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출전정지 징계에도 일반 학생 향한 비난 확산…전문가 “비판과 사적 제재는 구분해야”
[일요신문] 고교야구 경기 중 서울 배재고 선수들이 광주제일고를 상대로 '스타벅스 가야지' 등의 구호를 외쳐 지역 비하 논란을 빚은 뒤 전국대회 출전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정치권에서는 징계 수위를 둘러싼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학교 앞 근조 화환 설치와 온라인 신상 유포 등 일반 학생들을 향한 2차 피해까지 확산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편 전국대회 출전이 제한되면서 선수들의 신인 드래프트와 대학 입시에도 불이익이 예상되는 만큼 개인 징계 내용과 재심의 신청 여부가 향후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29일 고교야구 대회 도중 광주제일고를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을 빚은 배재고 야구부를 비판하는 근조 화환과 응원 화환이 2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등학교 앞에 나란히 놓여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스타벅스 가야지’ 배재고 구호 논란 파장
사건의 발단은 6월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배재고와 광주제일고의 경기였다. 당시 배재고 일부 학생 선수들은 6-2로 앞서던 8회초 상대 더그아웃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해당 구호는 지난 5월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이벤트 논란을 연상시키는 표현으로 해석되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하거나 광주 지역을 조롱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광주제일고 코치진은 심판진에 항의했고, 심판은 배재고에 주의를 줬다. 경기가 끝난 뒤 배재고 감독과 코치진은 상대 더그아웃을 찾아가 사과했지만, 경기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하면서 비판 여론도 커졌다.
배재고는 경기 직후 SNS를 통해 사과문을 게시하고 남은 청룡기 대회 일정을 모두 기권하겠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사과문 이미지에는 구글 생성형 인공지능(AI) ‘제미나이’에서 생성한 이미지에 삽입되는 워터마크가 남아 있어 AI를 활용해 작성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사과문 내용도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사과문에는 ‘일부 학생 선수의 부적절한 응원 구호’, ‘해당 학생 선수에 대해서는 학칙과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경기 영상을 보면 더그아웃에 있던 여러 배재고 선수들이 함께 구호를 외치고 율동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학교는 또 ‘해당 학생 선수를 즉시 제지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지만, 광주제일고 코치진이 심판진에 항의하기 전까지 이를 제지하는 모습은 영상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논란이 커지자 배재고는 사과문을 다시 게시하며 문제가 된 일부 표현을 수정했다.
비판은 학교 안팎으로 확산됐다. 5·18민주화운동 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 등 5·18 단체들은 공동 성명을 내고 강하게 항의한 데 이어 배재학당총동창회도 별도 입장문을 통해 학교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원단체 역시 역사 왜곡과 지역 혐오가 학교 현장으로 확산하고 있다며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광주제일고도 공식 대응에 나섰다. 이규연 광주제일고 교장은 6월 3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 내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를 방문해 항의서한을 제출했다. 이 교장은 “이번 일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산실이자 100년이 넘는 야구부 역사를 가진 광주제일고 4만 동문과 광주 시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지향하는 많은 국민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고 말했다.
배재고 학생 선수들은 7월 1일 광주제일고를 직접 찾아 사과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방문은 성사되지 못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배재고 교직원과 야구부 학생·학부모는 광주제일고 측에 직접 사과 의사를 전달했지만, 광주제일고 측은 “현재 학생들이 사과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라며 방문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은 양측과 협의해 배재고 학생들의 사과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광주제일고 조윤채 감독은 7월 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KBSA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출석한 뒤 “이슈가 커지면서 선수들도 계속 뉴스를 보고 있어 심리적으로 힘든 상태”라며 “다음 경기를 앞두고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배재고의 사과 방문에 대해서는 “아직 선수들의 마음이 닫혀 있다”며 “마음이 안정되면 사과를 받겠다는 뜻을 배재고 측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교육당국과 협회의 조사도 본격화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앞서 “역사적 아픔을 희화화하거나 특정 지역을 조롱하는 표현은 교육적으로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발생 경위와 현장 제지 여부, 재발 방지 교육 계획 등을 종합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배재고는 생활교육위원회를 소집해 학칙에 따라 관련 학생들을 엄중 조치하겠다는 입장이다.
광주제일고의 항의서한을 접수한 KBSA는 7월 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제11차 스포츠공정위원회를 긴급 개최하고 배재고 야구부에 전국대회 출전정지 6개월의 징계를 결정했다. 공정위는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징계 규정 제31조 제3항 ‘대회 중 경기장 질서 문란 행위에 대한 징계 기준’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공정위 징계 규정 등에 따라 배재고에 6개월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다”고 밝혔다.
7월 1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공정위원들이 배재고 야구부에 대한 징계 여부를 심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학생 향한 2차 피해 확산
논란이 된 배재고 정문 앞은 집단 화환이 잇따라 놓이며 학생들의 등하굣길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7월 2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 정문 앞에는 이번 사태를 규탄하는 근조 화환과 이에 맞서는 응원 화환이 잇따라 설치됐다. 7월 1일 10개가 채 되지 않던 화환은 하루 만에 70여 개로 늘어났다. 초기에는 학교와 야구부를 비판하는 근조 화환이 대부분이었다. 화환에는 ‘역사를 망각한 배재고’, ‘프로 지명 금지’ 등의 문구가 적혔다. 이후 ‘기죽지 말고 힘내라’, ‘스타벅스 왜 가면 안 되는데’ 등의 문구를 담은 맞불 화환이 등장하면서 현장은 찬반 대립의 장으로 변했다.
게다가 한 학생이 근조 화환을 발로 차는 모습이 담긴 영상까지 온라인에 확산되면서 논란이 더욱 커졌다. 또 한 중년 남성이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설명하며 말을 건네자 이를 두고 일부 시민들이 언성을 높이며 설전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강동구청은 7월 2일 해당 화환들을 도로법 위반에 따른 불법 적치물이자 통행 안전을 위협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철거했다. 구청은 앞으로도 도로에 설치된 화환을 확인하는 즉시 철거한다는 방침이다. 배재고 측은 등하굣길에서 논란이 커지자 학생들의 안전과 조롱 피해를 우려해 사복 등교를 허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SNS에서는 배재고 야구부 명단과 올해 프로 신인 드래프트 지명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의 이름이 담긴 게시물이 공유되고 있다. 사진=스레드 캡처온라인에서는 학생들을 향한 사적 제재도 확산하고 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배재고 야구부 명단과 올해 프로 신인 드래프트 지명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의 이름이 담긴 게시물이 공유되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프로 구단들이 절대 지명하면 안 된다”, “야구계에서 퇴출해야 한다” 등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번 사건과 무관한 일반 학생들에게도 비난이 번지는 모습이다. SNS에 올라온 배재고 관련 게시물에는 ‘일배 관상’, ‘배재고는 폐교하라’ 등의 악성 댓글이 이어졌다. 학교 공식 SNS 계정은 댓글 기능을 제한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온라인에서 일상화된 혐오 문화가 학교 현장으로까지 확산한 사례라고 진단했다. 허창덕 영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학생들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과 학생 개인을 향해 사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며 “온라인에서 형성된 혐오 문화가 현실 공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더 구조적인 사회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드래프트·대학 진학 변수로…‘6개월 출전정지’ 후폭풍
일각에서는 이번 징계 수위를 두고 미성년자인 학생 선수들을 대상으로 지나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 협회가 이번에 적용한 ‘경기장 질서 문란 행위’ 관련 규정상 6개월은 부과할 수 있는 최대 수준의 징계다.
일부 야권 인사들도 전국대회 출전정지 6개월 처분이 과도하다며 비판에 나섰다.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은 SNS를 통해 “청소년 선수에게 반년의 공백은 대학 진학은 물론 남은 야구 인생 전체를 흔들 수 있다”며 “징계로 인해 선수들이 감수해야 할 불이익이 지나치게 크다”고 지적했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도 “어린 학생들에게 전국대회 출전정지 6개월 처분을 내린 것은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가담 여부와 책임 정도가 선수마다 다른데도 팀 전체의 전국대회 출전을 막는 것이 적절하냐는 주장도 나왔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모든 선수에게 같은 불이익을 준 것은 연좌제”라고 비판했다.
현실적으로는 이번 6개월 출전정지 징계가 배재고 학생 선수들의 진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가장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오는 9월 예정된 KBO 신인 드래프트다. 현행 KBO 규약상 드래프트 참가 자체가 제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KBO 규약 제108조 제4항은 신인 드래프트 참가 신청 선수가 학교폭력으로 학교나 KBSA, 대한체육회 등에서 자격정지 이상의 제재를 받은 경우 제재 기간이 끝날 때까지 드래프트 참가와 프로구단 입단을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안은 학교폭력으로 분류되지 않아 향후 선수 개인에 대한 별도 징계가 내려지더라도 드래프트 참가 자격을 박탈할 규정상 근거는 부족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문제는 참가 자격과 실제 지명 여부는 별개라는 점이다. 프로 구단은 선수의 기량뿐 아니라 인성과 평판, 여론 부담까지 함께 고려한다. 규정에 제약이 없더라도 사회적 논란에 휘말린 선수를 지명하는 것은 구단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여론을 의식한 구단들이 지명 순번을 조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징계로 3학년 선수들이 프로 스카우트들에게 기량을 다시 보여줄 무대가 줄어든 점도 변수다. 논란이 된 이번 청룡기 대회는 9월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스카우트들이 집중적으로 지켜보는 전국대회로 꼽힌다. 야구계에 따르면 올해 배재고 3학년 가운데 프로 구단의 관심을 받는 선수는 2~3명 정도로 알려졌다. 이들은 남은 전국대회에서 평가를 끌어올릴 기회를 잃게 됐다.
대학 진학에도 영향은 불가피하다. 전국대회 출전이 막히면서 입시에 반영될 성적과 실적을 추가로 쌓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대학 체육특기자 전형은 학교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팀 성적, 투수 이닝 수, 타석 수, 우수상 수상 같은 개인 성적 등을 주요 평가 요소로 반영한다.
고교야구 주말리그 전·후반기 일정은 지난 6월 21일 모두 마무리돼 대학 입시 지원 자격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남은 전국대회는 개인 성적을 보완하고 팀 성적을 쌓아 입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무대다. 배재고는 앞선 이마트배와 황금사자기에서 모두 1회전 탈락한 데 이어 이번 청룡기도 징계로 대회를 마치게 됐다. 6개월 출전정지 처분이 유지될 경우 올해 남은 대통령배와 봉황대기, 전국체육대회에도 출전할 수 없게 된다. 기본적인 입시 지원 자격은 갖췄더라도 전국대회 성적을 통해 추가 점수를 얻거나 개인 평가를 끌어올릴 기회를 잃게 되는 셈이다.
배재고는 논란이 된 학생 2명을 생활교육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 사진=임준선 기자선수 개인에 대한 징계 여부와 팀 징계에 대한 재심의 신청 여부는 향후 변수로 남아 있다. 협회는 팀 징계와 별도로 지도자와 개별 선수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KBSA는 “지도자 및 선수에 대한 징계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출전 제한 기간 중 면밀한 조사를 진행해 대상자를 특정한 뒤 해당 기간 내 스포츠공정위원회를 다시 개최해 심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배재고도 자체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조국혁신당 강경숙 의원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배재고 야구부 방문 점검 결과 보고’에 따르면 학교는 논란이 된 구호를 선창한 학생 2명을 생활교육위원회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생활교육위원회는 학생의 선도와 징계 여부를 심의하는 교내 기구로, 과거 선도위원회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학교는 당시 구호에 동조한 학생들에 대해서도 추가 회부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팀 징계에 대한 재심의 신청 여부도 관심사다. 배재고가 이번 징계에 불복할 경우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재심의를 신청할 수 있다.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재심의는 징계결정서를 받은 날부터 7일 이내 신청해야 한다. 재심의가 접수되면 원칙적으로 재심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징계 효력이 정지된다.
다만 대한체육회는 이번 사안의 경우 징계 효력 정지 적용 여부는 내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현재까지 배재고 측으로부터 재심의 신청이 접수된 것은 없다”며 “재심의 신청과 관련해 징계 효력 정지 여부는 내부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재심의와 별도로 법원에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다만 협회 내부에 재심의 절차가 마련돼 있는 만큼 실제 법적 대응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