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 삼성은 정대세 영입 과정서 기대 이하의 이적료를 제시해 한차례 퇴짜를 맞기도 했다. 임준선 기자 |
모든 게 뜻대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 이것저것 고민이 많다. 매물은 많지만 딱히 영입할 만한 ‘대어급’들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2012시즌을 앞뒀을 때만 해도 FA로 풀린 김정우가 15억 원(추정치)에 달하는 거액의 몸값을 받고 원소속팀 성남 일화에서 전북 현대로 이적하는 등 빅 뉴스가 쏟아졌다.
올해는 그때와 또 다르다. 뭔가 정체된 느낌이다. 수원 삼성에 입단한 북한 대표팀 스트라이커 정대세와 전남 드래곤즈에서 마지막 축구 인생을 불태우게 된 베테랑 골키퍼 김병지 정도. 그리고 사령탑을 신태용 전 감독에서 안익수 감독으로 교체한 성남만이 초반부터 전통의 ‘큰손’답게 쌈짓돈을 풀었을 뿐이다. FC서울에서 미드필더 김태환을 데려오더니 2013시즌을 프로 2부 리그에서 보내게 된 광주FC로부터 공격수 김동섭과 측면 수비수 김수범을 동시에 영입했다. 전북 현대도 인천 유나이티드 수비수 정인환 등을 영입하면서 과거의 전통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이적료 잭팟을 터뜨린 김정우에 감히 대적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한 명당 10억 원을 호가하는 선수들이 없다. 완벽하게 성장했다기보다 아직까지는 준척급으로 평가받는 이들에게 선뜻 10억~20억 원씩 풀 수 없는 까닭이다.
작년 12월 말 한국프로축구연맹(김정남 총재 직무대행)이 FA 자격 취득 선수 106명을 공개했는데, 여기서도 딱히 ‘최고급’ 우량주를 찾기 어려웠다. 포항 스틸러스 프랜차이즈 미드필더 황진성이나 골키퍼 신화용 정도만 눈에 띄었다. 물론 포항은 프로연맹 규정에 따라 자격 취득 사실만 공시했을 뿐, 결코 이적시장 매물로 내놓을 계획은 없다. 둘에 대해선 이미 절대 이적불가 방침이 내려졌고, 선수들 역시 자신을 뽑아주고 성장시켜준 포항을 떠날 생각이 크게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밖에는 고만고만한 매물들이다.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이적료를 원소속팀에 주고 데려와야 하는 계약기간이 남은 선수들이나 방출 선수들이다. 물론 거액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뭐니뭐니해도 머니(Money) 게임의 법칙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려온 도·시민구단들을 제외하고, 모기업을 등에 업은 기업형 구단들마저 극심한 경기침체로 인해 예전처럼 풍성하게 돈을 쓰기 어렵다. 대표적인 예가 굴지의 철강그룹 포스코가 지원하는 포항과 전남이다. 포스코는 일찌감치 ‘비상경영체제’ 선언을 했다. 눈치를 보며 모기업에 선뜻 손을 내밀기 어려운 형편이다. 수원 역시 큰 폭으로 축소된 지원금에 허덕인다. 우여곡절 끝에 영입을 확정짓긴 했지만 독일 분데스리가 2부 쾰른FC에서 뛰던 북한 대표팀 공격수 정대세를 영입하기 위해 고작(?) 30만 달러(약 3억 2000만 원)의 이적료를 제시했다가 퇴짜를 맞았던 사례만 봐도 수원이 처한 달라진 현실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시민구단 형님 격인 대전 시티즌이 40만 유로(약 5억 6000만 원)를 제시해 (선수를 제외한) 구단 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해외 시장은 어떨까. K리그와는 어떻게 다를까. 역시 한숨부터 나온다. 침체된 경제 사정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기 한파가 몰아쳤다. 유럽도 상황이 좋을 리 없다. 엄청난 갑부가 구단 회장에 있지 않는 한, 유럽 클럽들도 2000년대 초중반처럼 풍성하게 돈을 쓰지 않는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선덜랜드에서 일찌감치 ‘전력 외 선수’로 간주된 한국 공격수 지동원이 눈을 돌렸던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가 무상임대를 제안한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현 시점에서 여전히 별다른 망설임 없이 수십억 원씩 내밀 수 있는 건 여전히 중동 축구뿐이다. 최근에는 울산 현대 ‘캡틴’ 출신 곽태휘가 사우디아라비아 알 샤밥 행을 확정지었다. 유럽 빅 클럽에서 맹위를 떨친 왕년의 스타들이 대거 몰렸듯이 일단 태극마크를 달았거나 단 경험이 있는, 그리고 국내에서 가장 많이 받아 20억 원 선에서 기본 이적료가 책정된 선수들은 중동에서 무려 30억 원 이상 받아낼 수 있다고 한다. 곽태휘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기현상은 척박한 중동 땅에서 ‘오일(oil)’이 고갈되지 않는 한, 또 중동의 돈 줄을 쥐고 있는 왕족들이 축구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한,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그나마 남은 준척도 중국·일본이 ‘싹쓸이’
결국 아시아 쿼터를 제한 3명이 대세를 이루는데, 과거부터 대개 그래왔듯이 K리그에서 활약 중인 용병들의 출신 국가들은 브라질 등 남미와 동유럽에 몰려 있다.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은 왠지 믿기 어렵고, 서유럽 선수들은 ‘비싸다’는 선입견이 있는 탓이다.
그렇다고 용병들이 꼭 대어급인 건 아니다. 세계 축구를 호령하는 특A급들은 오래전에 유럽으로 진출했고, 상당수 기타 A급들은 유럽 하위리그 혹은 프로축구 인기가 남다른 멕시코, 신흥 강호로 성장 중인 미국 등지로 떠났다. 그리고 목돈을 쥐길 희망하는 (주로 노장들에 한해) 일부는 중동에서 뛴다. 아시아에서는 B급이나 그 이하를 노려야 하는데, 여기서도 괜찮은 선수들은 역시 ‘큰손’으로 조금씩 명성을 떨치는 중국 슈퍼리그나 일본 J리그로 향한다. 그래서 K리그는 다른 국가들의 싹쓸이로 인해 거의 남지 않는 매물 가운데 한 명씩 접촉해야 하는 형편이다. 아니면 일본에서 딱히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선수들을 임대 형식으로 데려오는 경우가 있다. 이는 처음부터 FC서울 골게터 데얀과 몰리나를 뽑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속는 경우도 잦다. 지난 시즌 ‘먹튀’의 대명사가 된 요반치치(전 성남) 등이 대표적인 예. 해당 선수가 도움 받는 에이전트들로부터 국내 구단이 제공받는 DVD 경기영상 등을 보면 ‘호날두’급 실력을 자랑하는데, 정작 데려오니 어디서도 쓸모없는 선수들일 때도 많다. 시즌 도중 용병을 교체하는 건 곧 전반기 실패를 의미하는 셈이라 이런저런 풍문들을 많이 낳게 된다. 물론 조심하지 않을 경우 특정 에이전트들과 구단 감독, 선수단 관리 담당 프런트 등 밀월 관계가 종종 외부로 표출되기도 하니 용병 선발 작업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