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용직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오던 A 씨 가정에 더 큰 위기가 찾아온 건 아내가 2025년 말 구치소에 수감되면서다. A 씨가 아이들 육아와 생계를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다. 첫째 아이가 학교에 등교하지 않으면서 학교의 신고로 경찰과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현장 확인에 나선 바 있다. 지자체 역시 위기 가구로 분류해 복지 지원 안내 등을 위해 여러 차례 접촉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럼에도 개입은 단편적 조치에 그쳤고 결국 참사로 이어졌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신청주의’ 완화를 중심으로 제도 개선에 나섰다. 지자체가 위기 가구를 발견할 경우 당사자 동의 없이도 급여를 직권으로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A 씨가 지자체의 권유에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신청하지 않아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사건 발생 후 울주군청을 방문해 “지자체 공무원이 위기를 파악하면 기초생활보장 직권 신청이 가능하도록 조치하고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도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가정은 네 자녀를 혼자 돌보게 된 가장이 경제 활동과 양육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부담을 겪고 있었고, 정서적·경제적 위기가 복합적으로 누적된 상태였다. 이를 통합적으로 지원하고 개입할 수 있는 체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에서는 금전적 지원만으로 위기를 해소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경북행복재단 대표이사)는 24일 ‘일요신문i’와 통화에서 “지자체는 기초생활 보장 여부, 교육청은 아동의 학교 출석 여부 등 각자 맡은 영역만 판단하는 구조”라며 “동일한 가정을 두고 기관별로 자기 일만 하는 구조에서는 위기 가구를 발견하고도 개입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사건과 같은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은 단일 원인이 아닌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 조사에 따르면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의 43.1%는 경제적 위기, 돌봄 부담, 정신건강 문제 등 복합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대응 체계는 여전히 부처별, 기관별 각각의 기준에 따라 작동하면서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기관이나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아동에 대한 국가 돌봄 체계가 사실상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울산 4남매의 막내는 생후 5개월의 영아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어떤 기관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였다. 현행 제도는 아동수당 지급이나 영유아 건강검진 등 최소한의 관리에 그치고 있어 이 시기 영아의 돌봄 위기나 보호 공백을 상시적으로 점검하는 기능이 사실상 부재하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일요신문i’에 “유치원·어린이집에서 위기 가구가 발견돼야 하는데 현행 유아교육제도 내에서는 이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더 심각한 것은 기관을 이용하지 않는 아동에 대해서는 정부의 관리가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행 체제에서는 아동이 가정에 종속된 존재로 취급되면서 아동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분절된 복지 체계를 연계해 위기 가구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자체를 중심으로 가정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관계 기관과 조율하는 기능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영유아 단계부터 가정을 직접 방문해 돌봄 환경과 위험 요인을 점검하는 방식의 개입 체계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세이브더칠드런은 3월 24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아동의 생명과 안전은 개별 가정의 선택에 맡겨둘 수 없는 공적 책임의 영역”이라며 “가정의 위기가 아동 살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복합 위험 요인을 가진 가정을 조기에 발견하고 지원하는 보편적 가정방문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창현 연구위원은 “핀란드에서는 임신 단계부터 아동이 만 6세가 될 때까지 간호사가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가족 전체의 정신건강과 돌봄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한다”며 “이 같은 체계가 있다면 이번 울산 가정 사례 같은 경제적 어려움과 돌봄 부담, 가족 상황 변화 등을 조기에 파악해 개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