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선거에서 투표결과가 거의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곳이 대구 경북과 광주 전남이다. 지지율 90%는 개표가 필요치 않은 사실상의 공개투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대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광주에서 91.97%, 전남에서 89.28%를 득표했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대구에서 80.14%, 경북에선 80.82%를 각각 얻었다. 외형상으로는 대구 경북의 쏠림이 조금 덜한 것처럼 보이지만 인구 이동성 측면, 즉 대구 경북지역에서 거주하는 호남 출신 유권자를 감안하면 광주 전남지역의 투표성향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봐야 한다.
두 지역의 투표가 지역성을 띠기 시작한 것은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와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 간의 첫 대결인 1971년 7대 대선 때부터다. 당시만 해도 호남에서 김대중 대 박정희 간 지지율 격차는 6 대 3 정도였다. 고향 출신에 대한 지지율로서 충분히 납득할 수준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해의 선거결과를 빌미로 이듬해 10월 유신을 단행했다. 지역대결로 국력낭비, 국론분열이 초래된다는 이른바 ‘선거망국론’이 동원됐다.
그 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뽑는 ‘체육관 대통령’이 전두환 정부까지 15년간 지속되다, 1987년 6·29선언으로 국민들은 투표권을 되찾아 그해 12월 13대 대선에서 행사했는데, 불행히도 90% 이상의 지지율이 시작된 것도 그 때부터였다.
김대중 후보는 13, 14대 대선에 출마해 낙선한 뒤 15대에 당선했다. 그는 당시 광주 전남에서 연속적으로 90%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그 현상이 16대 노무현 후보를 거쳐 이번에 문재인 후보에게로 이어졌다.
17대 대선 때 민주당 정동영 후보에게 80%대 지지로 잠시 낮아지는 듯하다가 이번에 다시 도졌는데, 당시에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는 한자리 수에 불과했다.
박 지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이 지역 출신으로 오랫동안 지지를 해준 분이라면 압도적 지지를 보내도 그럴 만하다고 얘기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호남인 스스로 정치를 잘못했다고 평가한 세력에 대해 그렇게 한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 배경을 설명했다.
민주당에선 “호남인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뒤통수를 쳤다”는 등으로 박 지사를 공격하고 있다. 비대위를 만들어 패인을 분석하고 쇄신안을 만든다고 하는데 그런 자세로 정확한 분석과 쇄신이 이뤄질까 걱정이다.
박 지사의 문제제기는 대승적 자세로 수렴될지언정 매도돼선 안 된다. 무릇 선거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접전일수록 묘미가 크다. 90% 이상 지지한 후보가 떨어지니 ‘멘붕’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90%대의 득표율이 없어지는 것도 민주주의다.
한남대 교수 임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