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거론될 때만 하더라도 정치권에선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 오세훈 시장 대항마를 찾는 과정에서 불거진 ‘해프닝’ 정도로 치부하는 기류가 강했다. ‘소통령’으로 불리는 서울시장 자리, 그것도 경쟁자가 오세훈 시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앙 정치권에서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현직 구청장을 내보낼 가능성은 낮다는 이유였다.
시간이 지나도 정원오 구청장 이름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의 더불어민주당 후보군보다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오세훈 시장과의 가상 대결을 묻는 일부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들 중 가장 앞선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참신한 이미지, 3선 구청장을 지내면서 인정받은 행정력 등이 거론됐다. 민주당은 한강버스 등 오세훈 시장이 내세운 사업을 비판하면서 정원오 구청장의 업적을 부각했다.
‘정원오 바람’을 태풍으로 끌어올린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었다. 이 대통령은 12월 8일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정 구청장의 구정 만족도 조사 결과가 92.9%를 기록했다는 언론 보도를 올리면서 “정원오 구청장이 일을 잘하기는 잘하나 보다. 내 성남 시정 만족도가 꽤 높았는데, 저는 명함도 못 내밀듯”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사실상 정 구청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지지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으로 이어졌다.
이를 두고 민주당 내부에선 불편한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나왔다. 오세훈 시장 견제용으로 ‘정원오 띄우기’ 단일대오를 이뤘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특히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했던 후보들 진영에선 이 대통령의 공개 메시지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한 후보 측 관계자는 “김민석 강훈식 차출론에 이어 이번엔 정원오다. 서울시장 후보는 당에서 결정할 사안”이라면서 “오랫동안 선거를 준비해 온 후보들을 제치고 마치 낙하산처럼 특정인을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반응에 친명계 인사들은 발끈했다. 한 친명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는 당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승리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이길 수 있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면서 “민주당 기존 후보들이 약하니, (대통령실과는 무관하게) 언론에서 먼저 김민석 강훈식을 보도한 것”이라고 했다. 이는 향후 서울시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 당내 힘겨루기가 뜨겁게 벌어질 것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흔들리는 ‘오세훈 상수’
이재명 정부 초반부에 치러진다는 점에서 6월 지방선거는 국민의힘에 불리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탄핵으로 정권을 내줘야 했던 국민의힘 내부에도 위기감이 팽배하다. 하지만 서울시장 얘기만 나오면 국민의힘 관계자들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오세훈 시장 덕분이다. 민주당에서 누가 나오더라도 오 시장 승리 가능성이 점쳐졌고, 국민의힘에선 내심 서울시장 승리 기세를 몰아 경기지사까지 노리겠다는 기대감이 표출되기도 했다.
그런데 ‘오세훈 상수’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명태균 씨 관련 의혹으로 사법리스크에 휩싸였고, 여러 정책과 사업이 여권으로부터 집중 난타를 받았다. 오 시장과 민주당 후보군 간 격차는 줄어들었다. ‘다크호스’로 떠오른 정원오 성동구청장과의 대결에서 진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보수진영에선 오 시장에 대한 낙관론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었다.

여기에 경선 룰 변수가 오 시장 앞에 암초로 등장했다. 11월 21일 국민의힘 지방선거기획단은 기존의 당원 투표 50%, 국민 여론조사 50%를 각각 70%와 30%로 바꾸는 안을 발표했다. 지방선거기획단은 서울시장 후보군인 나경원 의원이 이끌고 있다. 당원 투표 비중이 늘어나면 나 의원이 오 시장보다 유리하다는 평가다. 룰이 바뀌면 오 시장이 예선 통과조차 장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국민의힘 의원들 대다수는 경선 룰 변경에 부정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12월 30일 국민의힘 초·재선 의원 모임인 ‘대안과 책임’ 소속 25명은 전원 반대 입장을 냈다. 서울시당위원장인 배현진 의원은 12월 24일 “서울당협위원장 대부분의 반대와 우려의 의견을 지선기획단 회의에 전달했다”고 했다. 김용태 의원도 12월 26일 “장 대표 입장에서는 서울에서 이겨서 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싶을 텐데 당심 70% (경선룰을) 받는 것은 선거에서 지겠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오 시장의 마지막 암초는 ‘장동혁 대표’다. 현재 김건희 특검은 오 시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상태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강력·부정부패 범죄 혐의로 기소된 자는 경선 피선거권이 정지된다. 단, 정치 탄압 등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당 대표가 윤리위 의결을 거쳐 징계 처분을 취소·정지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 조항이 있다. 장 대표 결단에 따라 오 시장의 경선 참여 여부가 판가름 나는 셈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오 시장이 경선에 못 나오는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룬다. 가장 확실한 승리 카드를 버릴 경우 수도권 판세 전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 시장 측 한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3대 특검을 정치 특검으로 비판해 왔다. 그런데 특검 기소를 이유로 선거 출마를 막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면서 “오 시장은 단지 서울시뿐 아니라, 선거 전체의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특검 기소는)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제3지대 정당들은?
서울시장 선거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거대 양당과 제3지대 정당 간 관계 설정이다.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은 각각 민주당과 국민의힘과의 선거 연대 및 단일화 등을 놓고 물밑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단일화 희비가 엇갈릴 경우, 실패한 쪽은 페널티를 안고 싸우게 된다.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후보를 내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국민의힘보다는 민주당 상황이 다소 낫다. 조국혁신당은 서울시장 등 주요 격전지에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 몇몇 지자체장 후보 자리를 얻어오는 방안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테이블에 올라올 카드만 일치한다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간 연대는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사이의 간극은 갈수록 벌어지는 형국이다. 개혁신당은 장동혁 대표의 강경 스탠스가 계속된다면 손을 잡을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