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언문엔 통합지방자치단체를 설립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국가 사무와 재정 이양을 통해 연방제 국가 주(州)에 준하는 실질적인 권한과 기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전과 충남이 가칭 ‘행정구역통합 민관협의체’를 출범해 통합법률안을 마련한 뒤 대전과 충남에 각각 전달하는 안도 포함됐다.
이 선언문은 국내 3위권 초대형 지자체 탄생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대전과 충남이 통합하면 인구 360만 명에 달하는 중부권 행정 허브가 탄생한다. 국책사업과 투자 유치를 위한 지자체 간 소모적 경쟁을 줄이고, 자치단체 경계를 넘어서는 교통망과 공공시설 구축 등 광역행정 수요 접근성이 향상될 것이란 기대를 받았다.
생활권과 행정구역이 불일치하면서 촉발됐던 주민 불편을 해소함과 동시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며 행정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대전의 연구개발 역량과 인적자본, 충남의 제조시설 기반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지역 성장 잠재력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희망도 대두됐다.
그런데 초대형 변수가 정치권을 강타하면서 통합안 추진에 빨간불이 켜졌다. 12·3 비상계엄 선포였다. 공동선언문 채택 이후 열흘가량이 지난 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통합안은 추진 동력을 잃었고, 흐지부지되는 듯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인 2025년 9월 성일종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 45명은 ‘대전충남특별시 설치 및 경제과학수도 조성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러던 중 2025년 12월 18일 이재명 대통령이 통합론에 불을 붙였다. 이 대통령은 이날 대전·충남 국회의원과 오찬 간담회에서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도를 통합해 2026년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 지자체장을 선출하자”고 제안했다. 국민의힘에서 주로 논의됐던 대전·충남 통합에 대한 의제를 이 대통령이 꺼낸 것이다.
이 대통령은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과제”라면서 “과밀화 해법과 균형 성장을 위해 대전과 충남의 통합이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균형성장과 재도약 중심지로서 행정기관 소재지나 명칭 문제도 개방적이며 전향적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도 12월 19일 ‘대전·충남 통합 및 충청지역 발전 특별위원회’를 꾸리며 통합 실무 작업에 착수했다. 이 대통령 발언 이튿날부터 호응에 나선 셈이다.

정 대표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께서도 대전·충남 통합 추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면서 “대전·충남 통합은 여러 행정절차가 이미 진행돼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키면 빠르면 한 달 안에도 가능한 일이다. 속도감 있게 (통합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전·충남 통합은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인 ‘5극 3특’ 구상 첫 단추로, 균형발전 마중물이 될 것”이라며 “인구 360만 명, 지역 내 총생산(GRDP) 190조 원 규모 통합 경제권이 형성된다면 충청은 대한민국을 견인하는 새로운 축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대전·충남 통합’ 발언이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위한 공간 창출 아니냐는 비판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강 비서실장은 충남에서도 대표적인 ‘스윙보터’ 지역구로 꼽히는 충남 아산을에서 내리 3선을 한 국회의원이다. 강 비서실장은 일단 ‘선 긋기’에 나서며 출마설을 부인했다.
12월 24일 강 비서실장은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인터뷰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렇게 한가하게 자기 진로를 고민하기엔 좀 버거운 자리”라면서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대전·충남 통합 지자체장 출마)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사실 얼마 전까지 (자신을 둘러싼) 서울시장 차출론이 돌았다”면서 “그냥 서울시장에도 넣어 보시고, 경기도에도 넣어 보시고 이래서 그냥 나는 ‘뭐 그런가?’, ‘그냥 사람들이 이렇게 말씀하시네’ 이런 정도다”라고 했다.
‘서울시장과 충남지사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면’이라는 질문에 강 비서실장은 “그런 생각을 할 정도의 여건이 절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강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관심 가지고 있는 산재, 부동산 가격 대책 등을 데일리로 점검하고 체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합 지자체장을 뽑는다면 누가 나가야 할지와 관련해서는 이 시장과 김 지사 모두 한 발 물러서며 말을 아꼈다. 12월 24일 김태흠 충남지사는 “(통합 지자체 출범 시) 불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던 것은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통합 추진 순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었다”면서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지금은 ‘누가 나서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법이 만들어지느냐’를 중심에 둬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이번 통합 논의가 향후 정치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두고 많은 얘기가 오간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통합 이후엔 선거 때마다 충청권의 ‘스윙’ 강도가 높아지며, 전국단위 선거 승패에 훨씬 큰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다”면서 “자민련 계열 정당을 제외하면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이 치고받았던 지역끼리의 통합인 만큼, ‘캐스팅보트’ 지역으로서의 체급이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임기 후반기 충남 5선 출신 정진석 비서실장을 기용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 충남 3선 출신 강훈식 비서실장을 인선한 바 있다. 대통령들이 충남 출신 비서실장 선임에 적극적인 이유도 ‘스윙보터’가 많은 충남권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지방선거까지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하다. 정해진 시한 내에 어떤 방식으로 통합을 이뤄낼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 도출이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새로운 통합광역지자체 이름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부터 지역 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또 다른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대전과 충남이 특별시로 통합된다면, 가장 먼저 거론되고 있는 이름이 ‘대충 특별시’”라면서 “이런 명칭은 ‘대충한다’는 단어와 연결 지어지며, 지역 이미지를 저하시킬 우려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순서를 바꿔 충대 특별시라 명명해도, 대전 지역에서 반발이 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밖에도 도의회와 시의회의 통합, 교육감 선거구 획정 문제, 현실적인 실무 통합에 따른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는 만큼 다양한 논의가 펼쳐질 공론의 장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대충 통합만 했다가는 주민 불편이 늘어날 소요도 적지 않으며, 반발 심리만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어느 당의 유·불리를 논하기 전에 행정구역 통합에 과속 경고등이 켜지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행정과 경제가 전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행정구역 개편에 있어, 2월에 법을 만들고 6월 전까지 시행을 한다는 점을 성급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지역 내에서 찬성 여론이 높지만, 반대 여론도 존재하는 상황”이라면서 “무조건 빠르게만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주민투표라든지, 공청회 같은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