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에서 도보로 15분 남짓 걸으면 ‘고지마 청바지 거리’에 이른다. 약 400m 길이의 거리와 주변 골목에는 ‘모모타로 진’ ‘블루사쿠라’ ‘빅존’ 등 일본을 대표하는 데님 브랜드 매장 40여 곳이 늘어서 있다. 도로는 데님 색으로 칠해져 있고, 아케이드 위에는 수많은 청바지가 깃발처럼 걸려 거리 전체를 하나의 전시 공간처럼 만든다.
고지마는 원래 간척지로, 염해에 강한 면화가 재배되며 일찍부터 섬유 산업이 발달해 온 지역이었다. 인근에는 전통 쪽빛 염색 ‘남염(藍染)’ 기술도 뿌리 깊게 이어져 왔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봉제와 염색, 직조 기술이 축적되었고, 청바지 제조업체들이 하나둘 자리 잡으며 ‘일본 데님의 산지’로 성장했다.

오래된 직조기의 생산 속도는 최신식 설비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공정을 사람의 손으로 처리해야 한다.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마나베는 “이런 기계로 천천히 짜야 원단에 자연스러운 요철이 살아난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데님은 착용과 함께 서서히 색이 빠지며, ‘진짜 청바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깊고 입체적인 색 바램을 드러낸다. 그는 직물 생산지를 돌며 이런 구식 직조기 다섯 대를 찾아냈다.
실 염색 역시 마찬가지였다. 청바지를 상징하는 짙은 푸른색은 1880년대 석유에서 합성한 인공 인디고가 개발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오늘날 대부분의 데님 제품에 사용되고 있다. 반면 일본에는 쪽 식물에서 얻은 천연염료로 물들이는 전통 기술이 있다. 건조한 쪽잎을 발효시켜 염료를 만들고, 실을 여러 차례 담갔다 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손도 많이 가고 비용도 높지만, 마나베는 이 전통적인 색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완성한 데님에 그는 ‘재팬블루(JAPAN BLUE)’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원단 납품에 그치지 않고 봉제까지 직접 맡기로 한다. 역시 숙련된 장인들이 빈티지 재봉틀을 다루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게 2006년 자체브랜드 ‘모모타로 진’이 탄생했다. 이름은 오카야마에 전해 내려오는 전래동화 ‘모모타로’에서 따왔다. 복숭아에서 태어난 소년이 마을을 괴롭히는 귀신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로, 패스트패션과 대량생산에 맞서는 장인정신을 은유한다. 마나베는 “브랜드명이 촌스럽다는 반대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래도 “일본 어디에서든 오카야마 브랜드임을 단번에 알 수 있는 이름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모모타로 진은 수작업 염색 방식으로 만들어져 실의 속까지 완전히 물들지 않는다. 덕분에 착용할수록 자연스럽게 색이 빠지며, 데님 특유의 매력인 ‘색의 변화’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일반적인 청바지가 ‘처음이 가장 예쁜 옷’이라면 모모타로 진은 입을수록 완성되는 옷이다. 3년, 5년, 10년 뒤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

브랜드가 자리를 잡아가자, 마나베는 또 다른 질문을 품게 된다. ‘고지마를 단순한 생산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장소로 만들 수는 없을까.’ 그는 한때 섬유 산업으로 번성했다가 고령화와 함께 쇠락한 아지노 상점가에 주목했다. 셔터가 내려진 빈 점포들에 데님 매장을 모아 하나의 거리로 엮자는 발상이었다.
초기 반응은 반신반의에 가까웠다. “이런 곳에서 정말 청바지가 팔리겠냐”는 목소리도 컸다. 그러나 10개 매장으로 문을 연 ‘고지마 청바지 거리’는 행정과 협력해 홍보를 이어가며 조금씩 방문객을 늘려갔다. 지금은 약 400m 길이의 거리를 따라, 데님을 테마로 한 메뉴를 선보이는 카페까지 포함해 50여 개의 가게가 늘어서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고지마 데님을 두고 “질 좋은 일본산 위스키처럼, 일본 여행의 기념품으로 더없이 잘 어울린다”고 평했다. 한철 입고 끝나는 패스트패션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우아하게 변화하며, 입는 시간만큼 이야기가 쌓여가는 옷이라는 의미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