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렇게 기막힌 우연이 또 있을까. 지난 3월 23일(현지시각) 월요일 오전, 원유 선물 시장에서는 기괴하다 못해 공포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79)이 트루스소셜 계정에 “미국과 이란 양국이 매우 유익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는 글을 올리기 불과 15분 전, 마치 미래를 알고 있었다는 듯 매도 폭탄이 쏟아진 것이다. 절묘한 타이밍에 거래가 이뤄지자 월스트리트와 워싱턴 정가에서는 수군거림이 시작됐다. ‘신이 내려준 직감’에 따른 행운인지, 아니면 ‘내부자 거래’에 따른 악마의 베팅인지 의심스럽다는 이유에서였다. 세계 금융계와 정계를 발칵 뒤집어놓고 있는 이 미스터리한 거래의 정체는 과연 뭘까. 트럼프는 정말 전쟁을 통해 측근들과 가족들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고 있는 걸까.

그런데 월요일 오전 6시 49분(뉴욕시간 기준)이 되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아무런 경제지표 발표도, 이렇다 할 신호도 없던 고요한 아침이었건만 갑자기 원유 선물 시장에 약 5억 8000만 달러(약 870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더욱 놀라운 건 속도였다. 불과 1~2분 사이에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계약 6200건이 체결됐다. 이는 평소 거래량의 여덟 배가 넘는 엄청난 규모였다. 이에 시장 전문가들은 “이벤트 리스크가 없는 월요일 아침에 이런 대규모 거래가 발생한 건 25년 시장 역사상 처음 있는 비정상적 상황”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정확히 15분 후, 트럼프의 트루스소셜에 게시물이 하나 올라왔다. “지난 이틀간 이란과 매우 훌륭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 “공격을 5일간 연기하겠다”라는 뜻밖의 내용이었다. 트럼프의 게시물이 올라오자마자 시장은 말 그대로 발작을 일으켰다. 유가는 단 몇 분 만에 15% 이상 급락하며 배럴당 100달러선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반대로 S&P500 지수는 수직 상승했다.

이런 행운은 실제 가능하긴 한 걸까. 전문가들은 이들이 단순히 ‘운 좋은 도박사’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SPI자산운용의 스티븐 인스는 “트레이더는 예언가가 아니다. 시장을 움직이는 헤드라인이 나오기 몇 분 전에 포지션이 바뀐다는 건 분명 누군가가 정보에 따라 움직였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런 ‘수상한 베팅’이 비단 제도권 금융 시장에서만 벌어지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최근 급부상한 암호화폐(가상화폐) 기반 예측 시장 플랫폼인 ‘폴리마켓’과 ‘칼시’에서는 더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요컨대 보란 듯이 전쟁, 암살, 정권 교체 등에 판돈을 건 도박이 벌어지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지난 2월 말에 개설된 ‘나씽에버프리킹해픈스(NOTHINGEVERFRICKINGHAPPENS)’라는 아이디는 ‘미국이 이란을 공격한다’는 항목에 베팅해 8만 5000달러(약 1억 3000만 원)를 벌어들였다.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었다. 트럼프의 ‘생산적인 대화’라는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오기 직전, 이 계정은 이미 이란과의 휴전 가능성에 거액의 베팅을 시작하고 있었다. 정보 공개 전 휴전 쪽에 돈을 건 계정은 이 계정을 포함해 10개에 달했으며, 이들이 챙긴 잠재적 수익은 100만 달러(약 15억 원)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계정들은 베팅 직전 급조된 암호화폐 지갑을 통해 자금을 수혈받은 것으로도 드러났다.
이 같은 ‘족집게 베팅’의 위력은 지난 1월 베네수엘라에서도 발휘됐다. 니콜라스 마두로가 생포되기 불과 몇 시간 전, 한 익명의 사용자는 ‘폴리마켓’에서 ‘마두로 퇴진’에 3만 2000달러(약 4800만 원)를 베팅했고, 작전 성공 소식과 함께 단숨에 약 43만 달러(약 6억 5000만 원)를 챙겼다.

더욱 충격적인 점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 FBI의 압수수색까지 받으며 미국 내 영업이 금지됐던 예측 시장 플랫폼 CEO들이 트럼프 일가와 깊은 커넥션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폴리마켓’의 셰인 코플란과 ‘칼시’의 타레크 만수르는 각각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를 고문으로 영입했고, 트럼프 주니어는 여기에 투자까지 단행했다. 그리고 지난 2024년 대선 당일 밤, 트럼프 주니어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가짜 뉴스를 보도하는 언론보다 몇 시간 앞서 승리를 예측하기 위해 ‘칼시’를 주시했다”며 대놓고 이들을 홍보하기도 했다.
트럼프 일가의 든든한 후광을 입은 이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워싱턴의 새로운 실세로 급부상했다. 20대의 나이에 억만장자 반열에 올라선 것 역시 백악관의 비호 아래 ‘합법적인 도박장’을 운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탐욕에 성역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폴리마켓’은 한때 “올해 안에 핵무기가 사용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할 것인가” 같은 황당한 내기까지 걸면서 판돈을 긁어모았다.

이 밖에 또 한 가지 미심쩍은 부분은 트럼프가 주장한 ‘생산적인 대화’ 자체의 진위 여부다. 트럼프의 발언이 나간 직후, 이란의 모하마드 바게르 칼리바프 국회의장은 즉각 “미국과 어떠한 협상도 진행된 바 없다”고 말하면서 “트럼프가 금융 및 석유 시장을 조작하기 위해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실제 트럼프의 발언 이후 잠시 100달러 아래로 떨어졌던 유가는 이란 측의 부인 소식이 들리자마자 다시 반등했다. 결국 트럼프의 말 한마디가 엄청난 변동성을 초래했고, 그 변동성이 극대화된 딱 15분 전 누군가만 막대한 수익을 챙긴 셈이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미 의회에서도 뒤늦게 규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선출직 공무원과 보좌관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예측 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이른바 ‘HR 7004’ 법안이 논의 중이다. 하지만 트럼프 일가의 비호 아래 있는 베팅 업체들의 로비 때문에 과연 이 법안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경제지표보단 트위터 알림이 중요” 반복되는 ‘트럼프 트레이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단순한 정치적 발언을 넘어설 때가 많다. 그의 말 한 마디는 정치적 메시지를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시장 이벤트’로 작동해 왔다. 그리고 그 패턴은 놀라울 정도로 반복되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트럼프 1기인 2018~2019년 미중 무역전쟁 때다. 당시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관세 인상 방침을 밝히거나 협상에 대한 강경 발언을 쏟아냈고, 그때마다 글로벌 증시는 즉각 반응하면서 출렁였다. 이와 관련, CNBC는 “트럼프가 ‘협상을 서두를 필요 없다’고 트윗을 올리자 주식 선물이 급락하는 등 시장이 크게 흔들렸다”고 지적했다. 이 시기 시장 참여자들은 이미 “트럼프의 트윗이 곧 리스크 변수”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또 한 가지 사례는 2019년 5월 5일에 발생했다. 당시 트럼프는 트위터에 “중국과의 협상 진행이 너무 느리다”며 2000억 달러(약 300조 원) 규모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10%에서 25%로 올리겠다고 기습 발표했다. 이 한 줄의 트윗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다음 날 아시아 증시가 급락했고, 미국 S&P500 선물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 트럼프는 다시 “협상은 여전히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 시장은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폭등했다. CNBC는 이를 두고 “트럼프의 트윗이 시장 방향을 바꾸는 직접적인 촉매”라고 분석했다. 즉, 정책이 아니라 ‘발언 타이밍’ 자체가 시장을 흔든다는 의미였다.
비슷한 일은 2019년 8월에도 일어났다. 트럼프는 또 다시 트위터를 통해 추가 관세를 언급하며 중국 기업들을 압박했다. 이른바 ‘트윗 폭풍’이 이어지자 다우지수는 600포인트 이상 급락하면서 흔들렸다. 하지만 장이 마감되기도 전에 상황은 또 한 번 바뀌었다. 같은 날 백악관 회의에서 “중국과의 대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메시지가 나오자 시장은 낙폭을 줄였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서도 동일한 패턴은 반복됐다. 지난해 4월, 트럼프는 자신의 SNS에 “지금은 매수하기 좋은 때!!!(THIS IS A GREAT TIME TO BUY!!!)”라는 메시지를 남기면서 ‘매수 신호’를 던졌다. 당시 시장은 글로벌 관세 전쟁 여파로 급락세를 보이며 극도로 불안한 상태였다.
그리고 실제 몇 시간 뒤, 상황은 급반전됐다. 트럼프가 돌연 ‘90일간 관세 유예’ 카드를 꺼내들면서 온화한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에 시장은 즉각 반등했다. S&P500은 단 몇 분 만에 급등했고, 결과적으로 이날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강력한 상승장으로 남게 됐다. 불과 몇 시간 사이에 ‘패닉셀’과 ‘폭등’이 교차하는 극단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이를 지켜본 민주당은 즉각 일침을 가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을 필두로 한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식 서한을 보내 조사 착수를 요구했다. “이 모든 과정이 사전에 공유된 정보였다면 누군가는 막대한 부를 챙겼을 것”이라는 의심에서였다. 워런은 “관세 발표로 시장이 붕괴된 뒤 다시 회복되는 과정에서 행정부 내부 인사나 지인들이 이익을 챙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했다. 특히 트럼프 가족이나 측근이 이를 미리 알고 주식 거래를 했다면 이는 명백한 내부자 거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당시 월가에서는 “경제지표보다 트럼프의 트위터 알림이 더 중요하다”는 말까지 돌았다. 대통령이 강경 발언으로 시장을 흔든 뒤, 돌연 정책을 완화해 반등을 유도하는 방식이 반복될 경우 이 패턴이 ‘시장 시그널’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였다.
‘트럼프 트레이드’ 패턴의 핵심은 단순하다. 첫째, 예고 없는 강경 발언으로 시장을 급락시킨다. 둘째, 이후 완화된 메시지로 시장을 반등시킨다. 셋째, 이 과정이 짧은 시간 안에 반복된다. 앞으로도 이런 패턴이 지속된다면 시장은 정책이 아니라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의해 출렁이는 날이 많아질 듯하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