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실세 가운데 한 명인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68)의 ‘터진 입’으로 워싱턴 정가가 쑥대밭이 됐다. 지난 12월 16일 공개된 ‘배니티페어’ 인터뷰에서 와일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79)을 포함해 2기 행정부의 핵심 참모들에 대한 이런저런 뒷이야기를 쏟아냈다. 가령 “트럼프는 알코올 중독자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라거나, JD 밴스 부통령은 “10년 동안 음모론자였다”라는 식이었다. 또한 상호관세 정책을 이끌어내는 데 있어 핵심 참모들 간에 의견 충돌이 있었지만 결국은 트럼프가 모든 의견을 무시한 채 밀어붙이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이번 인터뷰는 와일스를 비롯한 몇몇 핵심 참모들을 대상으로 열한 차례에 걸쳐 진행됐으며, 인터뷰를 담당한 사람은 CBS 방송 ‘60분’의 전 프로듀서이자, 역대 백악관 비서실장을 다룬 저서 ‘게이트키퍼: 백악관 비서실장이 모든 대통령직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의 저자인 크리스 휘플이었다.

이런 공로를 인정해 대선 승리 연설에서 트럼프는 와일스를 가리켜 ‘얼음 아가씨’라고 부르면서 “수지는 뒤에 있기를 좋아하지만 뒤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라고 치켜세웠다. 심지어 한 번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라고 극찬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믿었던 ‘얼음 아가씨’가 제 입으로 지난 12개월 동안의 백악관의 뒷모습을 들춰내니 백악관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터. 게다가 와일스가 평소 언론 노출을 꺼려왔다는 점, 그리고 ‘실명 인터뷰’를 했다는 점에서 이번 행보는 분명 이례적이었다. 이에 그동안 원팀을 강조했던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 서서히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실제 이런 우려는 이미 인터뷰 중에도 내부적으로 제기됐었다. ‘배니티페어’ 사진 촬영을 하던 날, 현장에 있던 한 참모가 “이거 때문에 우리 다 잘릴지도 모른다”라며 농담조로 말했고, 이에 밴스 부통령은 “난 빼주세요. 나는 직업 안정성이 100%거든요”라고 받아쳤다. 그러면서 그는 “나보다 더 못 나오게 만드는 사람 한 명당 100달러 줄게요. 마코라면 1000달러”라고 말하면서 줄곧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당시 현장에는 와일스를 비롯해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제임스 블레어와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 댄 스캐비노 인사국장 등이 있었다.

와일스가 이렇게 말한 배경에는 미국프로풋볼(NFL) 스타 선수이자 스포츠 캐스터, 그리고 동시에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 팻 서머럴에 대한 경험이 있었다. 트럼프의 요란하고 과장된 성격에서 알코올 중독이었던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는 의미다.
밴스 부통령에 대해서도 와일스는 “그는 10년 동안 음모론자였다”고 말하면서 줄곧 트럼프를 비판하다가 지지하는 입장으로 선회한 이유에 대해 “상원 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적 선택이었다”고 비판했다. 즉, 정치적 야망 때문에 전향했다는 것이다. 와일스의 이런 주장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 밴스는 공화당 정치권의 떠오르는 스타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음모론을 가리켜 “온갖 어리석음을 늘어놓는 미치광이들의 헛소리”라고 비난했다. 심지어 열성적인 ‘반트럼프 인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와일스는 팸 본디 법무장관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무엇보다 미성년 성범죄자였던 제프리 앱스타인 파일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 “치명적인 실책을 저질렀다”고 평가했다. 특히 MAGA 인플루언서들에게 파일 일부를 전달했다가 결과적으로 ‘아무 내용도 없는 바인더들’이 돼버린 점을 지적했다. 와일스는 “본디는 앱스타인 사건 증인이나 고객 명단이 자기 책상 위에 있다고 말했다. 그런 고객 명단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있다 해도 본디 책상 위에 있었을 리는 절대 없었다”고 비판했다.
일론 머스크 전 정부효율부(DOGE) 수장에 대해서도 폭탄 발언을 쏟아낸 와일스는 머스크를 가리켜 ‘괴짜’ 혹은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재차 반복했다. “일론과 관련된 가장 큰 어려움은 그를 따라잡는 것이었다”고 말한 와일스는 “그는 케타민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낮에는 ‘아이젠하워 행정 청사’에서 침낭을 펴고 잤다. 그는 아주, 아주 이상한 사람이다. 천재들이 대개 그렇듯 말이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머스크가 DOGE를 변덕스럽게 장악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그는 완전히 단독 행동을 하는 인물이다. 그가 미국 국제개발처(USAID)를 사실상 해체한 결정에 경악했다”고 말하면서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불법 이민자 추방 절차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는 사실도 인정한 와일스는 의문이 있다면 재검증을 포함한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일례로 불법이민자를 대규모 추방할 당시 미국인 아이를 둔 여성을 강제 추방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했다”며 불편한 마음을 표현했다.
트럼프의 아킬레스건인 앱스타인 사건과 관련해서도 운을 뗀 와일스는 민주당의 조작이라고 수개월간 주장해 온 트럼프와 달리, 자신이 해당 파일을 직접 읽어봤으며 트럼프의 이름이 그 안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또한 앱스타인의 개인 전용기 탑승자 명단에도 트럼프의 이름이 올라 있다고 말했다. 이 전용기는 앱스타인이 미성년 소녀들을 버진아일랜드의 개인 저택으로 옮기는 데 사용돼 일명 ‘롤리타 익스프레스’라고 불렸다. 다만 와일스는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가 끔찍한 일을 저지른 건 아니었다. 그들은 말하자면 젊고, 싱글이었고, 뭐랄까, 이제는 좀 진부한 표현이지만, 함께 어울리던 젊은 플레이보이들이였다”라고 덧붙였다.

와일스는 즉시 자신의 발언을 수습하기 위해 X(옛 트위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오늘 새벽에 올라온 기사는 나,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 백악관 참모진, 그리고 내각을 겨냥해 교묘하게 짜인 악의적인 기사다. 중요한 맥락이 무시됐고, 팀과 대통령에 대해 내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말한 많은 내용이 누락됐다. 기사를 읽고 나니 대통령과 우리 팀을 혼란스럽고 부정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작성됐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러면서 “그 어떤 것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우리의 끈질긴 열정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못 박았다.
레빗 대변인 역시 즉시 와일스를 옹호하고 나섰다. X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지보다 더 훌륭하고 충성스러운 보좌관은 없다”라고 말하면서 “행정부 전체는 그의 흔들림 없는 리더십에 감사하며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밴스 부통령 역시 와일스의 불편한 발언들 속에 진실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가끔은 나도 음모론자가 된다. 하지만 나는 진실인 음모론만 믿는다. 참고로 와일스와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사적으로도, 공개적으로도 오랫동안 농담해 왔다”고 밝혔다. 본디 법무장관 역시 와일스를 가리켜 “친애하는 벗”이라고 부르면서 “이 행정부를 분열시키려는 어떤 시도도 실패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념비적인 성과를 훼손하거나 축소하려는 어떤 시도도 실패할 것이다. 우리는 가족이다”라고 강조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이런 일관된 반응에 ‘배니티페어’ 기사를 쓴 휘플은 “흥미로운 점은 백악관이 기사의 내용 가운데 어떤 부분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실관계에서 확실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기사에 담긴 모든 내용, 즉 와일스가 한 모든 발언은 전부 공식 발언이었고, 녹음도 되어 있다. 이번 기사는 전적으로 견고하고, 그의 모든 발언은 ‘온 더 레코드’였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BBC를 상대로 100억 달러(약 14조 원) 소송을 제기한 ‘소송을 즐기는’ 트럼프가 법적 대응에 나설 경우에 대해서는 ‘환영한다’고 응수하기까지 했다. 휘플은 “나는 트럼프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 그를 정신분석하려고 시도하지도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그는 싸움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면서 “원한다면 사실을 두고 싸울 생각이다. 사실관계는 반박 불가능하고, 인터뷰는 있는 그대로이며, 와일스는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했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번 폭탄 인터뷰에 대해 ‘데일리비스트’는 “중요한 건, 와일스가 우리에게 백악관 담장 너머의 풍경을 엿보게 했다는 점이다”라고 말하면서 “그리고 그 실상은 우리가 두려워했던 것만큼이나 심각하다”라고 평했다.
유전자로 판단? 다시 불거진 트럼프의 우생학 논란
“백인은 좋은 유전자를 가졌다.”
2020년, 미네소타주 베미지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트럼프는 당시 상대 후보였던 조 바이든을 가리켜 “(만일 그가 당선되면) 소말리아 난민이 물밀듯 밀려올 것이다”고 경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청중들에게 “모든 게 유전자와 관련이 있다. 우리가 매우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미네소타주는 주민 대다수가 스칸디나비아 계열 후손들인 까닭에 주민 79%가 백인이다. 이런 까닭에 당시 유세장을 메운 지지자들 역시 대다수가 백인들이었다.
트럼프의 이런 인종차별적 발언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2016년 미시시피에서 열린 대선 유세에서도 그는 “나는 아이비리그 교육을 받은 똑똑한 사람이다. 나는 훌륭한 유전자를 가졌다”라고 자랑했다. 이어서 트럼프는 “나는 항상 승리라는 게 어느 정도는, 어쩌면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승리의 유전자 말이다”라면서 “내가 독일 혈통을 가졌다는 게 자랑스럽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단한 거다”라고 주장했다.
2024년에는 보수 성향의 라디오 진행자인 휴 휴잇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폭력 범죄와 이민자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하기도 했다. “살인범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믿는다. 그건 유전자에 들어 있다. 지금 미국에는 나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처럼 트럼프가 사람을 판단할 때 유전자를 기준으로 본다는 사실은 와일스의 ‘배니티페어’ 인터뷰를 통해서도 또 한 번 드러났다. 와일스는 2015년, 트럼프 타워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당시 들었던 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와일스가 전설적인 NFL 선수였던 팻 서머럴의 딸이라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은 트럼프는 “나는 사람을 유전자로 판단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와일스는 “그는 이 말을 백만 번은 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트럼프의 주장에 대해 평론가들은 트럼프가 칭송해 온 이른바 ‘경주마 이론(혈통과 유전 정보를 바탕으로 경주마의 실력을 평가 및 예측하는 이론)’과 혈통에 대한 집착이 과거 인종차별적 이민법과 강제 불임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됐던 우생학적 수사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