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나토는 중국 같은 강대국이 경제적 강압을 시도하면 사전에 대응 원칙을 조율한 국가들이 공동으로 맞서는 구상이다. 처음 생각한 것은 2021년 여름이었다. 당시 강대국들이 경제적 수단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이에 중견국들이 공동으로 관세를 부과하거나 반강압 공동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이후 지난해 대선 경선에 출마한 한동훈 후보가 이를 공약으로 채택했다.”
―‘경제 나토’ 이름은 누가 만들었나.
“(한동훈 의원과) 같이 했다고 볼 수 있다. 글을 쓰고 인터뷰도 하고 방송에서 이야기해도 그것이 실현되지 않으면 아이디어에만 그친다. 이 정책이 현실화하고 국민 앞에서 발표할 수 있으려면 큰 영향력이 필요하다. 거기에 있어서 한동훈 의원의 역할이 막대했다. 그리고 (공약을 만들 때) 함께 보완하고 많은 논의를 했다. (한 의원은) 평소 국제 정세에 관심이 많다. 국제 정세를 보는 관점도 비슷했다. 그래서 시너지 효과가 나고 저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강대국 경쟁의 한복판에서 한국 외교는 어디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적극적 안정자’가 돼야 한다. 강대국이 지역 균형을 설계해 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그 과정에 주도적인 파트너로 참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안정자’는 팽창이나 상대방의 패망이 아닌 현상 유지를 추구한다는 것을 뜻하고, ‘적극적’은 그저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트너와 함께 각국의 비교우위에 기반한 ‘지정학적 분업’을 해야 한다. 미국이 모든 지역에서 세계 경찰 역할을 하던 시대는 끝났다. 독일이 산업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해 유럽의 방패가 되고, 한국이 조선·방산 역량으로 인도·태평양 해양 안정을 도우면, 서로 지역의 안보에도 도움이 된다. 두 가지 잠재적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하나는 유럽의 무기고를 채우고 미 군함의 정비·수리를 맡는 ‘자유 진영의 병기창’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범용 기술의 핵심 동반자’다. AI를 가동할 HBM 반도체처럼 한국 없이는 못 만드는 기술을 공급하는 것이다.”
―‘적극적 안정자’로 거듭날 방법이 있을까.
“이를 수행하려면 원칙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반패권주의가 있다. 어떤 세력이든 동아시아에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추구하면 단호히 반대한다는 개념이다. 과거 한국은 중국을 대할 때 반공주의라는 이념적 잣대와 ‘안미경중’이라는 편의주의 사이를 오갔다. 반패권주의는 이 이분법을 넘어선다. 문제 삼는 것은 중국의 국내 체제나 이념이 아니라 주변국을 힘으로 짓누르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미·중 경쟁의 한복판에 선 분단국가의 생존을 위한 현실적인 방법이다. 미·중 모두 못 미더우니 중견국끼리 뭉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세계 3위부터 10위까지 합쳐도 미국에 미치지 못한다. 중견국 사이에 공통의 위협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 반패권 원칙을 공유하는 미국 및 파트너들과 함께하고, 그 안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다.”
―반대로 한국이 가장 피해야 할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등거리 외교는 중간 지대를 전제한다. 그러나 그 중간 지대가 좁아지고 있다. 한쪽은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고 군사 동맹을 맺은 역외 강대국이고, 다른 한쪽은 우리 지역에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과 첨단산업 장악을 시도하는 강대국이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이다. 다만 모든 전략적 모호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대만 유사시 같은 상황에서 계산된 모호성은 유용하다. 문제는 노선의 모호성이다. ‘어느 질서에 설 것인가’라는 기준까지 흔들리면 안 된다.”

“트럼프 개인에 대해서는 세 가지 관점이 있다. 첫 번째는 예측 불가능성 자체가 의도된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상대방을 흔들기 위한 전술이다. 두 번째는 트럼프만의 일관된 논리가 있다는 시각이다. 유럽 방위를 현지 국가들에 위임하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대전략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제국이 일종의 구조조정에 들어갔다는 말도 있다. 실적이 안 나오는 부서, 즉 국제기구와 동맹 관계들은 폐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국익과 사익의 구분을 못 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학계에서는 신왕정주의라고 한다. 과거 유럽 왕들의 짐이 곧 국가라는 사고방식이다.”
―미국과 이란이 중간선거 전까지 합의를 시도할 가능성은 있다고 보나.
“국제정치에서 말하는 ‘커미트먼트 문제’다. 약속해도 상대가 이행하리라는 믿음이 없으면 합의가 성립되기 어렵고, 성사돼도 지속되기 어렵다. 지금 미국과 이란은 상호 신뢰가 매우 부족한 상태다.”
―이란 전쟁이 미·중 갈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중국이 미국의 전략적 실수를 반기고 있다는 해석이 많다. 미국이 중동의 늪에 빠지면 아시아에서 중국 견제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당 부분 동의한다. 제2의 이라크 전쟁, 나아가 베트남 전쟁과 비교하는 시각도 있다. 다만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또한, 미국의 저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여전히 국제질서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다.”
―미·중 경쟁은 어떤 틀로 봐야 하나.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닌가.
“두 층을 겹쳐 볼 수 있다. 전통적인 뼈대는 대륙 세력 대 해양 세력이다. 중국과 러시아 같은 대륙 세력은 완충지대를 넓히고 이웃을 길들이는 영토적 팽창을 통해 안전을 확보한다. 해양 세력은 해상 교통로와 자유무역, 동맹에서 안보를 찾는다. 항행의 자유는 80년간 미국 해양력이 떠받친 값비싼 국제 공공재로 있었다. 한국의 성장도 그 질서 위에서 이뤄졌다. 여기에 21세기에는 경쟁의 장이 확장됐다. 하드 파워를 넘어 시장 네트워크와 디지털 플랫폼까지 번졌다. 기술 패권도 이 틀에서 갈린다. 조지워싱턴대 제프리 딩 교수가 주장하듯, 승부처는 누가 최초로 발명하느냐가 아니라 범용 기술을 범사회적으로 얼마나 넓고 깊게 확산시키느냐다. 미국은 AI 인력의 양과 질, 기업의 기술 채택률, 산학 연계, 시장 표준을 만드는 유연한 생태계 등 기술 확산에 유리한 우월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긍정적인 점은 한일 관계 개선 노력, 국방비 증액,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라늄 농축 문제 제기다. 나토 정상회의에서는 ‘한-나토 방위산업 파트너십 2.0’을 제안했다. 아쉬운 부분은 이런 사례들조차 대전략 없이 파편적으로 실행되는 감이 있다는 것이다. 방위산업 파트너십 2.0을 두고 진보 진영에서도 수출 실적을 위해 대외 전략을 맞추는 것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예리한 지적이다. 다만 협력을 접을 것이 아니라, 방산이 몸통이 아니라 꼬리임을 분명히 해줄 대전략이 필요하다. 한국의 방산 역량으로 유럽이 러시아를 견제하게 되면 미국은 그만큼 아시아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면 방산 협력은 한국을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축으로 만드는 전략적 투자가 된다.”
―진보·보수가 이런 대전략에 합의할 수 있을까. 두 진영에 조언한다면.
“보수는 조건 없는 대화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정상회담이나 일종의 전략적 소통을 굴종으로 보는 분도 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략적 소통은 오판을 줄이고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항상 열어둘 필요가 있다. 진보 진영이 강조한 자주국방은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북한 억제에 머무르지 말고, 첨단산업, 해상교역, 지역 안정 등에 이바지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 경제 10대 국 안에 있다. 우리 경제는 해상 교역로의 원활한 움직임에 의존한다. 그런 이익을 보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국제질서 전체를 바라보고, 이념보다 힘의 균형에 기반한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한다. 특히 중국 문제는 중국의 지역 패권 장악이 현실화했을 때 한국에 미칠 영향에 대한 각자의 전제와 판단을 먼저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 토대 위에서 정책을 토론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