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지난 14일 열린 제 1차 비상대책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원 안은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민주당의 구조적 문제점과 혁신방안 문건. 박은숙 기자 |
<일요신문>은 최근 민주당 내부 전략팀에서 작성한 ‘민주당의 구조적 문제점과 혁신방안’이라는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 이 문건은 대선 뒤 처음으로 나온 당의 공식적인 자체 반성문이자 향후의 혁신과제 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여기에는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진’ 민주당의 4대 문제점과 4대 혁신방안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특히 혁신방안 가운데 주목할 점은 ‘민주당의 자기혁신 없는 안철수 전 후보의 영입은 양쪽 공멸’이라는 지적이다. 사실 안 전 후보의 행보는 등불 없는 민주당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하지만 이 문건에서는 내부 개혁 우선과 안 전 후보의 배제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밝힌 ‘안철수 영입론’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향후 상당한 당내 논란이 예상된다.
문건에서는 민주당이 철저하게 그들만의 힘으로 혁신하고 그 결과를 통해 경쟁력 있는 후보를 만드는 길만이 다음 대선에서 희망을 볼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에는 ‘안철수 기대기’ 기류가 강하게 흐르고 있어 향후 안 전 후보 영입 문제가 당 혁신의 주 전쟁터가 될 전망이다. 민주당의 대선 패배 원인과 향후의 개혁 과제 등을 문건을 통해 따라가 봤다.
민주통합당의 대선 ‘실패학’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대선 실패의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 다음 선거의 성공 비결로 삼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민주당은 지난 1월 24일 대선 결과 토론회를 개최해 선거 뒤 처음으로 패배 원인 분석에 나섰다. 대체적인 의견은 대선 과정에서의 지도부 공백, 전략의 부재로 요약된다. 단일화 필승론에 도취돼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당 일각에서는 친노 패권주의의 저주에 걸려 졌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민주당의 구조적 문제점과 혁신방안>에서도 앞서의 토론회 분석과 비슷한 점이 발견된다. 하지만 그 내용과 표현은 훨씬 구체적이고 신랄하다. 먼저 민주당의 4대 문제점을 살펴보자.
문건에서는 ‘정체성이 모호한 정당’을 첫 번째로 지적하고 있다. ‘정책조율이 없는 야권연대로 좌파진영의 논리를 100% 수용하는 것처럼 보여 색깔론, 불안정 이미지 양산’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대선후보 토론회 과정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무차별 공격에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동조하는 듯한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 ‘막말 이정희와 도매금으로 넘어가 이미지가 추락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보수층의 극한 반대투표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두 번째로 ‘무책임 정당’에 대한 반성이다. 막스 베버의 “정치인은 신념보다 책임윤리가 우선”이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총선 평가의 은폐로 책임질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최근 한 언론이 보도한 민주당 문건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민주당이 4월 총선 패배 후 ‘총선평가보고서’를 만들어 이해찬 전 대표 등 당 지도부에 보고했지만 그 내용은 공개되지 못했고 ‘주류’들의 손에 의해 ‘은폐’됐다. 결국 그 후유증이 대선 패배로 이어지게 된 것임을 문건은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이 문건은 민주당의 FTA, 강정 해군기지, 세금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FTA, 강정 해군기지 결정은 공과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되면서 자주, 생태주의와 같은 근본주의적 가치에 매몰돼 번복한 것이 국민 신뢰 상실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세 번째 지적은 민주주의가 없는 민주당이다. 공심위에서의 계파 담합으로 정치신인과 무계파 정치인을 배제시킨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당헌상 주요 정치적 결정은 전당대회에서만 가능하지만 대부분 ‘위임’의 형태로 당무위원회, 중앙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도 선출되지 않은 계파 대리인들의 의사결정 독점을 불러왔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서 당원은 당비만 내고 행사에 동원될 뿐이지 실제 의사결정 구조에서 배제되는 비민주적 행태를 보여 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장이 아닌 인터넷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비몽사몽 정당’이라는 신랄한 표현도 나온다. ‘민주당이 온라인상에서 절대적 우세에 있지만 50, 60대의 투표부대를 당해내지 못한다’며 ‘대형교회, 관변단체, 여성모임 등의 현장 당원 조직이 절대적으로 열세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은 강한 비판, 마타도어의 활용으로 프레임 구축(편가르기)은 효과적이나 중도·부동층에 대한 설득기제로 작동하지 못하고, 오히려 극단적 진영논리로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고 반성하고 있다. 이 문건은 나꼼수의 활동에 대해서도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싸가지 없고 품격 없는 진보논객의 부작용”으로서 나꼼수를 표현하고 있다.
민주당의 4대 문제점을 토대로 이 문건은 4가지 혁신방안을 지적하고 있다. 먼저 ‘다양한 계급, 계층과 새로운 사회적 흐름을 담아내는 국민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도진보~중도보수의 이념적 범위를 ‘자유주의 강화’로 넓히자고 제안하며 지지기반도 서민과 중산층(화이트칼라)에서 블루칼라, 경제계/종교계, 풀뿌리/급진주의 수용으로 바뀌어야 하며 활동가의 범위도 운동권, 관료, 변호사 위주에서 풀뿌리 활동가 발굴과 당내 정치 엘리트 양성 등으로 다양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혁신방안은 ‘당원 중심의 대중정당’이다. 경선 의무화와 전략공천 폐지를 통해 공직후보 선출권을 당원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당원 투표에 의한 대의원, 지역위원장을 선출하고 주요 당론은 전 당원 투표제로 결정하자는 내용도 있다. 지도부와 국회의원 당원소환제 도입도 제안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오픈 프라이머리를 폐지하고 원내정당 역할을 축소하자는 부분이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연방제로 주가 독립적이어서 중앙당 형성과 당원관리가 힘든 미국적 현상일 뿐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픈 프라이머리는 비당원인 시민의 선택이므로 정당의 사후 책임이 약해지는 단점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모바일 투표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는데, ‘모바일은 안정성 부족, 비밀투표 불가능, 모집단(선거인명부)이 확인되지 않는 점, 오차의 존재로 정치 제도의 일반 원칙이 위배되는 등의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여론조사는 오차가 당연히 있지만, 선거는 오차가 있으면 무효라는 점에서 모바일 투표가 근본적으로 선거절차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의원특권 폐지 및 지방화를 내세우고 있다. 국회의원의 지역위원장 겸임, 임명직 당직 금지와 의원총회의 권한 축소, 당원이 선출한 일상 당무/대의기구로 중앙위원회를 구성하자는 게 의원특권 제한의 주요 내용이다.
이 문건을 접한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민주당이 대선 패배의 원인을 몰라서 쇄신을 못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이 문건의 문제점 분석과 혁신방안 등은 상당히 강력한 쇄신을 담고 있다. 하지만 친노중심 주류와 선거 패배 책임자들의 기득권 내려놓기가 선행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교과서에 나온 대로만 공부하면 정답은 금방 맞힌다. 민주당이 교재가 없어서 틀리느냐. 오답을 알고도 고칠 의사가 없는 무뇌아이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총선서도 실패한 ‘MB 심판론’ 재탕
민주당의 구조적 문제점과 혁신방안 문건의 첫머리는 ‘질 수 없는 선거를 졌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95% 이상 이길 수 있는 확률이었지만 나머지 5%가 부족해서 패배했다는 설명이다. 먼저 선거환경과 구도에서 민주당은 ‘정권교체의 국민적 열망’과 ‘야권단일화, 투표율, 영남 균열’의 3대 필승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것으로 진단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양자구도 보수 필패론’(국민 이념조사를 하면 보수보다는 중도·진보가 높음)으로 대선에서 패색이 짙었다고 진단한다. 민주당이 대선 패배 뒤 문재인 후보가 48%나 득표해 선전했다고 진단한 것은 이 논리로 보면 완전한 허구이자 책임회피용 분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문건은 후보와 당의 역량을 5% 정도로 잡고 있다. 문재인 후보가 야권의 영남후보라는 강점(호남과 영남의 고른 지지를 받는 최선의 조합)과 5년간의 국정경험으로 박근혜 후보의 확장성 부족과 정책 무능에 완벽히 앞섰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나머지 5%의 변수인 정책 전략 때문에 대선에서 패배한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문건에서는 ‘당 역량 협소와 주도세력(친노) 헌신성 부족’을 패인의 원인으로 꼽고 있는데, 특히 친노세력이 대선을 앞두고 기득권을 놓지 않고 끝내 문재인 정권 불참 선언 등과 같은 자기희생과 헌신성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총선에서도 실패한 전략인 이명박 정권 심판론을 다시 꺼내 든 것도 실패 원인이었다. 계층·세대별 맞춤정책이 없었고 충청공략 전략도 없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반면 박근혜 후보는 대선 막판까지 신뢰와 안정감을 잃지 않았고 친노심판론과 중도 연착륙(경제 민주화, 복지 분점)이 좋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안철수 신당에 기댈 경우 공멸” 문희상 발언과 배치 논란 예상
<일요신문>이 입수한 민주당의 대선패배 원인분석과 혁신방안을 보면 안철수 전 후보에 대한 항목도 들어 있다. ‘당 쇄신과 안철수 전 후보 관계’도 혁신방안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 요소로 민주당 혁신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이 문건은 ‘정당개혁이 최우선 과제로 안철수 전 후보의 행보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적시하면서 ‘민주당의 자체 개혁의 완성 없이 안철수 신당에 기댈 경우 양쪽 모두 공멸’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안철수 전 후보 배제’ 제안도 들어있는데 ‘안철수 신당이 의원 빼가기(30여 명의 의원이 합류 의사)식의 구태정치로 갈 경우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 지지층의 업그레이드를 통한 신당 창당이 아니면 민주당이 연대해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문건에서 밝힌 ‘안철수 배제론’은 향후 민주당 쇄신정국에서 상당한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사견임을 전제로 “만약에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정치를 한다면 60년 된 옥답(민주당)에 들어와 ‘오야’(일본어로 두목) 노릇을 해야 한다. 지금 밖에서 창당하면 절벽에서 텃밭을 개간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하면 둘 다 망한다”라고 말했다. 안 전 후보 영입을 강하게 시사하는 발언으로 문건의 ‘자강론’(쇄신을 통해 스스로 힘을 키우는 일)과 완전히 배치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전계완 매일 P&I 대표는 이에 대해 “안철수 전 후보는 이제 대선정국의 상수가 아니다. 그 효과는 지난 대선에서 소멸했다. 민주당이 안 전 후보의 행보와 맞물려 개혁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오히려 과감한 자기혁신과 새로운 인재 발굴 시스템을 적극 개발해 안 전 후보와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자체 후보를 키워내는 게 급선무다. 특히 안 전 후보가 신당을 창당할 때 민주당 의원 빼가기를 통해 세 불리기를 시도할 경우 두 당의 합당은 ‘공도동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안 전 후보는 안철수 현상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자신들만의 인재를 육성해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민주당에게 가장 필요한 건 안철수 금단 현상을 극복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