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인성은 조 과장을 설명하면서 ‘직장’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국가기관이라는 거대한 틀보다 하루를 살아내는 개인의 리듬에 초점을 맞췄다는 의미다. 출근을 준비하고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피로를 안은 채 움직이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그 일상의 감각을 첩보 스릴러라는 서사 안에 심어두고 싶었다고 했다.
“사실 조 과장은 직장인이죠, 국정원 직장인. 그래서 그가 보여주는 행위들은 모두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늘 하는 것들과 비슷해요. 캐릭터에 맞게 나열돼 있는 것들을 주머니에 넣고 일을 하러 나가죠. 그 사이사이에 아침에 일어난 피곤함, 생활에 약간 찌든 느낌들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마치 드라마 ‘미생’처럼 일상적인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조 과장이 마지막까지 그 고달픔과 피곤함을 담고 있는 모습으로 수미상관을 맞추려고 했죠(웃음).”
개봉 후 관객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것은 역시 액션 신이었다. 특유의 긴 팔다리를 활용한 동선과 절제된 움직임이 화면에서 독특한 인상을 남겼다는 평가다. 다만 그 반응 자체에 대해서 조인성은 ‘물음표’가 많이 남는다고 했다. 촬영 전 준비 과정은 물론 치밀했지만 결과가 만들어지는 방식은 배우 한 명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 연출과 현장의 합이라는 게 그의 이야기다. 스스로를 ‘액션을 잘하는’ 또는 ‘액션에 큰 의미를 두고자 하는’ 배우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 역시 겸손이라기보다는 냉정한 평가에 가까웠다.

촬영 준비 과정에서 실제 국정원 공간을 방문하기도 했다. 들어갈 땐 휴대전화를 포함한 개인 소지품을 모두 맡겨둬야 했고, 나올 때도 그 안에서 작성하거나 만든 어떤 것도 가지고 나올 수 없었다. 처음 접한 분위기에 압도되긴 했어도 직접 만나본 요원들은 누구보다 ‘인간 냄새’가 났다는 게 조인성의 이야기다. 요원들이 임무를 대하는 태도와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체감하며 현장에서 보고 들은 동작과 설명들은 액션 신 설계에 고스란히 활용됐다.
“국정원 관계자 분께 제가 ‘김두식(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에서 조인성이 연기한 인물)처럼 초능력을 가진 블랙 요원도 있나요?’라고 여쭤봤는데 고민을 많이 하시더니 국가기밀이라 말씀드릴 수 없다고 농담을 하시더라고요(웃음). ‘휴민트’의 총기 액션 신에서 제가 쓰러진 다음에 무릎에 총을 껴 넣어서 탄창을 넣고, 뒤꿈치로 장전하고 이런 장면이 있는데 그것도 국정원 교관님이 아이디어를 내주신 거예요. 실제로 급하면 이렇게 장전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괜히 멋부린다고 혼날까봐 걱정했는데 실제 하신다고 하니 충분히 고증된 신이란 게 인정된 거죠(웃음).”
액션 신과는 또 다른 결로 상대와 완벽한 호흡을 맞춰야 했던 것이 신세경이 연기한 채선화와의 모든 장면들이었다. 극 중 박건(박정민 분)이라는 옛 연인이 있지만 선화가 조 과장을 대하는 태도나 그 반대 역시 관객들에게 다양한 감정의 해석을 불러일으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서사의 긴장과 별개로 두 인물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읽어낸 관객들의 이런 반응에 대해 조인성은 흥미롭다고 평했다. 배우들이 의도적으로 설계하지 않았던 감정이 스크린 밖에서 확장되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휴민트’를 시작으로 올해는 그의 이름이 유독 자주 오르내린다. 오는 7월에 나홍진 감독의 ‘호프’, 아직 정확한 일정은 나오지 않았으나 하반기로 예상되는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까지 줄줄이 공개를 앞두고 있다. OTT 시리즈와 극장용 영화를 오가며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는 만큼 해외 진출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감도 높지만 조인성은 좀 더 냉정한 판단을 내놨다. 제작과 송출 환경이 모두 달라졌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선 스스로를 과장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자신을 ‘내수용’이라며 농담하면서도 한국어로 연기하는 배우로서의 자리를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요즘 해외에 우리나라 작품들이 많이 보이고, 그걸 통해 세계 진출로 이어지는 케이스도 많더라고요. 그런데 아직 제게는 한 편도 제의가 없는 걸 보면 ‘나는 로컬용이구나’라는 가치 평가를 하게 되죠. ‘무빙’이 잘됐다고 하지만 제가 해외 나갔을 때 저를 알아봐 주는 사람은 없어요(웃음). 해외 작품의 출연 제의가 들어오면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그냥 똑같이 열심히 한국말 하면서 괜찮은 한국 작품을 만들고, 해외 분들도 OTT 등 유통망을 통해서 봐주시면 좋겠다 정도의 느낌이에요. 저한테 아직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는 자질이 있어 보이진 않아서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