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와중에 전국 곳곳에서 공천 파동까지 불거지며 당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그러자 당 일각에선 징계로 내쳐진 한동훈 전 대표 이름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한 전 대표를 구원투수로 등판시켜 선거를 맡기자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장동혁 대표 측은 이를 일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2017년 5월 대선에서 민주당에 정권을 내준 뒤 이듬해인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17개 시·도지사 중 대구와 경북에서만 이겼다. 함께 치러진 12곳 국회의원 재보선에서는 경북 김천만 지켰다. 서울 25개 구청장 중에선 서초구 단 1곳에서만 승리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현 상황이 2018년보다 더 좋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TK(대구·경북)에서조차 민주당 후보에 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3월 31일 통화에서 “17개 시도지사 중 해볼 만한 곳이 단 한 곳도 없다”고 한탄했다.
대구시장 경선은 국민의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으로 꼽힌다. 앞서 국민의힘은 주호영 의원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컷오프했다. 주 의원과 이 전 위원장은 민주당 예비후보들과의 가상대결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것으로 평가받던 후보들이었기에 의외란 반응이 많았다. 주 의원은 즉시 가처분 신청을 했고, 무소속 출마까지 열어뒀다. 이 과정에서 ‘이정현 공관위’가 특정 인물을 낙점했다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공천 잡음은 선거 판세로 나타났다. TBC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3월 28일과 29일 무선전화 자동응답 ARS 방식으로 실시해 발표한 ‘차기 대구시장 인물 적합도’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5%포인트·p)에서 민주당 김부겸 전 총리는 49.5%로 국민의힘 후보들을 압도했다. 2위인 추경호 의원(15.9%)보다 33.6%p 차로 앞섰다. 김 전 총리는 국민의힘 후보들과의 가상 양자 대결에서도 오차범위 밖 우세를 보였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오세훈 시장의 열세는 대구시장 못지않게 뼈아픈 지점이다. 동아일보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3월 29일과 30일 조사해 4월 1일 발표(무선 전화면접,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5%p)한 서울시장 가상 양자대결에서 오 시장은 민주당의 정원오 전 성동구청장과 박주민 의원에게 오차범위 밖 격차로 밀렸다. 1월 1일 같은 조사에선 오차범위 내 접전이었지만 3개월 만에 두 자릿수로 벌어졌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서울과 대구 정도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나머지 지역은 민주당 후보들과의 격차가 워낙 커, 남은 기간을 감안하면 따라잡기 힘들다는 우려가 당내에 퍼져 있다. 이런 결과의 1차적 원인으로는 ‘이정현 공관위’ 공천관리 실패가 거론된다. 오락가락 기준으로 컷오프를 밀어붙여 분란을 일으켰고, 특정 계파와 인물을 염두에 두고 경선을 진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공정성에 시비가 일었다.
하지만 당내에선 ‘장동혁 대표’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앞서의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애초에 이정현을 위원장으로 임명할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이정현 전 위원장 혼자 칼을 휘둘렀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장동혁 지도부 위임을 받았을 뿐”이라면서 “그나마 마지막으로 기댔던 쇄신 공천이 물 건너가면서 지방선거는 끝난 것이나 다름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 또 다른 초선의원은 “차라리 이번 선거에서 크게 패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래야 장 대표가 물러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지방선거가 끝난 후 서둘러 당을 재건해 다음 총선을 대비하는 게 낫다”고 했다. 충청권에서 출마를 준비하는 한 예비후보자는 “장 대표가 유세 일정을 짜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 우리 지역은 좀 빼달라는 요청을 간접적으로 했다”고 귀띔했다.
국민의힘 광역의원 비례 청년 오디션은 장 대표를 향한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장동혁 대표는 오디션을 두고 “이번 지방선거, 국민의힘은 ‘청년의 힘’으로 승리하겠다”고 했지만 특정 심사위원과 오디션 참가자들이 ‘윤 어게인’ 논란에 휩싸였고, 저조한 투표율로 흥행은 실패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장 대표가 했던 ‘절윤’ 선언만 무색해졌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쏟아졌다.
#고개 든 한동훈 카드
공천 정국을 거치며 장 대표가 고립무원에 빠졌다는 분석이 분출하자 당 안팎에선 ‘한동훈 카드’가 고개를 들었다. 장 대표가 직권으로 한 전 대표 징계를 취소한 뒤, 선대위원장으로 발탁해 전권을 줘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실제 3월 중순경부터 국민의힘 중진들, 장 대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보수 유튜버 A 씨, 복수의 당 원로 인사들이 이런 제안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A 씨는 3월 30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동훈 전 대표가 온다고 선거 판세가 극적으로 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한 전 대표가 외연 확장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집안싸움 확전은 막을 것이라고 봤다. 그래야 영남이라도 지킬 수 있다. 큰 선거를 앞두고 우리끼리 싸워서야 되겠느냐”면서 “장 대표에겐 한 전 대표를 끌어안고 가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한 원로 인사 역시 비슷한 내용을 들려줬다. 그는 “한동훈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보수진영에서 선거를 이끌 사람이 누가 있느냐. 한동훈에게 대구 보궐을 주고, 전국 유세를 다니게 하면 그래도 참패는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 대표에게 말했다. 징계 부분에 대한 최소한의 유감 표명으로 한 전 대표에게 길을 터주는 방법을 고민해보라고도 했다”고 했다.

지방선거 참패 시 정치적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장 대표로선 ‘절윤’과 마찬가지로 당 안팎의 한 전 대표 관련 요구를 들어줄 법도 하지만 그 어떤 양보와 타협도 없다는 스탠스를 보인다. 재보궐 선거 지역 무소속 출마를 고민하는 한 전 대표 측에선 당에서 먼저 액션을 취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기류가 감지된다. 보수 진영에서 오르내리는 한 전 대표 활용법의 키를 장 대표가 쥐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장 대표 측은 한 전 대표와 한 배를 탈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엔 한 전 대표가 돌아올 경우 장 대표 향후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선거에 져도, 한동훈이 돌아와도 장동혁은 퇴장해야 한다’는 전망과도 맞닿아 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징계를 밀어붙일 때도 미래의 경쟁자를 쳐내기 위한 의도가 담겨있을 것이란 얘기가 주를 이뤘다.
동시에 국민의힘 내부에선 장동혁-한동훈 간 뿌리 깊은 앙금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온다. 장 대표 주변 인사들이 사석에서 한 전 대표를 향해 막말과 욕설을 쏟아내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다는 게 정치라지만 그래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장 대표 측근들이 말하는 걸 보면 한동훈이라는 사람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다” 전했다.
장예찬 전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 과거 한 전 대표를 향해 했던 발언들을 따라가 보면 장 대표 측의 이런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장 전 부원장은 한 전 대표 징계 후 “왕자병에 가까운 자의식 과잉” “정치 생명이 끝난 것 아닌가 싶다. 대한민국에서 정치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한동훈 토크콘서트를 두고는 “대장동 저수지에 돈을 벌게 해주는 것과 같은 구조”라고 직격했다. 한 전 대표의 보궐선거 출마에 대해선 “대구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다. 당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폄하했다.
사실 장 대표는 한때 ‘한동훈 사람’으로 불렸던 정치인이다. 2023년 12월 한 전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등판하며 정치권에 발들 들였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인물이 당시 초선이었던 장 대표였다. 한 전 대표는 당의 살림과 공천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에 장 대표를 파격 발탁했다. 사무총장은 통상 3선 이상이 맡는다. 장 대표는 사무총장 시절 한 전 대표와 함께 2024년 총선 공천 작업을 주도했다.
둘의 진로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기점으로 엇갈렸다. 한 전 대표는 ‘찬탄’, 장 대표는 ‘반탄’을 택했다. 한 전 대표가 배신자 프레임에 허덕이는 사이, 장 대표는 강경 지지층을 등에 업고 대표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다 1월 29일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을 의결하면서 둘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당 지도부는 한 전 대표뿐 아니라 친한계를 향해서도 징계의 칼날을 휘둘렀다.
앞서의 국민의힘 원로 인사는 “장 대표 측은 한 전 대표에 대해 원한에 가까운 심정을 갖고 있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한 전 대표가 싫은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명을 밀어붙인 것”이라면서 “왜 이렇게까지 멀어졌냐고 물어보면 ‘한동훈 대표 시절 장 대표와 우리가 부당한 대우와, 수모를 받았다’ 정도로만 답한다. 어떻게 보면 탄핵 이후의 소모적인 장-한 감정싸움이 당을 이렇게까지 수렁에 빠트린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