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당신인의 통치 스타일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흡사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박 당선인이 퍼스트레이디 시절 배운 것으로 보인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부녀 대통령’ 탄생. 박 당선인의 대선 승리가 확정된 직후 국내외 언론들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청와대에 들어가게 된 점을 집중 부각했다. 여의도 주변에선 다양한 버전의 ‘박정희-박근혜 평행이론’이 나돌기도 했다. 18년간 집권하던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한 뒤 18년 동안 칩거했던 박 당선인이 18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지칭하는 이른바 ‘18 평행이론’이 대표적이다.
박 당선인이 평소 아버지에 대해 신앙 수준의 경외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터라 정치권에선 과거 박 전 대통령의 정책, 리더십 등이 재현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대선 과정에서 과거사 문제가 논란이 되자 “아버지를 놓아드리자”고 했던 박 당선인이었지만 선거가 끝난 후에는 가장 먼저 박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아 감회에 젖은 모습을 보여 이러한 관측에 더욱 힘이 실렸다. 박 당선인이 대선 전날인 지난해 12월 18일 “잘 살아보세의 신화를 만들겠다”고 부르짖었던 것도 박 전 대통령의 뜻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되기도 했다.
# ‘용인술’ 퍼스트레이디 시절 습득
박 당선인이 청와대에 들어가 안주인 역할을 대신한 것은 지난 1974년 고 육영수 여사가 피습으로 사망하면서부터다. 당시 상항에 대해 박 당선인은 여러 차례 사석에서 “퍼스트레이디 시절 아버지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사람 쓰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부분의 정치컨설턴트들도 “박 당선인의 ‘용인술’은 박 전 대통령의 것과 흡사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박 당선인은 2인자를 두지 않는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이 ‘분할통치’를 통해 권력 균형을 모색하려 했던 것과 맞닿아 있다. 한때 박 당선인의 최측근이었던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에게로 힘이 쏠린 적이 있었다. 차기 정부에서도 요직 기용이 점쳐졌었다. 그러나 실세 중 실세로 분류됐던 최 의원은 대선기간 ‘인의장막’ 논란이 일면서 2선으로 물러났다. 현재 인수위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여기엔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박 당선인의 뜻이 반영됐다는 게 정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 번 신뢰한 인사는 끝까지 데리고 간다는 것도 ‘박근혜-박정희’ 부녀의 유사점이다. 박 당선인이 각종 구설에도 불구하고 15년간 보좌한 참모진을 각별히 아끼는 모습은 박 전 대통령이 박종규·차지철 등 측근들을 대하는 것과 빼 닮았다는 평이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박 당선인과 소원해졌다는 소문이 돌았음에도 불구하고 인수위 부위원장에 발탁된 진영 의원, 박 당선인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정현 정무팀장 등도 박근혜식 인사의 대표적 케이스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박 당선인과 오래 가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철저하게 보좌 기능에만 충실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밀봉 인사’로 일컬어지는 박 당선인의 철통보안 인사도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배웠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은 일부 기관장을 임명할 때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후보자에게 전화를 걸어 “임자가 맡아봐”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은 박 전 대통령과 전화를 받은 당사자, 검증을 담당한 실무자 외에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어서 새나갈 가능성이 적다.
박 당선인 역시 인수위원을 발탁할 때 수첩에 기록해둔 인사들에게 전화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용준 인수위원장 역시 박 당선인과의 독대 자리에서 총리직을 제안 받았다는 후문이다. 이는 박 당선인이 ‘보안’을 어느 정도로 중시하는지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
# 청와대 개편 4공 연상
지난 1월 21일 인수위원회는 대통령실을 비서실로 바꾸고 정책실장과 6개 기획관을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청와대 개편안을 발표했다. 인수위는 ‘작은 청와대’를 강조했지만 비서실장 역할은 더욱 커졌다는 게 공통된 반응이다. ‘실세’들 몫이었던 기획관은 없어졌고, 비서실장 산하엔 총 9개 수석이 포진했다.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통해 ‘직할통치’를 하는 구조다. 더군다나 비서실장은 대통령 권력의 핵심인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인사위원회의 위원장까지 겸임해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됐다.
이러한 비서실 형태는 박 당선인이 퍼스트레이디를 맡던 4공화국을 연상하게 한다. 박 전 대통령은 1968년 행정 각 부를 대응하는 장·차관급 수석을 신설하고, 이를 비서실장이 총괄하는 형태로 비서실을 바꿨다. 한 친박 의원은 “박 당선인의 스타일상 비서실장을 필두로 하는 비서실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본다”면서도 “그런데 권력 중 제일 센 게 바로 문고리 권력이다. 박 당선인의 보좌관들을 왜 실세라고 하겠느냐. 아마 비서실장이 박 당선인 다음가는 파워를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박 당선인이 1969년부터 무려 9년 3개월 동안 재직해 최장수 비서실장 기록을 갖고 있는 김정렴 전 비서실장 모델을 염두에 뒀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 전 비서실장은 철저하게 몸을 낮추면서도 각 수석들을 통해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 김 전 실장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는 박 당선인의 청와대 생활에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처럼 비서실장의 힘이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경호처장 위상이 어떻게 변화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경호처장의 지위 향상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 당선인이 ‘커터 칼 피습’ 이후 경호에 남다른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가능성은 높다는 게 정치권의 판단이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면서 경호실은 경호처로, 장관급이던 경호실장은 차관급인 경호처장으로 격하됐다. 경호처장은 동급이었던 대통령실장 지휘를 받는 처지가 됐다. 이 때문에 당시 경호처 내부는 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이후 경호처는 예전과 같은 장관급으로의 격상을 위해 물밑에서 노력을 해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호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박 당선인이 청와대에 들어오면 경호처가 어떤 식으로든 변화하지 않겠느냐. 모두들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전하기도 했다. 실제로 인수위는 25일 경호실을 비서실로부터 분리하고,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바꾸는 방안을 발표했다.
# 과거의 제도 벤치마킹
▲ 박근혜 당선인과 박정희 전 대통령. |
박근혜 정부에서 새롭게 만들어질 국가안보실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박 전 대통령은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던 이른바 ‘1·21 사태’ 이후 장관급인 안보특별보좌관을 임명해 대북 정책의 일관성을 꾀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비서실과 함께 청와대 양대 축으로 떠오른 국가안보실도 통일·안보 정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예정이어서 과거 안보특별보좌관 제도를 ‘벤치마킹’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과학과 안보만큼은 직접 챙겼던 박 전 대통령이지만, 경제는 전문가들에게 ‘위임’하는 방법을 선호했다. 이는 박 당선인 역시 마찬가지인 듯하다. 박 전 대통령 시절 경제 발전을 이끌었던 경제부총리 제도를 다시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부, 고용노동부,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진두지휘하며 ‘경제 수장’을 맡는다.
박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남덕우(총리)·이승윤(경제부총리)·김만제(경제부총리)·김용환(재무장관) 등에게 경제를 맡겼다. 특히 박 당선인의 ‘멘토’로잘 알려진 남덕우 전 총리는 1969년부터 1978년까지 9년 동안 재무부 장관 및 경제기획원 장관 등을 거치며 경제 정책 수립에 깊숙이 관여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서강대 명예교수), 홍기택 인수위 경제1분과 위원(중앙대 교수) 등 현재 박 당선인 경제정책에 도움을 주고 있는 이들 역시 남 전 총리제자들인 ‘서강학파’들이다.
이처럼 경제부총리 도입과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은 박 당선인이 경제를 정부 주도로 이끌어나가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당선인 비서실 관계자는 “지난 1960∼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산업화를 달성했던 박 전 대통령의 성공 사례를 21세기형으로 변형해 제2의 경제 부흥을 모색하겠다는 것으로 봐 달라”고 주문했다. 양극화,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문제 등 민간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현안들을 정부가 직접 개입해 풀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박 당선인의 정책들에 대해 야권과 일부 학계에서는 우려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미래’를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가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야당 의원들은 “지금은 정부 주도로 ‘새마을 운동’을 하던 산업화 시대가 아니다”라며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경제부총리 제도는 잘 활용하면 유용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왜 없어졌겠느냐. ‘옥상옥’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고, 부작용도 컸기 때문이다. 정부가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려 하지 말고 민간 기업을 보조하는 게 현 경제 패러다임에 더 어울린다”면서 “박 당선인은 대선 내내 복지를 강조했는데 왜 지금 경제 부흥만을 앞세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의 ‘박정희식 인사’에 대해서도 뭇매가 쏟아지고 있다. 야권의 한 중진 의원은 “보안도 좋지만 여론 검증이 더 중요하다. 청문회는 어쩌려고 그러느냐. 말이 좋아 철통이지 솔직히 밀실인사 아니냐”고 꼬집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