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강도도 한 사람 한사람 별도로 취급하면 별 죄가 아니다. 상습범도 하나하나 나누면 큰 죄가 아니다. 중한 죄가 형사의 편의주의에 의해 가벼운 죄로 변질되기도 한다. 아직도 행정편의주의 뿌리가 질기다. 조그만 트집거리만 있으면 일을 하지 않을 궁리만 한다. 판단의 기준이 국민이 아니라 조직의 편의다.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서로 편하자고 하는 데는 뜻이 찰떡궁합이다. 고소사건을 조사하는 형사를 보면 수사관이 아니라 판사다. 수사란 증거를 하나하나 수집해 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형사들은 그 증거들을 당사자에게 제출하라고 떠넘기는 게 습관이 됐다. 증거를 제대로 제출하지 못하면 단번에 무혐의 쪽으로 몰아버린다. 검찰도 그게 싫지 않다. 공소를 유지하느라고 골치 아픈 것보다 형사의 의견을 선택하는 게 편한 것이다.
교활한 악질범들이 게으른 형사들이나 검사들의 느슨한 법망을 피해가기는 너무 쉽다. 돈 있는 사람들은 심부름센터라도 동원해서 증거를 만든다. 또 비용을 주고 진술서라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서민들은 형사가 드라마같이 해 줄 것으로 상상하다가 절망한다. 그들은 고소장 한 장 제대로 쓸 수 없다. 범죄사실이 정확하지 않으면 검찰에서는 바로 각하처분을 내리기도 한다. 이면을 살펴줄 아량이 현실에서는 거의 없다. 결국 많은 서민이 법의 밖으로 내동댕이쳐진다.
부장판사를 20년 동안 지낸 한 변호사가 내게 한탄을 했다.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20년 이상 재판장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형사사건의 유무죄를 재판한 베테랑이었다. 그런데 변호사 개업 이후 자기가 분명 유죄로 보고 고소한 사건도 열 건 중 두 건 정도만 기소되더라는 것이다. 나머지는 거의 다 무혐의로 결정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서민들에게 법적 정의는 현실에서 20% 정도 밖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단정했다.
기름보다 더 미끄러운 이기주의가 수사기관의 저변에 흐르고 있다. 공기업이 부실경영이 많은 것처럼 형사나 검사가 하는 수사도 무성의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면서 인수위는 재벌 회장이나 정치인을 수사하는 중수부에만 관심이 쏠려있다. 차관급 자리를 얼마나 유지시키느냐가 검찰의 관심사항이다. 서로 일은 하기 싫으면서도 권한은 늘려보자는 게 수사권 독립의 이면이다. 사법수사에서 서민을 위한 게 안보인다. 대통령의 딸로 자라나고 후에도 법의 특별보호의 대상이 됐던 박근혜 당선자가 법의 밖에 내동댕이쳐진 서민들의 원한을 얼마나 공감할까.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게으르고 약아빠진 인물들이 현장에 우글대면 법은 장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