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 몹시 달갑지 않은 통계가 나왔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 1월 한 달 동안에만 전국에서 62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전년도 같은 기간에는 44건이었다. 2024년에는 18건이었다. 자연재해가 잦아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재난의 여파가 사회적으로 취약하고 소외된 지역 주민들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관심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고, 복구와 회복은 뒷전으로 밀린다. 일요신문은 지난 5년 사이 치명적 자연재해로 이웃을 잃고 눈물에 잠겼던 지역들을 다시 찾았다. 2022년 초대형 산불이 난 경북 울진, 이듬해 2023년 산사태로 물에 잠긴 경북 예천, 지난해 2025년 불지옥을 연상케 한 경북 안동시 등이다. 현장은 회복을 포기한 듯한 분위기였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어느 쪽을 향한 기대도 엿보이지 않았다. 주민들이 마지막으로 호소한 대상은 시민사회였다. [편집자주][일요신문] 경상북도 예천군은 2023년 7월 13~17일 폭우 산사태로 주민 17명(사망 15명·실종 2명)을 떠나보냈다. 실종자를 수색하다 숨진 해병대원 고 채수근 상병까지 더하면 18명. 예천에는 많은 사회적 관심이 뒤따랐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삶 회복 등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채 상병 순직이 정치 문제로 비화하면서, 정작 이재민들이 입은 피해와 현실은 잊히고 말았다.
일요신문이 2년여 만에 다시 찾은 예천에는 상흔이 여전했다. 재난이 인명과 재산 피해를 넘어 지역공동체 균열까지 이어지는 현실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 1월 26~27일 찾은 예천군 벌방리. 산사태 직후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신속한 복구를 약속하며 가장 크게 주목받았던 마을이다. 83가구가 살던 이 작은 농촌마을에서만 1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고 채수근 상병도 이 일대에서 실종자 수색 중 참변을 당했다. 벌방리 주민들은 여러 겹의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재난 발생 약 2년 6개월이 지난 현재, 벌방리는 겉보기엔 옛 모습에 가까워졌다. 바위와 흙더미에 덮였던 마을 입구에는 새집 공사가 한창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겉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외형상 정상화 단계에 접어든 듯 보이지만, 속사정은 따로 있다.
"그나마 자기 땅 있는 사람들은 새 집 지어 입주 준비하고, 땅 없는 사람들은 뭐 답이 있겠습니꺼. 그냥 컨테이너서 살겠다 카는 분도 있고. 예전에는 죽어도 자식들한테는 부담 안 준다꼬, 따라 안 가겠다 카시던 분들도 몇몇은 이번 일 겪고 마음 바꿨어요. '할 수 없제…' 이카면서 자식들 따라갔고."보상금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예천 이재민들은 '재난·안전관리 기본법' 등에 따라 피해 보상을 받았다. 피해 규모와 주택 형태에 따라 액수는 제각각이다. 지역에서는 1억 원 이상을 받아도 "후하게 받았다"는 말이 나온다. 급등한 건축 자재비와 인건비를 고려하면 이전 수준의 삶 회복은 요원하다.
마을 뒤편 산과 거리를 둔 곳에는 이주단지가 조성 중이다. 토지 매입 협상 등 절차가 지연되며 아직 시공조차 되지 않았다. 설령 완공되더라도 입주는 쉽지 않다. 일정 수준 이상의 건축을 주민이 먼저 자비로 진행해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에 당초 20명가량이던 이주 희망자는 현재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한 주민은 "당장 현금이 없으면 입주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라고 토로했다.
예천군 관계자는 "이주단지 입주 희망자 상당수는 무허가 건축물 거주자들"이라며 "그 외 파손된 주택에 대해서는 법과 기준에 따라 보상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민들의 불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관련 법령을 검토한 결과 지자체로서도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 피해도 적지 않다. 건설장비를 잃은 한 주민은 '건설기계 및 공사 장비'에 대한 피해 보상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농막이나 창고 등 무허가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농촌에서 농막과 창고를 개조해 주거 공간으로 쓰는 현실과 제도 사이 간극이 여실히 드러난다.
생계 수단이 가장 큰 문제다. 과수원을 운영하는 60대 박 아무개 씨는 산사태 발생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사과 3500상자를 수확했다. 그러나 2023년에는 750상자로 급감했다. 2024년 900상자, 2025년 1200상자로 조금씩 회복 중이지만 재난 이전 수준까지는 갈 길이 멀다.
농작물 등 피해 주민들은 농협이 운용하는 '농작물재해보험'에만 기대야 했다. 물론 이 역시 보상은 미미하다. 박 씨는 "그루당 30만~50만 원짜리 나무를 10만 원씩 받았다"며 "땅 속 뿌리까지 물에 잠기면서 나무는 거의 죽어버린 상태"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사과 가격이 급등한 시점은 예천을 비롯한 경북 산사태 직후였다. 도매가격 기준 kg당 4000원대이던 사과 값은 2023년 9월 8000원대까지 치솟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전국 사과 재배면적은 전년 대비 491㏊(1.5%) 줄었다. 전국에서 경북이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했다. 지역 산사태가 농민 개인을 넘어 사회 전반의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예천 주민들은 고민이 더 생겼다. 정부가 최근 한미 관세협상 이후 농축산물 검역 절차 개선을 예고하면서다. 박 씨는 "한미 관세협상 이후 사과 수입이 구체적으로 거론되면서 농민들이 전국을 돌며 시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현 정부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도 추진 중이다. 이는 미국이 2017년 탈퇴한 국제 무역협정이다.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11개국이 참여했다. 참여국끼리는 관세가 없어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단 호주, 뉴질랜드 등 농축산물 강국들이 다수 포진했다. 여기에 가입해도 사과 등 수입이 확대될 수 있는 셈이다.
'사과 수입 반대 투쟁'을 이끄는 박성훈 전국사과생산자협회 회장도 예천 산사태 피해자다. 그는 "사과 가격 상승을 산사태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지만, 정부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라며 "실제 피해 규모를 제대로 산정하는 과정조차 없었다"고 지적했다.

벌방리에는 80년 넘게 살아온 노인들도 많다. 이들은 "살면서 이런 산사태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천 범람은 겪어봤지만, 산이 무너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정부의 관리도 허술했다. 감사원이 2024년 6월 공개한 '산사태·산불 등 산림재난 대비 실태'에 따르면, 예천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5개 구역은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돼 있지 않았다. 산림청이 지정한 이재민 대피소가 위험 지역에 위치한 사례마저 확인됐다. 하마터면 2차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던 셈이다.
예천 산사태는 자연재해가 공동체를 어떻게 붕괴시키는지도 보여준다. 벌방리에서는 재난 직후 이장을 포함한 마을 지도부가 대거 교체됐다. 보상과 성금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하면서 책임론이 마을 지도부로 향했다고 전해졌다.
한 주민은 "(윤석열) 대통령 방문이 오히려 독이 됐다"며 "복구에 대한 기대가 유독 컸던 만큼, 성금을 어떻게 나눌지 등을 놓고 주민들 사이 다툼이 잦았다"고 말했다. 폭행과 고소전까지 불거지며 마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벌방리 주민들은 정부 대책만큼이나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임 마을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동네에 송전탑이 몇 개 있습니더. 그 보상도 예전에 밀양에서 시민단체랑 주민들이 같이 싸워서 받아낸 기라예. 밀양 사람들은 진짜 대단합니더. 여긴 보이소, 노인들만 사니꺼 문제제기 하기가 참 어렵습니더. 피해 재산 감정평가가 제대로 됐는지, 행정 절차가 맞는지 누가 좀 같이 봐 주고 옆에서 떠들어 주면 좋을 낀데… 그게 말처럼 쉽겠습니꺼."
예천=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