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1월 21일(현지시각) 워싱턴 의회의사당 앞에서 2기 취임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미 역사상 최초의 재선 흑인 대통령이라는 새 역사를 쓴 버락 오바마 대통령(50)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취임식을 마친 후 집권 2기를 맞았다. 180만 명이 운집했던 4년 전 취임식에 비해 60만~80만 명이 모이는 등 규모는 작아졌지만 열기와 기대만큼은 그때 못지않게 뜨거웠다. 오전 11시 27분부터 한 시간 7분 동안 진행된 취임식은 워싱턴 의회 의사당에서 백악관까지 이어진 퍼레이드에서 절정을 이뤘으며, 오바마 대통령은 15분 동안 낭독한 취임 연설에서 ‘통합’과 ‘하나된 미국’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인종과 계층을 포용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진행된 취임식의 이모저모와 함께 미처 알려지지 않은 취임식의 이면을 살펴봤다.
취임식 행사의 백미라고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의사당에서 백악관까지 대통령 부부가 리무진을 타고 행진하는 퍼레이드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취임식 퍼레이드의 전통은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때부터 시작됐지만 조직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은 1809년 4대 대통령인 제임스 메디슨 때부터였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여성들은 퍼레이드에 참가할 수 없었다. 여성들이 퍼레이드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1917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2기 취임식 때부터였다.
이번 취임식 퍼레이드는 전통에 따라 의사당에서 백악관까지 이어지는 약 2.4㎞ 구간에서 진행됐으며, 모두 65분이 소요됐다. 자동차로 5분도 안 되는 거리를 한 시간이 넘게 거북 걸음으로 느리게 행진한 오바마 부부는 일부 구간에서는 도보로 행진하면서 환호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7분 동안 도보 행진을 한 후 다시 리무진에 올라탄 오바마 부부는 백악관 근처에서 다시 한 번 내려 백악관 정문까지 걸어가는 것으로 퍼레이드를 마무리했다.
퍼레이드에는 대통령 전용 리무진인 ‘포드’사의 ‘캐딜락 원’이 사용됐다. 이번 취임식에서 경호원들 사이에 암호명 ‘더 비스트(The Beast)’라고 불렸던 ‘캐딜락 원’은 제작비만 30만 달러(약 3억 2000만 원) 이상이 소요된 특수 리무진으로, 총알은 물론 대전차 미사일의 공격에도 끄떡없는 특수 방탄 차량이다. 또한 연료탱크는 외부 폭발의 어떤 충격도 모두 흡수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됐으며, 타이어 역시 절대 펑크가 나지 않도록 제작됐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이렇게 개조를 한 까닭에 차체 무게가 많이 나가 연비가 나쁘며, 최대 속도 역시 시속 약 96㎞밖에 나오지 않는다.
▲ 이번 취임식에선 예전과 달리 여성 경호원들이 대거 투입됐다. |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다름이 아니라 지난해 4월 콜롬비아에서 발생한 미 비밀경호원들의 역사상 최대 스캔들인 ‘성매매 스캔들’ 여파 때문 아니냐는 것이다. 당시 콜롬비아 수도 카르타헤나에서 열린 아메리카 정상회의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의 경호를 위해 일주일 전 먼저 콜롬비아에 도착했던 경호원들이 현지에서 성매매를 한 사실이 발각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경호원들의 매매춘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이는 행여 비밀이 새나갈 경우 보안에 구멍이 뚫릴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스캔들이 발생하자 백악관 안팎에서는 남성 경호원들의 일부를 여성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바로 이 점 때문에 이번 취임식에서도 여성 요원들이 대거 투입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편 이번 대통령 취임식에는 전국에서 파견된 약 2600명의 경찰병력과 워싱턴 경찰 3800여 명, 그리고 비밀경호국(SS) 및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을 비롯해 약 1만 명의 경호원과 안전요원이 배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규모로 치러지는 취임식 비용은 어디서 어떻게 충당할까. 일반적으로 취임식 행사비는 세금과 기부금을 통해 마련되며, 이번 취임식에는 모두 1억 7000만 달러(약 1800억 원)가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세금에서, 그리고 나머지는 개인 및 기업 후원금으로 충당됐다. 취임식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취임식에 후원금을 전달한 개인과 기업은 모두 합쳐 993명이었으며, 이 가운데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폴 사이먼, 새뮤얼 잭슨 등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년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기업으로부터도 후원금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마이크로소프트, AT&T 등 모두 여덟 개 기업이 후원금을 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액수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기업이 취임식 경비를 지원하는 것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액수에도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행정부가 기업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을 염려해 지난 2009년 취임식 때는 기업 후원금을 당차게 거절한 채 개인 후원금만 받은 바 있다. 이랬던 오바마가 이번 취임식에서는 태도를 바꾸자 많은 이들이 실망한 것은 당연한 일. 이에 백악관은 “문제가 될 만한 기업들로부터는 후원금을 받지 않았다”고 해명하는 한편 “로비스트나 어떠한 정치활동위원회(PAC)로부터도 기부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백악관의 태도가 돌변한 데 대해 미 언론들은 전반적으로 경제 사정이 나빠진 데다 이미 민주당 전당대회나 대선 등에 거액을 기부한 개인들의 기부액이 줄어들자 하는 수 없이 기업들에게 손을 벌리게 된 것 아니냐고 추측하고 있다. 이와 관련, <데일리비스트>는 2009년 취임식에 개인 기부금 상한액인 5만 달러(약 5300만 원)를 기부했던 451명 가운데 단 열세 명만이 이번 취임식에도 동일한 액수를 기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다른 한편으로는 2009년 취임식 역시 사실 기업들의 도움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당시 기부금을 낸 개인 후원자들 가운데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빌과 멜린다 게이츠 부부, 억만장자 금융가인 조지 소로스 회장, 래리 페이지 구글 CEO, 제프리 카젠버그 드림웍스 CEO 등 기업가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큰손인 이들은 모두 개인 후원금 상한액인 5만 달러씩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밖에도 할리 베리, 톰 행크스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도 당시 오바마에게 거금을 쾌척한 바 있다.
오바마를 지지했던 할리우드 유명인사들 가운데에는 오프라 윈프리를 빼놓을 수 없다. 2008년 대선 운동 당시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오바마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윈프리는 오바마 당선을 위해 수백만 달러를 모금했으며, 전국 유세장을 따라 다니면서 ‘오바마가 답이다’라고 외치면서 투표를 독려했다. 이런 까닭에 한 여론조사 업체는 오바마가 윈프리 덕에 100만 표는 얻었을 것이라고 추산하기도 했다.
윈프리는 단순히 선거 지원만 한 것이 아니었다. 오바마 부부와 개인적인 친분도 두터웠던 윈프리는 공개석상에서 “오바마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으며, 오바마 역시 “우리 부부는 윈프리를 사랑한다. 나 개인적으로도 이 여성을 정말 좋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번 취임식에서 윈프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트위터로 ‘축하한다’는 메시지 하나 보내지 않았다. 취임식 당일 멀리 해외에 나가 있었던 윈프리는 애국가를 부른 비욘세에 대해 트위터를 통해 “정말 아름답다” “완벽하게 노래를 불렀다”는 등 칭찬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바마나 취임식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았다.
▲ 취임 무도회에서 오바마 부부가 다정하게 춤추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이에 오바마 부부와 윈프리 사이가 소원해진 것 아니냐는 추측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둘 사이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몇 년 전부터였다. 무엇보다도 윈프리가 재선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 수상했다. 비록 지난 3월에 열린 대선 기금 모금 행사에는 참석했지만 2008년과 달리 오바마 공개 지지 선언은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윈프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굳이 공개 지지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미 나는 오바마를 100%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CBS 방송의 <디스모닝>에서는 왜 대선 캠페인에 참여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개인적으로 복잡한 방송사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나는 대통령을 100%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어딘가 부족하긴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0월 대선 직전 워싱턴으로 날아가 오바마 부부와 인터뷰를 했던 윈프리는 그 자리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며칠 후에는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미트 롬니 부부와도 비슷한 분위기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애매한 태도를 보여 오바마 지지자들을 실망시켰다.
이에 대해 비평가들은 오바마에 대한 윈프리의 미적지근한 태도가 자신이 소유한 케이블 방송국의 시청률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이와 관련, 베스트셀러 <아마추어:백악관의 버락 오바마>의 저자인 에드워드 클라인은 “(2008년에) 윈프리가 오바마와 옆에 서서 선거운동을 하면 할수록 그녀 개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호감도는 74%에서 66%로 떨어졌다. 반면, 비호감도는 17%에서 26%로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클라인은 “윈프리는 오바마 부부가 대선에서 승리한 후 자신을 무시하기 시작했다고 느꼈다”고 주장했다. 전화를 해도 회신이 없었으며, 결국에는 대통령 홍보실까지 윈프리를 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클라인의 주장은 그다지 신빙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윈프리 역시 이런 주장에 대해 억측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오바마 부부와의 사이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고 말하고 있다. 누구 말이 사실일지는 앞으로 4년을 더 지켜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해리슨 100분 연설…한 달 뒤 폐렴사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3년 취임식에서 기가 막힌(?) 이벤트를 하나 경험했다. 카우보이 한 명이 말을 타고 달리면서 그를 향해 밧줄을 던지는 쇼를 펼친 것이다. 이는 카우보이로 상징되는 텍사스주 출신인 아이젠하워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행사였다.
▲존 F. 케네디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은 하마터면 불난리로 기억될 뻔했다. 리처드 쿠싱 대주교가 축사를 읽고 있을 때 갑자기 연단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던 것이다. 다행히 대주교의 예복에는 불이 붙지 않았으며, 케네디는 미소를 띤 채 당황하지 않고 예의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사람들이 미국 대통령과 관련되어 가장 흔하게 착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바로 ‘최연소 대통령’이다. 많은 사람들이 존 F. 케네디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식 당시 42세였으며, 케네디 대통령은 43세 5개월이었다.
▲ 레이건 전 대통령 |
▲로널드 레이건
미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고령이었으며, 취임식 당시 나이는 70세 생일을 불과 17일 앞둔 69세였다.
▲빌 클린턴
클린턴 대통령의 2기 취임식은 최초로 인터넷 생중계됐다.
▲제임스 메디슨
4대 대통령인 메디슨 대통령의 취임식 티켓은 총 400장이었으며, 장당 4달러였다. 2013년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 티켓 가격은 장당 1만 2500달러까지 치솟았다.
▲윌리엄 헨리 해리슨
역대 미 대통령 가운데 가장 긴 취임 연설문을 낭독했다. 100분 동안 모두 8495단어를 사용했으며, 당시 눈보라치는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코트도 입지 않고 모자도 쓰지 않은 채 꿋꿋이 연설을 마쳤다. 이 때문일까. 불행히도 그는 취임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폐렴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조지 워싱턴
가장 짧은 취임 연설을 했으며, 모두 135개의 단어만 사용했다. 또한 유일하게 취임 선서할 때 성경에 입을 맞춘 대통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가 취임 선서문 끝에 애드리브로 즉흥적으로 덧붙인 ‘신이여, 저를 도우소서(So help me God)’는 그후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대통령들이 따라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존 퀸시 애덤스
취임 선서를 할 때 성경 대신 헌법에 손을 얹은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또한 그는 처음으로 무릎까지 내려오는 바지 대신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바지를 입고 취임식을 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