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올스타 휴식기를 지나 후반기를 맞이한 KBO리그의 순위 싸움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전반기 오랫동안 1위 자리를 지켰던 LG 트윈스가 연패의 늪에 빠지며 3위로 주저앉았고, LG를 맞아 선전을 펼친 삼성 라이온즈와 KT 위즈가 1, 2위를 나누며 선두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KIA가 내야수 하주석을 받고 한화가 투수 이형범을 받는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하주석(사진)은 2012년 데뷔 이래 첫 이적이다. 사진=연합뉴스7월 23일 현재 3위 LG와 4위 KIA의 게임차는 3경기이고, KIA와 5위 두산과는 1게임차다. 두산과 6위 한화는 3경기 반 차로 벌어졌다.
90경기를 넘게 치른 지금 7위 NC를 포함해 모두 5강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수가 많은 야구에서 팀들은 저마다 불안 요소들을 지우거나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 중이다. 특히 ‘가을야구’를 목표로 하는 팀들은 트레이드와 외국인 선수 교체 등으로 팀의 전력 보강을 모색한다.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가 7월 23일 경기를 마치고 내야수 하주석과 우완 투수 이형범을 맞바꾸는 1대1 트레이드를 전격 발표했다. 32세 동갑내기인 하주석과 이형범은 24일부터 각각 KIA와 한화 유니폼을 입고 팬들을 만난다.
23일 경기 후 발표된 트레이드 소식에 양 팀 팬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깜짝 트레이드였고, 내야수와 불펜 투수의 맞트레이드라는 점에서 다양한 의견을 낳게 했다.
4위 KIA는 상위권 팀들과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카드가 필요했고, 6위 한화는 가을야구를 위해 뒷심을 발휘해야 하는 중요한 상황이었다. 각자 약점으로 꼽힌 내야와 불펜을 보강하기 위해 절묘한 카드를 맞췄다.
하주석은 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한화의 지명을 받은 후 올 시즌까지 15년간 ‘원클럽맨’으로 활약하며 통산 997경기 타율 0.268(3246타수 869안타) 53홈런 373타점 425득점 83도루를 기록했다. 올 시즌 하주석은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1군에서 27경기 출전이 전부였다. 지난 5월 8일 LG 트윈스 경기를 끝으로 엔트리에서 말소된 후 계속 퓨처스에 머물렀다. 퓨처스리그에서는 32경기 타율 0.327 32안타 1홈런 OPS(장타율+출루율) 0.800을 기록했다.
주전 유격수 심우준과 이도윤, 황영묵, 정은원 등에 밀려 팀 내 입지가 좁아진 하주석을 지켜봤던 KIA는 마침 한화와의 광주 3연전 동안 트레이드 관련 협상을 진행할 수 있었다. 트레이드가 성사되려면 양 팀에 필요한 카드가 중요하다. KIA는 내야수 하주석이 필요했고, 한화는 불펜 투수가 절실했다. 내야수 정리가 숙제였던 한화로선 불펜 투수가 많은 KIA와의 협상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형범은 2012년 특별 지명으로 NC 다이노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며 김경문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2019년 두산 베어스에서 NC로 이적한 양의지의 보상 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2023시즌을 마치고선 2차 드래프트를 통해 KIA 지명을 받았다. 지난 두 시즌에는 1군보다 퓨처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올 시즌 이형범은 19경기 24이닝 15탈삼진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했다. 후반기 들어 2경기 구원 등판해 무실점의 성적을 올렸다.
물론 KIA에선 이형범을 내주는 게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올 시즌 개막 전부터 시작된 내야 고민을 푸는 게 중요했다. 박찬호가 FA를 통해 두산으로 이적하면서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아시아쿼터로 호주 출신의 제리드 데일을 영입했는데 극심한 타격 부진 끝에 팀을 떠났다. 이후 박민, 김규성 등이 유격수를 나눠 맡았지만 박민은 허리 통증으로, 김규성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으로 이범호 감독의 고민을 깊게 만들었다. 더욱이 내야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베테랑 2루수 김선빈마저 잇단 수비 실책을 범했고, 3루수 김도영도 체력 관리를 받아야 하는 시점이라 KIA로선 트레이드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한화는 올 시즌 불펜 난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범수, 이태양(KIA)과 한승혁(KT)의 공백과 김서현, 정우주 등이 부진으로 1군에서 말소된 후 팀 평균자책점이 4.61로 리그 7위를, 불펜 평균자책점은 5.11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베테랑 투수 이형범의 합류는 불펜 강화에 힘을 보탤 수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정에 따르면 KBO리그의 트레이드 마감 시한은 7월 31일 자정까지다. 31일 밤 12시부터 한국시리즈 우승 팀이 정해지는 날까지는 웨이버 공시 선수 영입을 제외하고 어떠한 방법으로도 구단 간에 선수를 교환할 수 없다.
야구계는 하주석과 이형범의 트레이드가 남은 트레이드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남은 일주일 동안 또 다른 트레이드가 나올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이다.
후반기 들어 상위권 팀들의 외국인 선수 교체가 순위 싸움의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후반기를 앞두고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팀이 삼성이다. 삼성은 맷 매닝의 대체 외국인 투수였던 잭 오러클린을 내보내고 완전 대체 선수로 크리스 페덱과 아리엘 후라도의 부상으로 인한 일시 대체 자원으로 오스틴 보스를 영입했다.
페덱은 KBO리그 데뷔전이었던 18일 대구 롯데전에서 6이닝 1피안타 1볼넷 무실점 호투로 첫 승을 신고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페덱의 데뷔전을 챙겨본 정민철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메이저리그에서의 명성 그대로의 피칭이었다”면서 “데뷔전이었음에도 새로운 리그에 빠르게 적응하고 새로운 구성원들과 스킨십하면서 팀에 녹아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장성호 KBSN스포츠 해설위원도 페덱의 경기 운영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경기를 보며 ‘선발투수의 안정감이란 게 이런 거구나’하는 걸 느꼈다. 아무리 커리어가 뛰어난 투수라고 해도 환경이 바뀌고 첫 등판이 갖는 무게감을 떠올리면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페덱은 롯데전에서 85구를 던지는 동안 1회 초구와 마운드를 내려가기 전까지 던진 공의 구속이 엇비슷했다. 이날 던진 5개 구종의 완성도도 뛰어났다. 직구와 슬라이더는 물론 다른 변화구마저 좋다 보니 타자 입장에선 대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화는 지난 20일 브루스 짐머맨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올 시즌 16경기에서 3승6패 평균자책점 4.92에 그친 윌켈 에르난데스를 떠나 보내고 짐머맨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한화는 6위로 전반기를 마쳤지만 후반기 시작 이후 불펜이 연일 무너지면서 4패 1무를 기록하다 22일 KIA전에서야 첫 승을 거뒀다. 여전히 6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5위 두산과 3경기 반 차이로 벌어진 상황에서 새로운 외국인 투수의 합류는 마운드 보강과 분위기 변화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한화는 짐머맨 이전에 트로이 왓슨(디트로이트 타이거즈)과 영입 협상을 벌인 바 있다. 그런데 선발 투수를 찾고 있던 LG가 트로이 왓슨 협상에 참전했고, 왓슨이 한화 측에 “가족들이 서울에서 생활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한화의 외국인 선수 영입은 노선 변경이 불가피했다. 그 이후 한화는 짐머맨과 인연을 맺었다.
반면에 LG로 마음을 틀었던 트로이 왓슨은 소속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가 왓슨을 해외 리그로 보내는 대신 40인 로스터에 묶는 바람에 LG행이 무산됐다. 협상에 나섰던 LG 차명석 단장은 “고우석과 비슷한 상황”이라면서 “디트로이트 구단의 결정을 기다리다 트로이 왓슨의 40인 로스터 소식을 듣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LG는 MLB 통산 112승을 거둔 39세의 베테랑 투수 카를로스 카라스코를 영입하면서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카라스코는 2017년 클리블랜드 소속으로 18승을 거두며 아메리칸리그 다승왕에 오른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한다. 다양한 변화구와 안정적인 경기 운영 능력이 강점으로 꼽히는데 올 시즌에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8경기에 나섰고, 이후 트리플A에서 8경기 35⅓이닝 평균자책점 2.55를 기록했다. LG는 카라스코가 지난해 LG 선발진을 이끌었던 요니 치리노스의 상위 버전이라며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편 1게임 차로 4위 KIA를 뒤쫓고 있는 두산은 올 시즌 타율 0.287 9홈런을 기록한 다즈 카메론을 내보내고 1루수 유니오 세베리노를 영입했지만 아직까지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변화구 대처와 낮은 콘택트 능력이 약점으로 지적됐는데 두산 합류 후 5경기 22타석에서 9차례의 삼진을 당하는 등 타율 0.167(18타수 3안타) OPS 0.540으로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반면에 두산에서 웨이버 공시된 후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카메론은 트리플A 팀에서 펄펄 날고 있다. 루키리그 2경기를 거친 후 트리플A로 승격 후 5경기 모두 안타를 만들어내며 15타수 6안타 4볼넷 타율 0.400, OPS 1.193을 기록 중이다.
이범호 감독 "하주석이 '모든 힘 다하겠다' 하더라"
하주석(KIA) 이형범(한화)이 전격 트레이드 합의를 이룬 배경에는 KIA 타이거즈의 내야수 보강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KIA 이범호 감독은 24일 전화 통화에서 “김선빈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박민마저 허리 통증으로 전력에서 제외된 터라 선수 보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주석과 유사하게 이범호 감독 역시 한화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나 KIA 유니폼을 입으며 이적을 선택한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김선빈이 빠른 공 대응에 조금씩 어긋나는 모습을 보였고, 김도영과 함께 체력적으로도 힘든 모습을 보였다. 거기다 박민마저 허리가 아프다고 하니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난 16일 박민이 말소된 이후 단장님께 트레이드를 통해서라도 경기 출전이 가능한 내야수를 보강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이후 하주석 이야기가 나왔고, 하주석 정도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급히 진행된 걸로 알고 있다.”
박민이 재활을 거쳐 다시 1군에 오르려면 2, 3주 가량의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라 이범호 감독은 새로운 내야수 자원이 필요했다. 순위 싸움이 치열한 상황에서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것으로는 3위 문턱을 넘어설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새로운 선수가 온다면 그 선수의 동기부여가 중요했다. 하주석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하주석의 올 시즌 성적과 그가 퓨처스에 머물며 다시 한번 잘하고 싶은 의욕이나 간절함이 엄청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선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시너지 효과가 상당해질 수 있다고 봤다.”
이범호 감독은 트레이드 발표가 난 23일 밤 하주석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모든 힘을 다해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하더라. 나도 선수 시절 한화에서 뛰다가 일본을 거쳐 KIA로 이적했던 경험이 있다. 새로운 팀에 적응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그런 경험을 전하면서 주석이에게 '잘해보자'고 말했다.”
그렇다면 하주석은 KIA에서 어떤 보직을 맡게 될까. 24일 광주에 합류한 하주석은 첫날부터 경기에 나서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24일)은 경기 출전보다 훈련하면서 수비나 타격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한 번 더 체크하고 싶다. 이후 유격수로 내보냈다가 김선빈과 2루를 돌아가며 맡을 수도 있고, 올시즌 이후 김도영이 유격수를 맡게 된다면 하주석이 3루도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건 지금 결정하기보다 시즌을 치르며 쌓인 데이터를 통해 이후 포지션을 정하는 게 맞다.”
이범호 감독은 한화로 향한 이형범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전했다.
“이전 두 시즌 고생하며 잘 적응한 덕분에 올 시즌 좋은 활약을 펼쳤고, 경기 결과로 이어졌다. 한화도 그 점을 높이 평가한 게 아닌가 싶다. 좋은 투수를 내주고 싶은 감독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우리가 필요한 걸 얻으려면 아끼는 자원을 내줘야 하는 게 트레이드인 것 같다. 형범이가 한화에 잘 녹아들어 멋지게 선수 생활을 이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