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MM의 주가는 최근 1만 9000~2만 원 박스권에 갇혀 있다. 팬데믹 시기 기록했던 최고가 4만 9650원과 비교해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특히 2025년 9월 이후 코스피 시장에 열기가 돌면서 지수 5000선을 돌파하는 역사적 상승장에서도 HMM의 주가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코스피 지수와 HMM 주가 사이의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국내 유일의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라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투자심리가 얼어붙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적 면에서 HMM은 팬데믹 기간 해운 운임 폭등에 힘입어 연간 수조 원 단위의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며, 최근까지도 조 단위의 흑자 기조를 유지 중이다. 해운 업황 악화로 오는 2월 중순 발표될 HMM의 2025년 영업이익이 1조 3000억 원대로 전망되지만, 증권가에서는 HMM이 올해 8000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3년 만에 ‘1조 클럽’에서 탈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글로벌 1위 선사인 MSC는 공격적인 선복 확장에 나서고 있다. 대형선 신조 발주를 통한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에 나선 MSC는 올해 초에만 중소형급인 1000~35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중고 컨테이너선 9척을 추가 매입하는 등 지역 네트워크까지 확장하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중이다. 머스크와 하팍로이드가 결성한 ‘제미니(Gemini)’ 얼라이언스는 출범 1년 만에 70%에 육박하는 정시성을 기록하며 서비스 질 중심의 경쟁 체제를 이끌고 있다. 머스크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허브·피더 구조 최적화를 통해 2025년 대비 2026년 1월 기준 정시성은 12~15%포인트 개선됐으며, 고객 불만 건수는 20% 감소했다.
3위 선사인 CMA CGM은 1월 말 미국 인프라 투자사 스톤피크와 약 2조 7000억 원 규모의 글로벌 터미널 합작법인 ‘United Ports LLC’ 설립을 발표했고 중국의 코스코, 일본의 원(ONE) 역시 전 세계 주요 컨테이너 터미널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7위 선사인 대만의 에버그린도 1월 말 중국 조선소에 23척(약 14.7억 달러 규모)의 신조선을 발주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글로벌 선사들이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에 나서면서 해운 업황의 가늠자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최근 4주 연속 하락해 1300선까지 주저앉았다. 특히 통상적으로 조기 선적 수요가 몰리는 ‘춘절 특수’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운임 반등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급증한 선복 공급량이 계절적 수요를 압도한 결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통상 1000~1100선을 실질적인 손익분기점(BEP)으로 보고 있는데, 현재의 하락 속도를 고려하면 머지않아 영업이익 적자 구간에 진입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간 운임을 강제로 지탱해 온 공급망 변수들이 점차 희석되고 있는 점도 악재로 꼽힌다. 홍해 사태로 인한 우회 항로 이용과 파나마 운하의 가뭄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안정화됐고 미국 항만 파업 가능성이 사라졌고, 미국 관세 부과로 인한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물동량 감소 등으로 인해 공급자 우위의 시장 환경도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분석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올해 컨테이너 해상 물동량 증가율은 약 2.3%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돼 운임 상승을 견인할 동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시황 하락기에 HMM의 고질적인 선대 및 사업 구조 불균형이 약점이 되고 있다. HMM은 매출의 80% 이상이 컨테이너선에 편중돼 있고, 선형 역시 2만 4000TEU급 초대형선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유연성이 떨어진다”며 “호황기에는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으나, 지금 같은 불황기에는 화물을 채우지 못해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부족한 화물을 채우기 위해 여러 항구를 기항하다 보니 선적과 하역에만 며칠씩 허비하게 되어 화주들의 불만이 높다. 머스크와 하팍로이드의 ‘제미니’는 기항지를 최소화하고 피더(소형선)를 활용해 운송 속도와 정시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는데, HMM은 이러한 흐름에 대응하기엔 선대 구성이 너무 비대하다”며 “뒤늦게 중소형선 발주에 나서고는 있으나 이미 실기한 측면이 있다. 정시성이 선사 차별화의 핵심이 된 현 시장 상황에서 HMM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대외적 업황 악화 속에 글로벌 사법 리스크까지 가시화되면서 HMM의 경영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지난 1월 29일 미 연방해사위원회(FMC)는 세계 1위 선사인 MSC에 대해 팬데믹 기간 중 부당한 체선료와 지체료를 부과했다는 이유로 역대 최대 규모인 2267만 달러(약 329억 원)의 과징금을 확정했다. HMM 역시 삼성전자 미국법인으로부터 약 9만 6000건에 달하는 부당 비용 청구 건으로 피소되어 FMC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지난 1월 15일에도 복수의 미국 화주들로부터 서비스 계약 불이행 등을 이유로 잇따라 피소된 상태다.

HMM 매각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 1월 29일에 열린 2025년 4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HMM 인수 관련 진행 상황을 묻는 질문에 “지난해 예비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밝힌 것 외에 진전된 내용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포스코그룹은 지난해 HMM 인수를 검토하기 위해 자문단을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동원그룹과 하림그룹이 다시금 인수 검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으나 여전히 높은 금융비용 부담이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구교훈 회장은 HMM의 미래 가치 불투명성이 인수전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분석했다. 구 회장은 “시황이 하락하는 국면에서 기업들이 인수를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으며, 공급 과잉이 2030년까지 예견된 상황이라 비전조차 불확실하다”고 짚었다. 구 회장은 “현재 주가를 기준으로 경영권 지분 40~50%를 확보하려면 8조에서 10조 원의 거금이 필요한데, 글로벌 5위권 안에도 들지 못하는 애매한 포지셔닝의 회사를 그 돈을 들여 인수할 메리트가 낮다. 당장 인수전은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전준수 서강대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현재 HMM 인수전은 사실상 멈춘 상태다. 당초 포스코 같은 대형사가 인수해 불황을 견뎌주길 기대했지만, 막상 포스코가 거론되자 기존 해운업체들과의 이해관계 상충 문제가 불거졌고 이들의 반발로 동력이 상실됐다”며 “민영화된 공기업인 포스코는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해양수산부가 중심을 잡고 대기업 인수의 필요성을 설득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업계 대변인 역할에만 머물며 중재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의 관세 부과 등으로 촉발된 보호무역주의가 글로벌 교역 자체를 위축시키고 있어 국제 해운사들의 물동량 전망이 밝지 않다. 현재는 저유가 기조 덕분에 버티고 있으나, 향후 중동 정세 불안으로 유가 변동성이 커질 경우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HMM이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다른 기업들을 따라하기보다는 확실한 틈새시장 공략이나 ‘포지셔닝’이 필요한데 주인이 없기 때문에 투자 방향에 대한 갈피를 못 잡는 것 같다. 인수가 미뤄질수록 HMM에 불리하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HMM 관계자는 “보통 주식은 회사의 실적과 업황에 따라 등락이 있지만, HMM의 경우는 최근 실적이 좋더라도 주가의 변동이 없었다.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을 때도 그렇고 지난해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조원의 자사주를 매입·소각하는 절차를 거쳤음에도 마찬가지다”라며 “지분의 70% 이상이 정부 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현재 주인이 없는 상황이다보니 업황과 무관하게 주가가 움직이는 것 같다. 간혹 일부 대기업에서 HMM의 매입 의사를 밝히기라도 하면 주가가 잠시 출렁이기도 해, 실적과 업황보다는 M&A에 대한 기대감이 주식 시장에 반영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