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당선인과 정몽준 전 대표가 대선 기간 울산에서 유세를 하는 모습. 정 전 대표는 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박 당선인이 고마워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연합뉴스 |
정치권의 모든 눈길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조각과 청와대 비서진 인선 등에 쏠려 있지만, 여의도 정치권에서도 조용히 움직이며 미래를 준비하는 인물들이 많다. 박근혜가 빠진 새누리당, 즉, ‘포스트 박근혜’를 두고 세력 결집을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여의도를 떠날 인사들이 아직 정리되진 않았지만, 수혈되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 인사들 가운데서는 차기 당권을 두고 ‘공사 중’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지난해 5월 선출된 황우여 당 대표 지도체제는 ‘변수가 없는 한’ 순항하게 된다. 황 대표가 대선국면에서 역할을 했든 하지 못했든, ‘정권 재창출’이라는 지상과제를 달성했기 때문에 ‘관리형 대표’로서는 점수를 잃지 않았다. 2년간의 임기가 보장되면 2014년 5월까지 집권 여당의 수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정치권은 ‘3가지’ 돌발변수를 거론하며 여의도에 일 파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하나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청문회다. 이명박 정부에서의 인선이지만 박근혜 당선인과 교감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 후보자가 낙마하면 외상은 불가피하다. 새누리당이 반대 여론에도 밀어붙일 경우 ‘지휘의 실패’를 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후보자 인선논란 등을 두고 당내 후폭풍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둘째는, 첫 조각의 실패다. 이 후보자와 같은 율사 출신인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그리고 신설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경제부총리에 이어 15부 장관의 청문회에서 잡음이 일면 외상은 더욱 커진다. 야권이 불을 지펴 부자격자에 대한 반대여론이 비등해지는 가운데 새누리당 지도부가 제대로 스탠스를 잡지 못하면 ‘내부 반란’ 가능성도 없지 않다. 첫 조각에 상처를 입을 경우엔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박 당선인의 방패막이로 당 지도부가 사퇴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셋째는, 안철수 전 후보의 재등장이다. 민주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안철수 전 후보는 때가 되면 민주당에 들어오는 게 맞다고 본다”고 군불을 때고 있다는 점, 대선 직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출국해 향후 정치 행보를 구상 중인 안 전 대선 후보를 민주당 소속이었다가 무소속이 된 송호창 의원이 만나러 간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안 전 후보의 재등장에 대한 일종의 복선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안 전 후보가 오는 4월이나 10월 재보선을 통해 여의도에 입성하거나, 민주당과 세력을 규합할 경우 새누리당의 ‘관리형 당 대표론’은 힘을 잃게 된다. 집권 여당으로선 ‘힘 있는 지도부’ 구성론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지도부를 인위적으로 교체할 필요성이 제기됐을 때 거론되는 인물로는,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가 있다.
집권 여당 내 ‘친박계 친정체제’ 구축이냐는 지적에서 그는 자유롭다. 새누리당 대선 경선 때 경쟁자였던 다른 후보군과는 달리 정 전 대표는 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박 당선인이 고마워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만 61세로 여당 내 7선 최다선이다. 하반기 국회의장 자격 요건도 갖췄다.
다음으로 ‘무대’의 귀환이다. ‘무대’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선대위 총괄본부장의 별명으로 ‘김무성 대장’의 줄임말. 지난해 4·11 총선 정국에서 그는 ‘백의종군’을 택했다. 선대위에 합류해 ‘군기반장’으로 캠프 질서 확립에 주력했다. 박 당선인의 ‘4강 외교’ 첫 방문국인 중국특사로 임명되면서 ‘김무성 역할론’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기세다. 포항남·울릉이 지역구인 김형태 무소속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될 경우 포항 출마설이 있다. 10월 경남 양산설도 나온다. 한번 탈박했다 돌아온 인사라는 점에서 ‘친박 골수’와도 거리가 있다. 당내 장악력과 정치력에서도 좋은 평가가 나온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나 김태호 의원 등의 이야기도 있지만 부정적인 시선이 많다. 특히 김문수 지사는 잔여임기가 남아 있어 당권파 대열에 들어오기는 어렵다. 5선이지만 젊다는 이유로 소장파로 분류되어온 남경필 의원(1965년생)이 당 대표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이나 나경원 원희룡 전 의원도 물망에 오르내리지만 힘이 약하다는 평가다.
몇 가지 시나리오가 맞아떨어져야만 변화 가능성이 있는 당 대표보다는 ‘실속파’의 움직임이 여러 곳에서 포착된다. 바로 ‘원내대표-정책위의장’ 경선이다.
의회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분위기에서 당 대표는 ‘얼굴마담’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새삼스럽지 않다. 오히려 원내대표가 당의 ‘간판’이란 것이다. 박 당선인의 미국특사로 지명된 이한구 원내대표 임기는 오는 5월까지다.
국회 교섭단체를 대표하는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는 지금부터 할 일이 산적해 있다. 현재 154석의 원내 과반의석 수장으로서 박 당선인의 공약 관련 입법을 의회에서 지휘해야 한다. 야권과의 협상, 교환, 거래를 통해 새 정부의 연착륙을 도모해야 한다. 절대 과제다. 정치와 정당쇄신 대책을 실현해 앞으로 다시 불 가능성이 큰 ‘안철수 현상’을 막아내야 한다는 숙제도 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4선급에서 맡아온 것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서병수 정갑윤 심재철 정병국 이주영 의원 등이 있다. 하지만 4선급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는 점에서 3선급으로 내려올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진영, 경기에서는 유정복, 부산에서는 유기준, 대구에서는 유승민, 울산의 김기현, 충북 정우택, 경북 최경환 의원 등이 후보군으로 꼽힌다.
경남의 한 중진 의원과 친박계의 대표적인 심복인 한 의원이 러닝메이트로 벌써 물밑에서 작업하고 있다는 소문도 크게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얼굴마담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당 대표와 달리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여의도 의회의 실질적인 가교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점에서 친박계의 추대 가능성이나, 친박계 내 경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지난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비서실장이었다가 ‘인적쇄신’ 논란으로 실장직에서 물러난 최경환 의원의 이름이 무게감 있게 거론된다. 일부 초선 의원들이 힘을 모아 밀어줄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박심’에 가장 가깝다는 점, 경제 관료 출신으로 언론 경험까지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같은 TK권에서 비토세력이 많다는 점, 실세로서의 악성 루머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약점이다.
새누리당 선대위 직능본부장을 맡아 전국 직능조직과 단체를 주물렀던 유정복 의원도 같은 이유로 최 의원의 경쟁자로 떠오른다. 당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가능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영남권을 탈피해야 한다는 점에서 친박계 정우택 의원도 자주 거론되고 있다.
집권 여당의 당대표와 원내대표는 2014년 6월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지방선거는 대통령 임기의 반환점에서 치러지면서 ‘중간 평가’로서의 상징성이 컸다.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은 내년 지방선거에 ‘올인’해도 절반의 성적도 내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민의 48%(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득표율)가 박 당선인을 감시,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란 이유에서다.
2월 25일 박근혜 당선인의 취임식 직후, 새누리당 내에서 ‘포스트 박근혜’를 향한 진군이 예고되고 있다. 차기 대권을 향해 세력을 모으는 새로운 계파의 출현도 초읽기에 들어가고 있다.
선우완 언론인
기자끼리 퍼즐 맞춰 ‘소설’을 쓸 수밖에…
▲ 강석훈 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위원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 출근하며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
지난 1월 23일 오전 서울 삼청동 인수위 한 브리핑실. 한 기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어떤 소식통이 이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새누리당 지도부와 국회 상임위원장의 오찬 회동을 알렸다. 이를 들은 다른 기자들은 오찬 ‘예상’ 장소를 찾느라 동분서주했다. 사실 이날 ‘오찬 회동’은 전날 몇몇 정치부 기자들의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 박 당선인 측은 오찬 장소를 바꿨고, 007작전을 연상케 하는 첩보전이 시작됐다. ‘비공개 오찬’은 불가능해졌고, 펜과 카메라가 오찬장소를 에워쌌다. ‘철통보안’을 유지하던 박 당선인의 철책선이 처음으로 붕괴되던 순간이었다. 한 참석자는 “유리문을 통해 카메라 셔터가 터지고, 수많은 기자가 유리창에 귀를 대고 서있더라. 누가 그런 상황에서 민감한 말을 하겠느냐. 정말이지 ‘덕담’만 오갔다”라며 “박 당선인도 ‘고맙다’는 말과 ‘잘 부탁한다’는 말만 되풀이해 실속(?)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박근혜 정보 철조망’을 뚫은 예는 여기서 끝이다. 박 당선인은 국무총리 하마평 언론전에서 완전한 승자가 됐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의 국무총리 지명은 어느 언론도 예측하지 못했다. 24일 오후 2시 인수위 공동기자회견장에서 박 당선인이 직접 ‘김용준’을 거론했을 때, 회견장엔 5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박 당선인은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떠났고, 며칠 전 소식을 알았다는 김 후보자는 준비가 덜 된 답변을 나열했다. 흔히 쓰는 은어로 “헐~”이란 말이 나오자 몇몇 기자가 헛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언론의 예측이 번번이 빗나가는 것은 정보의 철저한 차단에 있다. 그래서 기자들끼리의 말이 퍼즐 맞추기 식으로 끼워지면서 오보가 오보를 낳는 사태가 비일비재하다. 친한 기자들이 모여 그동안 전해들은 하마평을 늘어놓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가 더해지고, 후보군이 넘쳐 난다. “그중에 하나는 걸려들겠지”하는 착각이 사실인 양 회자한다. 인수위 정국에서의 언론보도는 기자들이 생산한 ‘언론만의’ 자체 ‘기대’일 뿐이다.
김 총리 후보자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인 기류가 다수였지만 다소 ‘포장돼’ 보도됐다. 고령에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악평’을 쓰기 껄끄럽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지금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일부러 상처를 낼 필요는 없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수위 주변에서는 김 후보자에 대한 악평도 간간이 나오고 있다. ‘싱글 여성 대통령이기 때문에 영부인이 해야 할 일도 총리가 대신해야 한다’ ‘하지만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인 김 후보자가 국내외를 넘나들며 총리직을 하기엔 무리다’ ‘귀가 어두워 의사소통이 어렵다’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이었지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주장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예스만 외치는 충성파로 채우고 있다’ 등등이다.
최근 들어 인수위 출근길이 겁난다는 기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취재원이 아닌 기자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점심과 저녁을 먹는다. 곧 끝이 날 인수위 주변의 모습에서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알권리’를 어떻게 채워줄 것인지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