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의 말처럼 2021년과 2023년, 소속팀(당시 삼척 해상케이블카)을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MVP 트로피는 그녀의 몫이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정규리그에서 14승 2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팀을 챔피언결정전으로 직행시켰고, 결국 통합 우승과 MVP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사실 시즌 시작 전, 서울 부광약품은 약체로 평가받았다. 강력한 외국인 용병 선수도 없었고, 김채영을 제외하면 검증되지 않은 어린 선수들로 팀이 꾸려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꼴찌 후보라는 말까지 나왔다. “사실 저도 작년에는 우리 팀 전력이 약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올해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이나현 2단, 최서비 2단, 백여정 초단 등 어린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게 보였거든요. 새로 부임한 이상훈 감독님께도 ‘이 선수들보다 더 나은 선수를 데려오기 쉽지 않으니 믿고 가자’고 말씀드렸죠. 우승까지는 몰라도 포스트시즌은 충분히 갈 수 있다고 봤습니다.”
김채영의 믿음은 적중했다. 특히 외국인 용병을 영입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팀워크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용병이 오면 팀 전력은 강해지겠지만, 동고동락하며 훈련해 온 우리 선수 중 누군가는 벤치에 앉아야 하잖아요. 그러면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 같아요. 저희는 이번 시즌에 정말 훈련을 많이 했거든요. 매주 모여서 바둑을 두고 연구했습니다. 그런 끈끈함이 우승의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김채영은 지난 3월, 두 살 연하의 박하민 9단과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첫 시즌에서 맹활약한 비결을 묻자 그녀는 주저 없이 심리적 안정을 꼽았다. “결혼하고 나서 바둑 외적으로 신경 쓸 게 많아진 건 사실이지만, 심적으로는 훨씬 편안하고 행복해요. 그 행복감이 바둑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같은 길을 걷는 남편은 든든한 조력자다. 중요한 대국이 있을 때면 초반 포석을 함께 연구해주고, 방대한 공부량을 바탕으로 김채영에게 핵심적인 정보를 알려주기도 한다. “남편이 공부량이 많아서 아는 게 정말 많아요. 제가 모르는 부분을 많이 알려주죠. 바둑을 직접 두면 싸울까봐 서로 두지는 않지만(웃음), 바둑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됩니다.”

1996년생인 김채영은 어느덧 우리 나이로 서른을 앞두고 있다. 10대, 20대 초반의 어린 기사들이 치고 올라오는 승부의 세계에서 체력적인 부담을 느낄 법도 하다. “확실히 예전과는 체력이 다르다는 걸 느껴요. 또 어릴 땐 오직 바둑만 생각하면 됐지만, 지금은 가정과 생활도 챙겨야 하니까요. 하지만 어릴 때 쌓아둔 내공이 있으니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겁니다. 앞으로 최소 5년 이상은 지금의 성적을 유지하고 싶어요.”
최근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김은지 9단 등 후배 기사들에 대한 생각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은지는 재능도 뛰어나지만 노력도 엄청나게 하는 선수예요. 특히 대국 중에 감정 변화가 거의 없는 포커페이스라는 점이 큰 강점이죠. 최정 9단이 여자 바둑의 길을 개척했다면, 은지는 더 좋은 환경에서 그 길을 넓혀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후배들이 남자 기사들과도 대등하게 겨루며 더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채영은 2019년부터 전문적인 멘탈 트레이닝(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승부사로서 겪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해서다. “예전엔 바둑 공부 시간만 늘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마인드 컨트롤이 더 중요하다는 걸 느껴요. 상담을 받으면서 ‘나는 잘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됐습니다. 덕분에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제 바둑을 둘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인터뷰 말미, 김채영은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 짓던 마지막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정작 본인은 패했지만 후배들의 승리로 우승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1국에서 제가 져서 ‘큰일 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2국의 여정이가 이기고 나오고 3국에서 나현이가 이겨서 우승을 확정 지어줬어요. 둘이 서로 끌어안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데, 제가 이긴 것보다 더 뭉클하고 좋더라고요. 이번 우승은 정말 우리 팀원들이 만든 기적입니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변화와 함께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김채영. 한층 더 단단해진 승부사로서, 그리고 팀의 든든한 맏언니로서 그녀가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유경춘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