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게 시작한 도전은 어느덧 18년의 시간을 거쳐 영국 무대로 향하고 있다. 대구에서 창작을 시작한 이응규 EG뮤지컬컴퍼니 대표는 이제 창작뮤지컬 ‘유앤잇(You&It)’으로 영국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다.
최근 대구 남구 운남차정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내내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흰머리 난 것 말고는 그대로입니다”라고 웃으며 던진 한마디에는 대학생 창작자에서 K-뮤지컬 프로듀서로 성장한 18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올해는 DIMF가 20주년을 맞는다. 이 대표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2007년 제1회 DIMF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에서 첫 작품을 선보인 그는 지금까지도 그 무대를 자신의 출발점으로 기억한다.
“솔직히 DIMF가 없었다면 시작도 못 했습니다.”
그에게 DIMF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었다. 창작자에게는 작품을 세상에 처음 내놓을 수 있는 무대였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술인에게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플랫폼이었다. 그는 “대구에서 창작하는 사람에게는 매년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다”고 돌아봤다.
첫 무대에 올랐던 대학생 이응규는 겁이 없었다. 당시 목표는 ‘전국 제패’였다. 좋은 평가를 받고 상을 타 이름을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 작품성을 인정받으면 관객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뿐 아니라 관객이 왜 지금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먼저 고민한다. 창작자의 시선은 작품 자체에서 사람으로 옮겨갔다. 상을 받기 위한 창작에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창작으로 나아간 것이다.
대부분 창작자가 서울을 선택하지만 그는 대구를 떠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서울은 제작과 유통의 중심이고, 대구는 창작의 중심”이라고 말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이 걸린다. 그는 대구에서 충분히 작품을 다듬고 관객에게 검증받은 뒤 서울을 거쳐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길을 선택했다. 지역에서 먼저 가능성을 검증받고 서울에서 제작한 뒤 세계로 나가는 것이 작품을 오래 살아남게 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이 대표는 배우 수를 늘리는 대신 이야기의 밀도와 무대 기술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공연 형식을 선택했다. 그 결과 ‘유앤잇’은 제20회 DIMF 공식 초청 공연에서 관객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이어 서울 CKL스테이지 앙코르 공연도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입증했다.
작품은 오는 8월부터 영국 런던 킹스 헤드 시어터(King’s Head Theatre)에서 장기 공연에 들어간다. 이 대표는 영국 공연에 대해 “해외에 진출한다는 사실 자체보다 세계 시장에서 작품이 통하는지 검증받는 과정이다. 설레면서도 많이 긴장된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말했다.
18년 동안 걸어온 창작의 길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그는 창작뮤지컬 ‘기억을 걷다’를 떠올렸다. 모든 것을 걸었던 작품이었지만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렇다고 작품을 버리지는 않았다. 대본은 지금도 그의 서랍 속에서 숙성되고 있다. 그는 “지금의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다시 다듬어 언젠가는 꼭 무대에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실패는 끝이 아니라 작품을 익히는 시간이었다.
‘유앤잇’도 계속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낯설었던 시절에 시작한 작품은 이제 AI가 일상이 된 시대를 만나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공연 후 나온 비평도 그는 창작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는 “우리의 의도와 다르게 전달됐다면 그것도 관객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작품의 본질은 지키되 관객이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은 유연하게 수정하는 것이 창작자의 역할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말은 후배 창작자들에게도 이어졌다. 무조건 서울부터 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대구에도 DIMF 같은 좋은 플랫폼이 있다”며 “지역에서 충분히 성장한 뒤 더 큰 시장으로 나아가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뮤지컬이 자신에게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제가 유일하게 잘하는 일”이라며 “제가 만드는 작품들은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앞만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잃기 전에 잘하자는 이야기를 전합니다”고 말했다.
18년 전 전국 무대를 꿈꾸던 대학생은 이제 세계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는 오늘도 대구에서 새로운 작품을 쓰고 있다. 그가 택한 길은 대구에서 창작하고, 서울에서 제작하고, 영국에서 검증받아 세계로 향하는 것이다. 이응규 대표가 정말 영국으로 보내고 싶은 것은 뮤지컬 한 편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대구에서도 세계로 갈 수 있다.’ 그는 그 가능성을 자신의 작품으로 증명하고 있다.
김은주 대구/경북 기자 kej2909@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