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 최초로 48개국이 본선 무대에 나선 월드컵이었다. 24개국에서 32개국 체제로 바뀐 19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28년 만의 변화였다. 4개국이 한 조에 편성돼 치르는 조별리그 이후 32강으로 토너먼트가 시작되면서 우승까지 가는 길은 더욱 길어졌다.
대회를 앞두고 우려가 쏟아졌다. 더 많은 국가에 기회가 주어진다는 긍정적 평도 있었으나 대회 경기력 저하, 긴장감 약화와 같은 반대 의견이 있었다. 대회 '밀도'가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48개국 체제의 월드컵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은 많았다. 자국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에 나선 아프리카의 작은 섬나라 카보베르데는 대회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첫 경기부터 스페인과 0-0으로 비기며 승점 1을 따냈다. 이어 우루과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도 비겨 토너먼트 무대까지 밟았다. 32강에서는 아르헨티나를 만나 일방적 경기가 예상됐으나 2-3 석패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외에도 대회 규모 확대의 수혜를 입었다고 볼 수 있는 아이티, 콩고민주공화국 등이 분전하며 감동을 안겼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조별리그 1승 1무 1패의 성적으로 32강까지 진출했다. 32강에서는 잉글랜드를 만나 한때 앞서기도 했다.
경기 숫자가 늘어났으나 선수들의 체력 문제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과거 3~4일 간격으로 촘촘하던 조별리그 경기 간격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선수들로선 휴식 기간이 늘어났다. 이에 조별리그에서 필수로 여겨지던 강팀들의 선수단 로테이션이 오히려 줄었다.
다만 일부에선 선수단의 '정신적 피로'를 지적하기도 했다. 대회 기간이 40일에 가까웠다. 조별리그 일정만 3주에 걸쳐 치러진다. 빠르면 개막 3주 전에도 현지 캠프에 입성하는 팀도 있었다. 장기간 대회 현장에 체류하며 참가 선수가 피로감을 호소할 수도 있는 환경이었다.
이에 더해 이번 대회는 기존 축구의 문법에 다소 변화를 가하기도 했다. 과거 더운 환경에서 일시적으로 시행되던 '쿨링 브레이크'가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라는 이름으로 전·후반에 각각 3분간 고정 도입됐다. 명목은 선수단 보호이지만 사실상의 '광고 시간'으로 통한다. 그라운드에서는 감독들의 '작전 타임'으로 활용됐다. 결승전에서는 30분에 가까운 '하프타임 쇼'가 열렸다. 기존 15분의 하프타임에 비해 선수들은 긴 시간 휴식을 취했다. 이를 두고 '축구가 과도하게 훼손됐다'는 평이 자연스레 뒤따랐다. 현장에서 지켜보던 BBC 패널 웨인 루니(잉글랜드)는 "형편없었다"는 혹평을 내놨다.

우승컵은 스페인의 차지였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첫 우승의 감격을 만끽했던 이들은 16년 만에 트로피를 되찾았다. 조별리그부터 결승전까지 8경기에서 1골만을 내준 수비력이 도드라졌다.
월드컵과 같은 큰 무대, 스타 플레이어가 각광을 받기 마련이다. 특히 이번 대회는 킬리앙 음바페(프랑스·10골),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8골), 엘링 홀란드(노르웨이·7골), 주드 벨링엄(잉글랜드·7골), 해리 케인(잉글랜드·6골) 등 걸출한 스타들이 이름값을 하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들은 골망을 흔들거나 특유의 화려한 플레이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반면 스페인은 한두 명의 스타가 아닌 팀 전원이 함께 움직이는 축구로 우승까지 이뤄내 호평이 이어졌다. 16강부터 포르투갈, 벨기에, 프랑스 등 화려한 스타 군단을 차례로 꺾어냈다. 그들의 과거 성공 공식이었던 높은 점유율(8경기 평균 63.8%)은 여전히 유지됐다. 그러면서도 공을 빼앗기면 곧장 조직적인 압박으로 다시 주도권을 회복했다. 점유를 되찾아오는 '공 회수'를 의미하는 '리커버리' 횟수에서 스페인은 8경기 414회를 기록, 대회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에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스페인은 공 소유권을 내준 직후 빠르게 재압박해 공을 빼앗는 모습을 대회 내내 보여왔다. 결승전에서도 아르헨티나는 슈팅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압박을 당했다. 스페인은 월드컵에서 가장 화려한 팀은 아니었지만 가장 강한 팀이었다"고 평가했다.
우승팀 스페인에 스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결승전 직후 발표된 골든볼(MVP) 수상자로는 수비형 미드필더 로드리가 호명됐다. 대회 기간 중 공격 포인트는 없었으나 패스, 태클, 드리블 등 미드필더가 할 수 있는 모든 플레이로 경기를 지배했다. 결승전에서는 106개의 패스를 시도, 101개를 성공시키며 승리를 이끌었다. 발롱도르, 유로 우승과 MVP에 월드컵 우승, 골든볼 수상까지 더하며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반열에 오르게 됐다.

참가국이 늘어나고 의외의 복병이 활약하며 이목을 끌었던 월드컵이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단계에서는 그간 대회를 지배했던 유럽과 남미가 자리를 양분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 포함 그간 23차례 대회에서 유럽이나 남미 소속이 아닌 국가가 8강 문턱을 넘은 사례는 단 3회뿐이다. 1930년의 미국, 2002년의 한국, 2022년의 모로코만이 4강 무대를 밟았다.
이번 대회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로코만이 8강에 올랐다. 아프리카 국가 다수가 토너먼트에 진출하며 기대를 모았으나 대거 32강에서 탈락했다. 아시아는 일본과 호주만이 32강에 진출했지만 16강에 오르지는 못했다. 개최국인 캐나다, 멕시코, 미국도 순항을 이어가다 16강에서 모두 멈췄다. 결국 대회 일정이 후반부로 가면서 스포트라이트는 유럽과 남미가 가져갔다.
이는 대한민국 대표팀에게도 과제로 남았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이뤄낸 바 있었다. 12년 만의 성과였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이번 대회, 결국 다시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하는 결과를 받아들게 됐다.
4년 전 대표팀은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준비한 팀이 어떤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4년의 준비 과정에서 임시 감독 포함 4명(위르겐 클린스만, 황선홍, 김도훈, 홍명보)이 사령탑을 거쳤다. 그사이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결과로 이를 덮을 수도 있었지만 결국 대회 결과는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냉철한 복기와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어수선한 분위기는 이어진다. 국회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청문회는 연기됐다. 여전히 비판 여론은 거센 상황이다. K-축구혁신위원회 출범 등으로 변화를 예고한 한국 축구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