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도 AI(인공지능) 도입을 완료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1~2년 사이 국내 주요 기업들이 발표하는 AI 관련 보도자료는 폭발적으로 늘었고, 연간 사업 보고서에는 생성형 AI 활용 사례가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도입’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따져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상당수 기업에서 AI 도입의 의미는 Microsoft 365 Copilot 라이선스를 구매했거나, 임직원 ChatGPT 계정을 개설해 사용을 권장했거나, 특정 업무에 AI 보조 도구를 시범 적용했다는 수준에 그친다.
구독 버튼을 눌렀다는 것과 진정으로 AI를 도입했다는 것이 같은 말처럼 통용되는 세상이 됐다. 이 지점을 가장 날카롭게 파고든 사람이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다. 나델라는 지난 6월 14일 X(옛 트위터)에 짧지만 밀도 있는 글을 올렸다.
“생태계 없는 프론티어는 불안정하다(A frontier without an ecosystem is not stable).”
그가 이 글에서 설명하는 AI의 본질은 과거 어떤 소프트웨어와도 다르다. 엑셀, ERP, CRM처럼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써온 디지털 도구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작업을 빠르게 처리해주는 증폭기였다. 사람이 명령하면 작업을 실행했고, 그 과정에서 도구가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AI는 처음으로 사람과 디지털 시스템 사이에 진정한 쌍방향 학습을 가능하게 했다. 사람이 AI를 쓰면서 피드백을 주고, 그 피드백이 AI를 더 정교하게 다듬고, 정교해진 AI가 다시 사람의 판단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주는 구조다. 나델라는 이것을 ‘인지적 순환(Cognitive loop)’이라고 부르며, 이 순환을 기업 안에서 소유하고 있느냐 없느냐가 AI 시대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단언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AI 전략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경로가 존재한다. 하나는 외부 AI의 능력을 빌려 쓰는 방식이다. 챗봇으로 고객 응대를 자동화하고, 생성형 AI로 보고서 초안을 만들고, 코딩 보조 도구로 개발 속도를 높이는 식이다. 효율은 즉각적으로 오르고, 비용 절감 효과도 수치로 확인된다. 그런데 그 도구를 걷어냈을 때 회사 안에 무엇이 남는가를 물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급자가 서비스를 변경하거나 종료하면, 회사가 그 AI 위에 쌓아온 효율은 그대로 공급자의 플랫폼에 귀속되고 만다. 이것이 단순한 이론적 위험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가 올해 초에 있었다. OpenAI는 기업 고객이 자사의 AI 에이전트 워크플로우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제공해온 ‘AgentKit’ 플랫폼을 오는 11월 종료하겠다고 예고했다. 이 서비스를 기반으로 수개월에 걸쳐 내부 자동화 업무를 구축해온 기업들은 갑작스럽게 이전 비용과 재설계의 부담을 떠안았다.
다른 하나는 AI를 쓰면서 회사 자체가 더 똑똑해지는 방식이다. 직원들의 업무 판단, 고객 대응 패턴, 예외 처리 기준, 실패와 성공의 맥락이 AI 시스템 안에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그 AI가 다시 직원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구조다. 나델라가 말하는 ‘학습 루프(Learning loop)’다. 그는 이것을 “사용할수록 복리처럼 커지는 기업의 새로운 지식재산”이라고 표현한다.

미국 금융기업 모건 스탠리는 약 2만 명의 자문역이 일상 업무에서 자사 AI 시스템을 활용하면서 노련한 자산관리 전문가들의 투자 판단과 포트폴리오 운용 기준이 지속적으로 시스템 안에 쌓이는 구조를 구축했다. 반면 AI 코딩 도구에 공격적으로 투자한 우버는 연간 AI 예산 전체를 단 4개월 만에 소진하고 직원 1인당 월 사용 한도를 설정해야 했다. 나델라가 이 경고를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꺼낸 비유가 1990년대의 세계화다.
“세계화 초기를 생각해보라. 아웃소싱으로 산업 전체의 역량이 텅 비어버린 경우를.”
이 문장은 한국 독자에게 특히 날카롭게 와닿는다. 우리는 그 세계화를 누구보다 생생하게, 때로는 고통스럽게 경험한 나라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많은 기업이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생산과 조달을 해외로 이전했고,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줄고 수익성 지표도 개선됐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특정 지역의 산업 생태계가 무너졌고, 수십 년에 걸쳐 체득한 제조 숙련 기술이 사라졌으며, 그 공백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쉽게 메워지지 않고 있다.
AI가 만들어낼 두 번째 공동화는 더 조용하고, 더 빠르며, 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기업들이 내부의 판단 체계와 오랜 경험에서 나온 전문성을 외부 AI 모델에 계속 넘기면서 활용에만 그친다면, 그 지식은 점차 소수 빅테크의 인프라 안에 녹아들고, 정작 개별 기업과 산업 안에는 의존성만 남게 된다. 나델라가 “소수의 AI 기업이 대부분의 가치를 가져가고 개별 산업의 전문성은 상품화된다”고 경고하는 배경이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도 자체 클라우드와 AI 생태계를 가진 기업이기에, 나델라의 발언을 냉소적으로 읽을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담긴 말이라고 해서 틀린 말이 되지는 않는다. OpenAI AgentKit의 갑작스러운 종료 예고, 거대한 AI 비용을 소화하지 못하고 구조 조정에 나선 기업들의 사례는 나델라의 주장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같은 위험을 증언하고 있다. 핵심은 어느 플랫폼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그 플랫폼 위에서 학습 루프를 내 것으로 만드는 구조를 갖추느냐 여부다.
중요한 것은 AI를 쓰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그런 선택지는 없다. 물어야 할 것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다. 나델라의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다.
“일은 AI에게 맡길 수 있다. 하지만 배움 자체를 AI 회사에 외주 줄 수는 없다.”
AI를 도입했느냐 마느냐를 따지던 시대는 끝났고, 이제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지금 쓰고 있는 AI 서비스가 내일 당장 사라진다면, 우리 회사 안에 무엇이 남는가. 우리의 판단력인가, 우리의 전문성인가, 우리만의 노하우인가. 아니면 정기 결제가 멈추는 순간 함께 사라질 효율인가. 세계화가 만들어낸 산업 공동화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AI가 만들어낼 지식의 공동화는 그보다 훨씬 빠르게 찾아올 것이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윤석 마이크로소프트 Tech PM journalis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