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혼열차’(1957) ‘별아 내 가슴에’(1958)

김기영 감독의 적극적인 출연 제안을 받아들인 김지미는 ‘황혼열차’를 통해 영화계에 데뷔하게 된다. 본명이 김명자인 그는 이 과정에서 김지미라는 예명을 얻는다. 이때 나이는 고작 열일곱 살이었다.

#‘춘향전’(1961)
1958년 9월 김지미는 ‘별아 내 가슴에’를 연출한 홍성기 감독과 결혼한다. 당시 김지미는 열여덟 살이었고 홍성기 감독은 열여섯 살 연상이었다.
1961년 개봉한 ‘춘향전’은 홍성기 감독이 제작과 연출을 맡고 김지미가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당연히 김지미가 춘향 역할을 맡았다. 1961년 1월 18일 ‘춘향전’이 개봉했는데 열흘 뒤인 28일에는 ‘성춘향’이 개봉한다. 신상옥 감독이 연출하고 최은희가 춘향 역할을 맡았는데 당시 김지미는 최은희와 충무로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는 여배우였다. 당시 충무로에서는 두 여배우의 격돌이 엄청난 화제였다. 신상옥 감독과 홍성기 감독의 격돌이자 당대 최고의 여배우 최은희와 신성 김지미의 대결이었다. 게다가 신상옥, 최은희 부부와 홍성기, 김지미 부부의 격돌이기도 했다.

김지미는 홍 감독과의 결혼을 비롯해 네 차례 결혼을 했으며, 모두 이혼으로 끝났다. 1962년 김지미는 당시 톱스타였던 최무룡과 간통 혐의로 구속돼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결국 최무룡은 배우 강효실과 이혼했는데 이때 엄청난 위자료를 김지미가 대신 냈다. 이들은 1969년 이혼했는데 이혼 기자회견에서 최무룡이 남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오랜 기간 회자됐다.
1976년에는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이자 나훈아와 사실혼 관계를 시작했다. 당시 김지미는 서른여섯 살로 나훈아보다 일곱 살이 많은, 당시에는 흔치 않은 연상연하 커플이었다. 세간에는 이들이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만 한 사실혼 관계였고, 결국 1982년 헤어진다. 1991년 심장 전문의 이종구 박사와 결혼했지만 2002년에 이혼했다.
#‘길소뜸’(1986) 그리고 ‘마지막 황제’(1988)
1960년대 초 최은희와의 경쟁으로 시작해 김지미는 윤정희, 문희, 남정임 등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를 비롯해 엄앵란, 문정숙, 최지희, 김혜정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과 경쟁하며 영화계에서 활동했다. 경쟁 여배우들이 하나둘 활동을 중단하며 충무로를 떠났지만 김지미는 꾸준히 영화계를 지켰다.

‘토지’(1974)로 첫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던 김지미는 영화 ‘만추’를 리메이크한 ‘육체의 약속’(1975)으로 2년 연속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리고 11년 뒤 ‘길소뜸’으로 다시 한 번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는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1988)는 김지미의 안목을 입증한 영화다. 1988년 4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마지막 황제’가 작품상 등 9개 부문을 석권하자 영화 수입사들 사이에서 엄청난 수입 경쟁이 벌어지려 했다. 그런데 이미 ‘마지막 황제’는 지미필름에서 수입 계약이 끝난 상태였다. 해외 유수의 영화제를 다니며 해외 영화계의 흐름을 잘 알고 있던 김지미가 ‘마지막 황제’가 완성되기 전에 수입 계약을 했다. 빠른 계약 덕분에 저렴한 60만 달러에 수입 계약을 맺어 큰 수입을 얻었다. ‘로보캅’(1987) 역시 지미필름에서 수입했다.
#‘명자 아끼꼬 쏘냐’(1992)
김지미의 마지막 출연 영화는 ‘명자 아끼꼬 쏘냐’(1992)다. 역시 지미필름에서 제작해 김지미가 주연과 기획을 모두 맡은 마지막 작품이다. 지미필름의 마지막 제작 영화는 ‘오렌지 나라’(1993)인데 김지미는 기획만 하고 출연은 하지 않았다. 김지미는 ‘명자 아끼꼬 쏘냐’를 통해 대종상 기획상을 받으며 배우는 물론이고 제작자로도 확실한 족적을 남기게 됐다.

2000년에 대종상 영화발전공로상을 수상하고 2015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2016년 제7회 대중문화예술상에서 은관 문화훈장을 받았고, 2019년에는 제9회 아름다운예술인상에서 공로예술인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은 2019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가 김지미 특별전 ‘김지미를 아시나요’를 개최했다. 당시 오픈토크에서 김지미는 “17세로 돌아갈 수 있다면 영화배우는 안 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라고 밝히면서도 “저에게 사랑을 주신 여러분 가슴 속에 영원히 저를 간직해주시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당시의 부산 방문이 김지미의 마지막 국내 공식석상 참석이 됐다. 오픈토크에서 “배우로서도, 인생으로도 종착역에 가까워져 간다”고 말했던 김지미는 결국 지난 12월 7일 세상을 떠났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