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부터 드라마 작가 생활을 시작한 임성한 작가는 1998~1999년 방영한 MBC 드라마 '보고 또 보고'로 대성공을 거둔 뒤 '인어아가씨'(2002~2003), '왕꽃선녀님'(2004~2005), '하늘이시여'(2005~2006), '아현동 마님'(2007~2008) 등을 통해 '임성한 월드'라는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왔다. 현실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일상적이지 않은 희한한 설정들과 전개 방식을 전면에 내세워 궁금해서라도 다음 회 보게 만드는 방식으로 높은 시청률을 유지해왔다.
종편채널 TV 조선으로 무대를 옮긴 이후에도 임성한 작품의 이 공식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2021년~2022년 시즌 3로 마무리된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드라마 불모지였던 TV 조선에서도 여전히 그의 작품이 통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러나 이 직후 선보인 '아씨두리안'부터 낯선 설정과 서사 전개를 두고 호불호가 갈리기 시작하더니, 이번 '닥터신'을 통해 고정 시청자층에도 균열이 생기는 분위기다.
메디컬 스릴러를 표방한 '닥터신'의 핵심 소재는 모녀 간 뇌를 교체하는 '뇌 체인지'다. 불의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딸을 구하기 위해 딸의 몸에 자신의 뇌를 이식한 엄마와 딸을 사랑했던 남자들 사이의 기이한 로맨스를 그린다는 게 '닥터신'의 시놉시스였다.

그 결과 "궁금해서 본다"던 시청자들조차 "이해가 안되니까 (보다가) 탈주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임성한 작품의 기존 시청층으로 꼽히는 40~60대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이탈 흐름이 나타나면서 0~1%대 시청률 구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온라인에서는 전혀 다른 소비 방식이 나타나며 주목받고 있다. 임성한 특유의 느린 어투와 "말 있죠?"로 시작되는 대사가 숏폼 영상을 통해 1020세대 사이에서 개그 밈(온라인 상에서 유행하는 용어 또는 행위)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다. 작품의 이야기나 그 맥락과는 별개로 이 대사들의 비일상적이고 과장된 표현이 젊은 세대들에게 코믹하게 받아들여지면서 클립 단위 소비에 적합한 요소로 작용한 것이 이유로 꼽힌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작품 반응을 넘어 작가 개인의 전략 변화로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임성한 작가는 오랜 기간 유지해온 신비주의를 깨고 유튜브 크리에이터 엄은향의 채널에 전격 출연하기로 했다. 구독자 63만 명을 보유한 엄은향은 '임성한 VS 김은숙 드라마 속 대사 특징', '해리포터를 임성한 작가가 썼다면', '병문안 갔을 때 임성한 작가 특징' 등 임성한 작가 특유의 어투와 대사 등을 이용한 코믹 콘텐츠를 제작하며 관련 밈을 확산시켜 왔다. 그의 방송에 임성한 작가가 출연을 결정했다는 건 기존 시청층이 아닌 새로운 소비층과의 접점을 만들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여기에는 장르적 거리감도 작용한다. 최근 젊은 시청자층은 현실 기반 서사나 판타지더라도 장르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 혹은 빠른 전개와 명확한 캐릭터 구조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OTT를 통해 보다 강한 자극이나 완성도 높은 장르물이 이미 공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임성한식 막장 드라마는 낯설고 과장된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화제성은 따로 놀고 시청률은 따라오지 않는 괴리가 뚜렷한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방송가 관계자는 "이전까지는 스타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채널을 고정하는 시청층이 있었지만 지금은 플랫폼과 콘텐츠 선택지가 늘어나면서 그런 고정 시청 구조가 약해졌다"며 "온라인에서 밈으로 화제가 되는 것과 실제로 한 회씩 시간을 들여 시청하는 건 원래부터 다른 소비 방식인데 지금은 짧은 영상 중심 소비가 늘어나면서 그 간극이 더욱 벌어진 상태"라고 짚었다.
이어 "결국 지금 같이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장에서는 단순히 작가의 후광이나 화제성만으로는 부족하고, 시청자가 따라갈 수 있는 서사 설득력과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바로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며 "임성한식 서사도 그 지점을 넘어서지 않으면 시청률 반등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