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랜덤채팅은 이용자가 별도의 지인 관계 없이 불특정 다수와 무작위로 연결돼 대화를 나누는 온라인 서비스다. 닉네임이나 간단한 프로필만으로 가입이 가능하며, 성별·나이 등을 입력해 상대를 매칭하는 구조다.
하지만 익명성과 허술한 인증 체계로 인해 미성년 대상 범죄의 온상으로 지적돼 왔다. 2025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지원센터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성착취 피해 미성년자 1187명 가운데 81%가 채팅 앱과 SNS를 통해 가해자와 접촉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N번방 사건’ 당시 가해자들은 텔레그램 이전 단계에서 국내 랜덤채팅 앱을 통해 피해 청소년에게 접근해 유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5년 12월 경남 창원의 한 모텔에서 여중생 2명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대 남성 역시 채팅 앱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했다. 그는 2016년과 2019년에도 채팅 앱 등 SNS를 통해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었다.
실제로 이날 취재진이 가입한 10개의 랜덤채팅 앱은 전화번호 인증 절차를 요구했지만 이후 성별과 나이 등 기본 정보는 별다른 검증 없이 임의 입력이 가능했다. 성인인증을 요구하는 앱 역시 부모 명의 휴대전화로 별도 확인 없이 인증이 가능했다.
일부 앱은 만 19세 이상만 선택하도록 제한했지만 나이를 임의로 설정한 뒤 ‘09년생 여성’ 등으로 자기소개를 작성한 뒤 이용이 가능했다. 자기소개란의 금칙어 필터 역시 변형 표현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앱 화면 상단에 ‘청소년 성매수 및 알선·유인·권유·강요 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안내 문구가 표시돼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일부 이용자는 텔레그램 등 외부 메신저 주소를 공유하며 대화를 유도했다.
문제는 대부분 랜덤채팅 앱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0년 시행된 ‘청소년유해매체물 결정 고시’에 따라 △실명 또는 휴대전화 인증 △대화 저장 △신고 기능 등 ‘기술적 안전조치’ 등 세 가지를 갖춘 경우 청소년유해매체물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성평등가족부가 2024년 국내 랜덤채팅 앱 372개를 점검한 결과 355개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이 아닌 것으로 판단됐고, 시정조치가 내려진 앱은 17개에 불과했다.

현재 카카오는 만 19세 미만 이용자 본인 또는 법정대리인의 요청이 있을 경우 오픈채팅과 숏폼 서비스 이용을 한시적으로 제한하는 보호조치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이용자 신고 등을 통해 문제성이 확인된 오픈채팅방이나 프로필에 대해서는 검색 결과 노출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조치는 대부분 신고 이후에 작동하는 사후 대응이다. 단순 대화나 오락을 표방한 채팅방을 개설한 뒤 유입되는 미성년자를 노리는 방식의 접근 여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카카오는 성범죄 관련 신조어 등을 반영한 금칙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채팅방 이름이나 닉네임에 유해 단어 노출을 제한하고 있지만 표현을 우회하거나 특정 키워드를 활용할 경우 성인이 미성년자 대상 채팅방에 접근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플랫폼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은 플랫폼 사업자에게 불법·유해정보 유통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규정 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수준에 머물러있다.
반면 미국은 메신저·SNS 사업자가 아동 성착취나 온라인 유인 정황을 인지할 경우 이를 국립실종·착취아동센터에 신고하지 않으면 민사 제재는 물론 형사 처벌도 가능하다. 국내에서도 올해 3월 디지털 성범죄 정황 인지 시 신고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기존 신고 중심의 사후 대응 체계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유인 단계에서부터 탐지·차단하는 선제 대응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며 “채팅앱 운영업체에 대한 법적 책임과 이를 방치하는 플랫폼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승구 기자 win9@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