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화 방영일 하루 동안 일부러 핸드폰을 멀리하고 가족하고만 지냈어요. 축하 문자를 정말 많이 보내주셨는데 그럴수록 제 마음이 더 혼란스럽고 작품을 떠나보내기 힘들 것 같았거든요. 모두가 만든 값진 결과고 기적 같은 순간들이었지만 거기에 제가 너무 도취되면 앞으로 다른 모습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스스로를 기름지게 만들까 걱정되기도 했고요. 그런 마음을 다 내려놔야겠단 생각으로 다시 제로베이스로 돌아가려고 노력 중이에요. 하지만 얼마 전까지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인터넷에 제 이름을 검색하고 킥킥거렸죠(웃음)."
'김부장'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아빠가 하나뿐인 딸을 되찾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가 돼 싸우는 아빠 유니버스 복수 액션 드라마다. 극 중 윤경호는 남·북파 공작원 김부장(소지섭 분)의 '딸 탈환'을 돕는 든든한 동료이자 한때 전장의 신으로 불렸던 전직 요원 박진철을 연기했다. 든든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힘과 위기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능청스러움을 동시에 지닌 인물이다. 다만 원작 웹툰 속 박진철과는 외형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던 만큼, 작품에 들어가기에 앞서 윤경호에게 가장 큰 부담은 원작 팬들을 만족시키는 일이었다고 했다.

윤경호의 도박(?)은 성공적이었다. 김부장과 또 다른 전직 동료 요원 성한수(최대훈 분)가 긴 팔다리를 활용한 날카롭고 유려한 액션을 보여줬다면, 박진철은 배우 본인이 가진 피지컬을 최대한 끌어올려 한 방 한 방의 충격이 화면 밖까지 전해지는 묵직한 움직임으로 차별화됐다. 이처럼 파워풀한 액션 속 농담을 놓치지 않는 여유로운 태도를 더하면서 원작 독자들의 우려를 지워내는 동시에 드라마를 통해 박진철을 처음 접한 시청자들에게도 호평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의 액션 신도 그렇고, 박진철로서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최대치의 액션이었다고 생각해요. 절도 있고 힘 있는 액션을 보여주되 싸울 때만 말수가 없으면 또 어색할 수 있으니 농담도 해가면서 박진철의 여유 있는 모습을 유지하려 했죠. 그걸 좋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할 뿐이에요. 최종화에서 김부장과의 철창 액션 같은 경우 소지섭 선배님이 워낙 액션으로 유명하고 대단하신 분이잖아요. 그 장면을 촬영할 때 선배님이 몇 번이고 '다시 때려, 괜찮아'라며 저와 (최)대훈이를 북돋아 주셨어요. 김부장과 소지섭이 동시에 느껴질 정도로 서로 깊이 교감하면서 찍은 장면이에요."

"저는 말수 없는 사람한테서 말을 끌어내는 게 좋아요. 대답을 안 하곤 못 배기게 분장실에서부터 '형, 심심하죠? 말하고 싶죠? 속으론 이렇게 생각하고 있죠?' 이러면서 아슬아슬한 선에서 까불거렸어요. 눈앞에서 천 원짜리를 보여주기도 하고(웃음). 극 중 박진철의 과거 장면에서 네일아트를 하고 있는 모습은 (소)지섭이 형이 제안해 주신 설정이에요. 본인은 과묵해야 하니 이런 건 제가 하라고 시키시더라고요(웃음). 그런 걸 의외로 재미있어하시는 걸 보면 사실은 본인도 되게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처럼 과묵한 김부장과의 관계성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것이 박진철과 성한수의 케미스트리였다. 등장할 때마다 티격태격하는 '톰과 제리' 같은 관계로 웃음을 자아낸 두 배우는 가족끼리도 알고 지낼 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했다. 오랜 무명과 조·단역 시절을 거쳐 뒤늦게 대중적인 전성기를 맞았다는 점에서도 두 사람의 궤적은 닮아 있었다. 특히 2025년 윤경호는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의 유림핑으로, 최대훈은 '폭싹 속았수다'의 학씨 아저씨로 각자의 인생 캐릭터와 별칭을 동시에 만들어 낸 참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기회가 얼마나 귀한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김부장' 촬영 현장에서 두 사람이 가장 자주 주고받은 말은 기쁨보다는 스스로를 향한 경계에 더 가까이 닿아 있었다.

조심해야 한다는 마음이 커졌지만, 동시에 자신을 감추는 일에서는 오히려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작품 속 윤경호를 먼저 접한 이들은 그가 어떤 이야기에서든 인물과 인물 사이를 매끄럽게 이어주는 '만능 윤활유' 같은 배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반대로 '핑계고'를 비롯한 예능에서 특유의 입담과 인간적인 매력을 발견하고 뒤늦게 그의 출연작을 역주행하며 호감을 갖게 된 이들도 늘었다. 한때는 단점처럼 느껴져 숨기고 싶었던 자신 안의 한 조각까지 이토록 남김없이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경험은 윤경호에게 있어 단순한 인기 이상의 위로로 남아있었다.
"제가 감추려고 했던 '말이 많다'는 콤플렉스가 호감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낀 순간 '너 이제 더 이상 안 숨겨도 돼'라며 제 마음의 빗장이 풀리는 것 같았어요. 사실은 예능으로 보이는 제 코믹한 이미지가 굳어진다는 걱정이 있었는데 이번에 묵언 수행 팬 사인회 때 편지 한 통을 받았거든요. '연기자로 이제까지 잘해 왔기에 사람들이 예능 속 너의 이미지도 좋아하는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계속해'라고 적혀 있었죠. 그걸 보고 굉장히 많이 울었어요. 마음에 후시딘을 발라 준 느낌이었거든요. 앞으로도 제겐 계속 이렇게 수다스럽고 익살스러운 이미지가 같이 가겠지만, 동시에 제가 연기할 다른 캐릭터의 무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받은 사랑만큼 제가 책임져야 할 기본값이니까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