찍이 따돌리고 시가총액 2위에 올라서있다. 1위인 삼성증권마저 곧 따라잡을 기세다.
때를 놓칠세라 미래에셋은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지점을 확충하면서 덩치 키우기에도 나서고 있다. 특히 다른 증권사에서 우수인력을 대거 영입하는 작업을 벌여 요즘 여의도에서는 때 아닌 인력난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가히 신드롬이라 부를 만한 미래에셋 열풍의 위력은 한국의 주식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수준까지 이르고 있다. 지난달 중순 보험사 주식들이 무더기로 상한가에 진입한 것이 한 예다. 10월 18일 여의도에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중국 관련주를 팔고 보험주를 사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보험업종을 담당하는 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가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몇몇 사람들에게 보낸 내용이 급격히 퍼져나간 것이다.
문제는 정말로 이날 미래에셋이 보험주들을 사들였는지, 샀다면 어떤 회사를 얼마나 매입했는지는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 게다가 이런 분위기는 단순히 정보에 어두운 개미투자자들에게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운용사나 기관의 매니저들조차 정보원들을 통해 미래에셋의 매매 동향을 살피면서 이를 자산운용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자산운용사의 매니저는 “미래에셋이 많이 산 주식을 같이 사뒀더니 마음이 편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개인투자자들은 아예 동호회를 만들어 ‘미래에셋 따라하기’에 나서고 있다. 요즘 각종 증권 포털사이트에서는 미래에셋 종목분석 모임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각자가 수집한 정보를 공유해 미래에셋의 매매패턴을 분석하고 이를 모방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신드롬이 일면서 최근에는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미래에셋 따라하기’를 역이용하려는 세력이 등장한 것이다. 일부 기관은 미래에셋증권을 통해 특정 종목의 주문을 집중적으로 내놓고 급등의 원인을 미래에셋으로 돌리는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는 소문이다.
게다가 미래에셋은 주특기인 주식형 펀드를 통해서도 시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증권선물거래소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주식형펀드 잔고는 28조 3800억 원. 전체 주식형 잔고 93조 5670억 원의 30.3%에 달한다. 미래에셋의 국내 주식형펀드는 15조 원대. 이 역시 전체 국내 주식펀드의 30%를 차지한다.
이렇다 보니 올 들어 미래에셋이 5% 이상 지분을 취득했다고 금융감독원에 새로 보고한 19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주가는 연초 이후 평균 115.2%나 급등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의 상승률(35.8%)의 두 배가 훨씬 넘는 성적이다. 두산(356%), SK(130%), 효성(146%), 삼성물산(151.9%) 등 지주회사 테마들과 현대중공업(257%)과 LG화학(183%), SK케미칼(111.3%) 등 중국 수혜주가 많이 올랐다.
이에 따라 미래에셋은 개별 회사의 경영권과 경영 방침에도 무시 못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 부자간의 경영권 다툼이 있었던 동아제약 분쟁에서 미래에셋은 강신호 회장 등 현 경영진에 힘을 실어주면서 승부의 분수령이 됐다.
한국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도 주우식 부사장이 나서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과의 ‘약속’을 신청했다. 삼성전자는 올 들어 미래에셋이 보유 주식을 팔고 있다는 소문 때문에 상당기간 주가가 약세를 보이며 ‘미래에셋 괴담’의 희생양이 됐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의 만남을 놓고 벌써부터 갖은 억측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미래에셋은 여의도에서 증권가 인력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도 하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대우증권,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의 올해 퇴직자 수는 600여 명에 달한다. 8월 말까지 대우증권 218명, 삼성증권 140명, 현대증권에서 90명이 회사를 나갔고 우리투자증권은 9월 중순까지 110여 명이 퇴사했다. 유례 없는 증시호황 속에서 증권맨들이 사표를 던지는 아이러니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최근 지점을 늘리는 등 사세를 확장하고 있는 미래에셋증권으로 유입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미래에셋 때문에 다른 증권사들은 업무에 지장이 생길 지경이다”는 얘기마저 돌고 있다.
퇴직한 직원들의 미래에셋 러시는 비단 대형 증권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소형 증권사들의 경우 퇴직인력의 숫자가 대형사에 비해 적은 상황에서 상당수의 직원이 미래에셋으로 옮겨 새롭게 둥지를 틀고 있어 업무공백 파장이 대형사들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반해 미래에셋증권은 올 들어 직원이 600명가량 증가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50% 이상 새로운 인력이 유입된 것이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부서 및 지점 신설로 인해 많은 인력을 영입하게 됐다”며 “타사 직원들에게 입사할 수 있는 문호를 개방했을 뿐 고액 연봉 등을 미끼로 상도의에 어긋나는 인력 뺏기는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증권가 일각에선 갈수록 커지는 미래에셋의 지배력을 우려하고 있다. 시장의 쏠림 현상이 효율성을 저해시키고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증시를 좌우하던 ‘외국인’ 대신 등장한 미래에셋. 그 ‘미래’가 우리 증시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