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종면 고암마을과 위태마을에 거주하는 70~80대 어르신들에게 병원 문턱은 높다. 면 소재지에 가정의학과 의원이 단 한 곳뿐이라, 허리·무릎 통증이나 당뇨, 고혈압 같은 만성 질환이 심해지면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인근 진주시까지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날은 달랐다. 법성선원 신도들이 직접 차량을 운행해 어르신들을 모셔왔고, 법당 앞에는 임시 진료소가 차려졌다. 진료를 기다리던 김 모(82) 할머니는 “다리도 아프고 눈도 침침한데 의사 선생님들이 이 깊은 산골까지 직접 찾아와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의료봉사는 부산 온병원그룹과 국제의료봉사단체 그린닥터스가 힘을 모았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봉사단을 이끄는 주역들의 특별한 이력이다.
안과 진료를 맡은 정근 그린닥터스 이사장은 기독교 장로이며, 내·외과 진료를 담당한 송필오 마취통증의학과 과장은 현직 목사다. 부활절을 불과 보름 앞둔 시점, 기독교 신자인 의사들이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인 법성선원의 정민 스님과 손을 맞잡은 것이다.
법성선원 요사채에 마련된 진료실에서 정근 이사장은 세심하게 어르신들의 눈 상태를 살폈고, 송필오 과장(울주병원 부원장)은 어르신들의 거친 손을 맞잡으며 통증 부위를 체크했다. 흰 가운 위로 비치는 십자가의 사랑과 법당의 자비가 어우러진 풍경은 종교를 초월한 인류애를 그대로 보여줬다.
송필오 부원장은 “종교는 다르지만 이웃을 사랑하고 아픈 이를 보듬는 마음은 하나다. 스님과 장로, 목사가 한자리에 모여 의술을 펼치는 이 자리가 바로 진정한 화합의 장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린닥터스 봉사단은 법당을 찾지 못한 이들도 잊지 않았다. 마을 입구쪽, 거동이 불편해 집 밖을 나서지 못하는 90대 중반의 어르신 댁을 직접 방문하는 ‘왕진 서비스’를 진행했다. 좁은 방 안에서 의사들은 청진기를 대고 조심스레 맥을 짚으며 약을 처방했다.
법성선원 정민 승려는 “멀리 부산에서 온 의사 선생님들의 정성이 지리산 골짜기 어르신들에게 큰 위로가 됐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지리산 자락 법성선원에서 펼쳐진 이번 의료봉사는 단순한 진료를 넘어, 종교 간의 벽을 허물고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봄의 선물’이 됐다.
이혜림 부산/경남 기자 ilyo33@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